허혜욱 展

 

제로그램 zerogram

 

0gram_Cast, Glass, Scale_300x290x620mm_2026

 

 

갤러리 보고재

 

2026. 11. 5(목) ▶ 2026. 11. 16(월)

Opening+Performance | 2026. 11. 7(토) 오후 3시

관람시간 | 11am~6pm | 11. 9(월) 휴무

서울 강남구 삼성로 126길 6 B1 | T.02-545-0651

전시후원 |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2026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 프로젝트

 

 

안현정(미술평론가·예술철학박사)

 

초록색 저울 위에 유리가 놓여 있다. 위쪽에는 노란빛이 얇게 걸리고, 아래로는 짙은 회녹색 형상이 둥글게 내려앉는다. 분명 무게를 가진 물체가 올라가 있는데 바늘은 0을 가리킨다. 이 어긋남 앞에서 잠시 생각하게 된다. 가벼워진다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일일까. 허혜욱은 오랫동안 유리의 안과 밖에 선과 면을 구성하고, 재료의 반응을 살피며 작업해왔다. 이제 관심은 하나의 형태를 완성하는 데서 그 형태를 만들며 지나온 시간으로 옮겨간다. 잘 만들어진 것만으로 작업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가. 실패로 남겨둔 결과와 매일 손에 쥐던 도구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다시 살피며 표현의 범위를 넓힌다. 유리작가라는 정체성은 그대로지만, 그 이름 안에 담기는 이야기는 달라진다. 

 

 

Jamming_Cast, Glass, Paper shredder_160x80x185mm_2026

 

 

0점이 아니라 원점

공모전에 출품하려다 깨진 유리작업은 한 번도 공개되지 못한 채 작업실 한편에 남아 있었다. 작가에게도 당시의 파손은 실패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바라본 작업에는 깨짐 이전의 역사까지 남아 있었다. 형태를 구상하고, 재료의 반응을 기다리고, 예상과 다른 결과를 받아들였던 시간이 파손과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그 작업을 다시 꺼내며 실패라는 결론 뒤에 남은 가능성을 살핀다. 저울의 0은 작품의 가치를 매긴 점수가 아니다. 스스로 내렸던 판단을 잠시 내려놓는 원점이다. 물질의 무게를 재던 도구가 이제 작가가 작업에 부여해온 무게를 돌아보게 한다.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 익숙한 성취를 되풀이하려는 습관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다. ‘원점의 사유(Zero Base)’는 과거를 없애는 리셋이 아니라, 지나온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선택이다. 작가는 “유리는 열을 만나면 생물이 됩니다”라고 말한다. 유리를 살아 있는 상대로 받아들였기에 요구하고 설득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지금은 그 관계도 달라졌다. 물질을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마음을 조금 덜어내자 다른 사물과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생겼다. 《제로그램》의 가벼움은 이 여유에서 시작된다. 

 

 

26eyes_Burned, wood paddles_300x20x450mm_2026

 

 

26Eeyes_Carved, Glass, Plug_400x400mm_2026

 

 

작업실에서 발견한 다른 얼굴

전시작에서는 유리와 주변 사물의 관계를 눈여겨볼 만하다. 검게 변한 나무 도구 두 점의 손잡이에 흰 선으로 눈이 그려져 있다. 작가의 손에 들려 쓰이던 사물들이 이제 관객을 바라보는 듯하다. 닳고 얼룩진 표면을 감추지 않은 채 몇 개의 선만 더했는데도 사물의 표정이 달라진다. 만드는 사람과 만들어지는 것의 관계에 작은 유머가 끼어드는 순간이다. 벽면에서는 콘센트와 잎의 형상을 담은 둥근 유리가 나란히 놓이고, 그 아래로 검은 선이 이어진다. 두 사물과 선을 함께 보면 느슨한 얼굴이 떠오른다. 유리의 내부를 들여다보던 시선은 콘센트로, 벽에 그은 선으로 이동한다. 주변은 더 이상 작품을 놓기 위한 빈 배경이 아니다. 간격과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가 생겨난다. 유리 밖으로 선을 연장한다는 작가의 설명이 이 장면에서는 명료하게 보인다. 

 

 

Link up_Cast, Glass, Calipers_290x25x600mm_2026

 

 

벌어진 금속 도구 아래에 놓인 유리에는 거친 자국과 선들이 남아 있고, 다른 유리 덩어리 위에는 손잡이가 달린 푸른 장치와 종잇조각이 자리한다. 이 결합을 특정한 의미로 서둘러 해독할 필요는 없다. 무엇을 위해 쓰였을지 짐작하고,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난 모습을 살피는 것부터 감상이 시작된다. 몰드와 도구, 제작 중 남은 조각들은 완성작을 설명하는 참고자료를 벗어나 저마다의 형태와 쓰임으로 관객을 만난다.이 변화를 ‘ZeroCraft’라는 말로 읽어본다. 원점에서 자신의 작업을 다시 살피되, 몸에 쌓인 만들기의 경험은 버리지 않는 태도이다. 재료를 다루는 숙련과 일상의 사물에서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는 감각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허혜욱은 유리를 다뤄온 경험으로 작업실 전체를 다시 읽는다. 그 결과는 재료의 교체보다 조형을 생각하는 범위의 확장에 있다.

 

 

사방치기_Site-Specific

 

 

사방치기, 다음 칸을 향해

닳은 초록 바닥에 흰 선으로 그린 사방치기 판이 있다. 사각형을 나눈 칸들과 가운데 교차하는 대각선은 곧 몸이 움직일 경로이다. 퍼포먼스 〈사방치기_허혜욱 되기〉는 작업실을 정리하고 초콜릿을 고르는 일상에서 출발한다. 이 작은 습관은 작업이 재료를 만지는 순간에만 시작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무엇을 곁에 둘지 고르고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도 작가의 작업에 포함된다. 한쪽 다리로 균형을 잡고 다음 칸을 건너는 몸에는 판단과 망설임이 있다. 경로를 알아도 매번 중심을 새로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유리작업의 감각과 닮았다. 그러나 사방치기를 불안의 비유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실수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칸을 건너는 일 자체가 즐거울 수도 있다. 작가는 작업의 치열함을 놀이로 옮기며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조금 다른 거리에서 바라본다.

 

 

To be one1-261026_Printed, Diasec_900x1300mm_2026

 

 

실패로 여겼던 일이 다른 선택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쓸모를 다했다고 생각한 사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작가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각자의 판단을 잠시 미뤄볼 시간을 건넨다. 《제로그램》을 볼 때는 유리만 보지 말고 그 곁의 사물과 선, 사물 사이의 간격까지 함께 살펴보기를 권한다. 무게를 가진 작품과 0을 가리키는 저울 사이에서, 익숙한 도구와 새로 그려진 눈 사이에서 허혜욱의 변화가 보인다. 가벼워진다는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일이 아니라, 오래 지녀온 것을 다른 위치에 놓아볼 자유이기 때문이다.

 

 

Well-261027_Printed, Diasec_900x1200mm_2026

 

 

 

 

 
 

■ 허혜욱 | Hyewook Huh

 

Education | SIUC at Carbondale IL US 2002 (MFA/Glass) | Kookmin Univ at Seoul Korea 1994 (BFA/Ceramic)

 

Residency | Corning Museum of Glass NY US 2010 | Pilchuck Glass School Seattle US 2003

 

Collection | Seosomun Shrine History Museum Korea 2020 | MMCA Gwacheon Korea 2013 | Art Bank MMCA Korea 2008, 2010, 2012

 

Solo Show | Mutual Connection GalleryIS, BinjibArtSpace Korea 2025 | Island of Light CORNERGallery Korea 2022 | Spacial Play EVEGallery Korea 2014 | Positive+Negative GallerySONAMOU Korea 2009 | The line in Space LIZGallery Korea 2004 | The Line in Space AegonGallery US 2003 | Line and Form MillenicGallery US 2002

 

Group Show | SeMoCA Seoul Korea 2021 | Philadelphia Museum of Art Fair US 2009, 2017 | Korea Now Musee des arts decoratifs Paris France 2015 | Revelations, Grand Palais Paris France 2015 | SOFA Chicago US 2007, 2009, 2010, 2013, 2014, 2015 | Cheongju International Biennale Korea 2005, 2013 | MMCA Gwacheon Korea 2013 | SOFA New York US 2006

 

Homepage | www.hyewookhuh.com

E-mail | hhyew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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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60930-허혜욱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