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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 기획전
달리·Differently·Dali 展
김미영, 김승현, 서은정, 심규철, 위혜승, 임재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2026. 10. 30(금) ▶ 2026. 11. 15(일)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www.sac.or.kr/site/main/home

김미영 作_나이 든 새의 부화, 2026_종이판넬에 색연필_33.3x22cm
누구나 한 번쯤, 같은 길을 가는데 나만 다른 속도로 걷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남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문턱에서 나만 걸음을 멈추고, 남들은 보지 않고 지나치는 것을 나만 오래 들여다본다. 그런 순간이면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탓한다. 나만 어긋나 있다고, 나만 틀렸다고. 그런데 가만히 따져 보면 그 말버릇에는 이상한 함정 하나가 숨어 있다.‘다르다’와 ‘틀리다’는 애초에 뿌리가 다른 말인데도 우리는 오랫동안 그 둘을 같은 자리에 놓고 써 왔다. 어쩌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가 손에 쥔 말의 폭을 넘어서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틀렸다는 말밖에 없다면, 다른 것마저 결국 틀린 것으로 읽히고 만다.
이 오래된 혼동을 풀기 위해 하나의 말을 다시 들여다본다. 바로 ‘달리’라는 부사다. ‘다르다’에서 비롯된 이 말은 무언가가 서로 같지 않다는 사실을 가리킬 뿐, 거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을 보태지 않는다. 다름은 반드시 좁혀야 할 거리가 아니라 서로를 마주하게 하는 간격이 될 수도 있다. 영어의 ‘Differently’ 역시 ‘다른 방식으로’라는 뜻을 지닌다. 서로 다른 방식을 결함이나 부족함으로 판단하는 뜻은 그 안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달리’가 겹쳐진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고 변형하며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만들어 냈다. 이 전시의 제목에는 그렇게 세 개의 결이 겹쳐 있다. 한국어의 부사 ‘달리’, 영어의 부사 ‘Differently’, 그리고 한 예술가의 이름 ‘Dali’.
말과 생각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을 몸으로 살아 내는 사람이 없다면 관념에 머물 뿐이다. 우리는 세계를 모두 이해한 뒤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몸으로 세계를 살아간다. 본다는 것, 만진다는 것, 걷는다는 것은 정신이 몸에게 내리는 명령이라기보다 몸이 세계와 나누는 오래된 대화에 가깝다. 감각과 경험이 다르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그로부터 태어나는 생각과 표현도 달라진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미영, 김승현, 서은정, 심규철, 위혜승, 임재현은 저마다의 감각과 경험, 서로 다른 리듬으로 세상에 닿아 온 작가들이다. 흐릿한 시야, 몸에 새겨진 시간, 정교하게 벼려 온 자신만의 논리, 긴 침묵 끝에 다시 쥔 색연필처럼 저마다 다른 경험은 선과 색, 형태와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몸으로 세계를 번역하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라보고 만지는 방식이 다르면 거기서 태어나는 언어 또한 달라진다. 그러니 이들의 화면이 낯설다면, 그것은 이들이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자리에 이들이 먼저 도착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승현 作_말미잘 정원, 2024_캔버스에 아크릴_91.0x116.8cm
전시의 시작에서 관람객은 여섯 점의 자화상과 마주한다. 자화상은 화가가 자기 자신을 오래 들여다보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바라본 자신을 타인의 눈앞에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어떻게 보아 왔는가. 그리고 세상은 나를 어떻게 보아 왔는가. 여섯 작가는 이 두 물음에 저마다 오래 다듬어 온 회화의 언어로 답한다. 같은 ‘자화상’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여섯 형식이 한자리에 만나는 풍경 자체가 이 전시가 하려는 말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그 이후의 전시에는 어느 방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정해진 순서가 없다. 공간 한가운데에는 의자가 하나 있다. 그곳에 앉으면 여섯 작가의 세계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흐릿한 시야로 그려 낸 인물들, 심장 박동을 새겨 넣은 지층, 넓은 잎사귀 사이에 숨은 작은 존재들, 역사와 판타지가 경계 없이 뒤섞인 장면, 중력을 잃은 듯 펼쳐지는 푸른 물속, 한 코씩 짜 올린 실의 무늬. 고개를 돌리면 이 모든 장면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다. 누구의 세계가 먼저이고 누구의 세계가 나중인지, 이 공간은 답을 정해 두지 않는다. 앞선 세계도 뒤따르는 세계도 없이, 세계를 감각하고 번역해 온 여섯 가지 다른 언어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그리고 이 전시에서 보는 일은 눈에만 맡겨지지 않는다. 여섯 작가의 작품 가운데 한 점씩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입체 부조로 만들어, 선과 표면, 굴곡을 손끝으로 더듬어 읽을 수 있게 했다.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이에게 손끝은 또 하나의 보는 방식이 된다. 이것은 관람객을 위해 덧붙인 작은 친절이 아니다. 다르게 보는 법을 말하는 전시가 정작 하나의 감각으로만 작품을 보라고 요구한다면, 그 말부터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누군가를 딱하게 여기거나 차이를 교정하려는 자리가 아니다. 저마다 다른 감각과 경험 속에서 자라난 여섯 개의 언어가 같은 높이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자리다. 하나의 기준으로 차이를 가늠하기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고 만들어 온 여섯 개의 풍경 앞에 잠시 머무는 것. 어쩌면 ‘달리 본다’는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전시장을 나서기 전, 빈 벽 하나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그곳에는 마침표 없이 열린 문장 하나가 있을 뿐이다. 오늘 이곳에서 무엇을 다르게 보게 되었는지, 그 빈칸을 채우는 일은 이제 관람객의 몫이다. 사람마다 다를 그 대답들이야말로 이 열린 문장의 진짜 결말이 될 것이다.
달리_

서은정 作_카멜리아, 2026_캔버스에 아크릴_100.0x72.7cm

심규철 作_블랙 트루퍼 가드, 2025_한지에 먹_97x145.5cm

위혜승 作_균열, 2024_장지 위에 혼합매체_91x60.8cm

임재현 作_받아들인 시야, 2026_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_100.0x8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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