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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회 정수모 Paul Jeong 展
오래된 기억의 소리 Old - Sound of memory
2026. 8. 7(금) ▶ 2026. 8. 13(목) Opening 2026. 8. 7(금) 17:00 | 10:00~18:00(휴관없음) 인천시 남동구 예술로 149 | T.032-427-8401 후원 | 인천광역시, (재) 인천문화재단
기억의 흔적A_54x76cm_Acrylic on canvas_2026
소실점 밖의 여백에서, 낯선 당신을 기다리며 - 오랜 모퉁이에서 적어 내려간 부치지 못한 편지
그러나 몽파르나스의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삶의 기묘한 장난은 가끔 우리를 전혀 예상치 못한 잘못된 역에 떨어뜨리지만, 그 중심에서 벗어난 자리에서만 비로소 조망할 수 있는 ‘다른 소실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파리의 바로크는 여전히 높고 견고했지만, 자리에서 일어선 내 가방 속에는 이제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나만의 작고 깨끗한 숲이 들어 있었다. 삶의 지독한 우연이 내게 선물한, 고독이라는 이름의 다정한 문간방이었다.
몽유도_112x88cm_Acrylic on canvas_2025
그날 달력을 찢어내던 날카로운 파열음은, 세월을 건너와 이제 강화 작업실에서 화구로 캔버스 표면을 거칠게 긁어내는 서늘한 마찰음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뿐이다. 흔히 사람들은 예술가의 작업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눈부신 영감의 순간이라 말하지만, 내게 회화는 철저히 육체적인 노동이자 고독을 물질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산책길을 나서는 철학자 칸트처럼, 나 역시 매일 같은 시간 캔버스 앞에 서서 온종일 화면을 채우고 다시 긁어내는 단조로운 관조를 반복한다. 이 노동의 대가는 정직하고도 고되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 마디와 시려 오는 손목의 통증, 나이프를 세차게 밀어붙이느라 닳아버린 붓끝, 그리고 작업실 바닥에 눈처럼 쌓이는 마른 물감의 먼지들. 그것들은 내 삶이 화면 위를 지나갔다는 가장 투박하고도 정직한 증거들이다.
바람-기억의파편A_162x145.5cm_Acrylic on canvas_2026
회색 공간에서의 지독한 고립과 단조로운 기록의 반복 속에는, 도리어 삶의 가장 투명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나에게 칠하고 긁어내는 행위 역시 그러하다. 낮에 쌓아 올린 물감의 층을 밤새 긁어내며 어제와 똑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하지만, 그 행위는 제자리를 도는 바퀴가 아니라 기억의 층위를 한 겹씩 파고드는 고고학적 탐색에 가깝다. 그렇게 물감을 깎아낼 때마다 캔버스는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하고, 비워진 공간 속에서 내 영혼은 맑게 씻겨 내려간다. 어쩌면 삶의 수많은 우연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오래된 기억의 소리_164x453cm_Acrylic on canvas_2026
내가 그리는 모든 그림은, 몽파르나스 역의 유령 같던 시절부터 세상을 향해 수없이 적어 내려간 ‘부치지 못한 편지’였을 것이다. 영화 <스모크>의 주인공이 뉴욕의 한 모퉁이에서 매일 같은 시간 거리를 촬영하며 고독한 기록을 남겼듯, 나 역시 강화도의 한 모퉁이에서 매일 캔버스의 같은 자리를 긁어낸다. 내가 긁어내어 만든 그 수많은 기억의 틈새들이, 나만의 닫힌 방을 열고 이제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하루에 나지막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내가 의도적으로 비워둔 화면의 여백은, 익명의 관객들이 저마다 마음속 깊은 결 속에 숨겨두었던 ‘자신만의 잃어버린 기억과 슬픔’을 채워 넣을 수 있는 다정한 빈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이 캔버스의 빈틈을 통해 어느새 하나의 풍경으로 흐른다.
오래된 기억의 소리1_210x355cm_Acrylic on canvas_2025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이제야 세상에 띄우는 이 뒤늦은 작은 이야기가, 낯선 변방의 기차역에 홀로 남겨진 듯 외로운 이들이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갈 작은 쉼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거대하고 단단한 현실의 벽 앞에 가로막혀 투명한 유령처럼 느껴질지라도, 우리 내면에는 늘 자신만의 아름다운 밑 색이 숨 쉬고 있음을 믿는다. 도시가 설계한 소실점 밖에서 일어나는 그 고요하고 우연한 마주침을 바라며, 나는 오늘도 강화의 작업실에서 담담히 붓을 쥐고 익명의 당신들이 잠시 머물다 갈, 지극히 사적이고도 다정한 여백을 남겨둔다.
- 디지털 크리에이터 정수모
오래된 기억의 소리A_164x453cm_Acrylic on canvas_2026
인천아트플랫폼 개인전_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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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모 | Paul Jeong
1975년 경희대 미술대학교 졸업 | 1977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 졸업 | 1996년 프랑스 베르사이유 에꼴 데 보자르 졸업 <드로잉 부문 최고상 수상>
개인전 | 1995 프랑스 파리 에티엔 코상 갤러리 | 2025 일본 고베 City갤러리2320 외 33회
단체전 | 2026 서울-교토 6000 seconds 전 일본 교토갤러리 | 2006 부산비엔날레 외 400회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 프랑스 크리슈티앙 슈뵈재단 | 토탈미술관 | 소마미술관 등록작가 외 20개 공공기관
경희대 교육대학원 주임교수역임
현재 | 숙명여대 | 도슨트 협회 | 유튜브 정수모 교수의 서양미술기행 | 유럽문화예술기행 | Class 101 현대미술, 만화, 영화의 퓨전 인문학 산책 강의 중
E-mail | twinj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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