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랑방 홍정희 展

 

 

 

GALLERY LAMER

 

2026. 10. 21(수) ▶ 2026. 10. 26(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5길 26 | T.02-730-5454

 

www.gallerylamer.com

 

 

내 어머니는 비단 가게의 주인이었다. 대구는 가내공업이 발달하여 가지가지의 아름다운 문양을 찍은 천들이 작은 공장에서 각자의 개성을 가진 찬란한 색을 품고 태어난다. 비단은 물론이고 살결이 환히 비치는 오간자(노방)같이 아른거리는 천들이, 꿈결 같은 모습으로 미끄러지듯 만들어진다. 소규모로 나오는 이 천들은 서울 동대문 시장으로 가기도 전에 대구의 멋쟁이 부인들이 다 소화해 버리곤 했다. 대구는 염직공장 또한 발달해서 방천(현재의 신천)의 물들이 항상 시커먼 색으로 흘러내리곤 했다.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을 보고 자라온 내가 색채에 눈을 뜬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나는 늘 엄마가 가 있는 시장 바닥에 가서 떨어진 천이나 단추를 주워 오기도 하고, 자투리 천이 혹시 남을까 해서 기다렸다가 얻어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색의 천을 보고, 내 손으로 만지며 지냈다. 뿐만 아니라 당시 한일극장에 가면 임춘앵극단의 창극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항상 화려하고 근사한 옷을 입고 연기를 했는데, 나는 그들이 입은 옷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렇게 늘 색채와 함께했던 나는 주워 온 천들로 헝겊인형을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 천들과 인형들은 항상 종수상자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상자를 발견하고는 이런 물건이 집안에 있으니까 꿈자리가 사납다며 버려버렸다. 이런 일이 몇 번을 되풀이되자 나도 지쳐서 그 뒤로는 더 이상 천을 모으지 않고 종이로 인형을 그려서 만들고 옷도 만들어 가지고 놀았지만 종이에서는 헝겊이 주는 따스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이후 서울로 유학을 간 동생을 따라 대구를 떠난 나는 생활을 위해 도자기 판매에 손을 대게 되었다. 그러면서 도자기 공장이 있는 이천에 다니게 되었고, 거기서 정말 좋은 도자기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도자기들을 여러 곳에 판매했고, 그러면서 생활도 점차 안정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은 참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도 점차 안목이 생기기 시작했고, 정말 좋은 조선 백자를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서 골동품이 많이 모이는 인사동으로 진출하기로 결심했다. 그 전부터 골동품 시장에서 오래된 장신구나 민속품을 사기도 하고 판매를 해보기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정말 멋진 조선 백자를 만났다. 아마 그 항아리는 지금 박물관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크고 우람하고 매끈한 유백색의 형태를 가진 항아리를, 마치 보름달을 보듯이 우러러보았었다. 그리고 내가 만난 그 대호(大壺)를 내가 좋아하는 고객에게 판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왜냐하면 고객에게 항아리를 팔면, 나도 그 뒤로 가끔씩 고객의 집을 방문해서 멋진 항아리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항아리를 파는 것에는 실패했고, 그 후로도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대호는 본 적이 없다.

세월이 지나 2026년 10월, 나는 라메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금까지 연작으로 그려 온 색동 시리즈에 달항아리를 통합해 그렸다. 내가 보기에 백자 대호의 모습은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모습을 잘 나타낸 것이다. 지금도 그 둥글고 우아하며 빛을 머금은 백색의 항아리는 내 꿈속에서, 그리고 머릿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형태의 흰빛으로 살아 있다. 그 당당한 형태와 부드러운 둥근 선, 그리고 명상 속에 잠겨 있는 원만한 곡선은 흰 우윳빛과 함께 영원히 내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캔버스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달이 지니고 있는 우아함과 백자가 가진 은은한 유백색의 신비함을 나타내기에 물감의 흰색은 부족해 보였다.

나는 지금 내 어린 시절을 장식했던 색동의 색채 위에 예전에 내가 경이롭게 바라보았던 대호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달항아리를 그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활동적이며 기쁨을 전하는 색동의 오색과 조용히 빛나는 명상의 백색을 대비시켜 보았다. 백색의 우아함과 조용함 속에 색동의 기쁨과 축복을 동시에 간직하고픈 마음으로 전시회를 준비한다. 내 그림을 관람할 사람들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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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61021-예랑방 홍정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