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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래오 展
우리 안과 밖의 '우리'
아트스페이스 보안 3
2026. 7. 23(목) ▶ 2026. 8. 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33 | T.02-720-8409
미국의 목사 밥 무어헤드의 <우리 시대의 역설>에는 이런 글이 있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지고,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고,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다.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은 법은 상실했다.” 1995년에 발표된 글이지만 글의 내용은 여전히 현실을 가리킨다. 작금은 고도의 기술 문명으로 인해 삶은 더 편리해졌지만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인간다움’은 더 희미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지구의 환경은 인류의 첨단기술산업이 발전할수록 더 황폐해진다. 이제 국내외 뉴스에서 접하는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로 인한 생태적 위기는 객관적인 사실에 머물지 않고, 생명/생존의 문제가 되었으며,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와 역설 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이러한 시대에 예술가의 눈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질문하게 되고, 이번 전시는 그 물음에 대한 작가 나름의 생각 중 한 단락을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기획하고 작품을 구성하면서 제목을 <우리 안과 밖의 ‘우리’>라고 정하고 ‘우리’에 방점을 찍었다. 이는 현재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우리’라는 말이 가진 연결성과 ‘우리’에 속하지 못하는 타 생명체의 배제를 생각하면서 자연-비인간 생명체에 대한 고찰이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공동체에서 ‘우리’는 어디까지나 인간과 인간의 연결, 그리고 그 관계 등을 의미한다. 인간 외의 것은 이분법적 논리로 ‘우리’에 속하지 못하고 타자가 된다. 여기에 폭력이 내재해 있다. ‘우리’ 외의 것에 대한 즉, 타자에 대한 무시와 무지는 폭력을 잉태하고,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실제로 인간이 자연 생명체에 행하였던 지금까지의 행위는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향해 던진 폭력과 착취의 부메랑은 기후재난으로 돌아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도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폭염과 지진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우리 또한 이미 기후재난을 살아내는 중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이제는 우리가 배제했었던 자연계의 비인간 존재를 ‘우리’라는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연 생태계는 어떤 존재의 우위로 독식할 수 없는, 균형과 조화가 이뤄져야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가 움직이면 모두가 영향받는다는 불교의 ‘인드라망’처럼 인간 사이의 연결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 모든 생명체가 우리 안팎으로 긴밀하게 ‘우리’로 이어져 촘촘한 그물처럼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주요 내용은 ‘우리’의 의미를 보다 넓은 시점에서 조망하여, 비인간 존재와의 재연결을 꿈꾸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재인식을 말한다. 그동안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 타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면서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착취하고 파괴해 왔다면, 이제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물아일체관의 동양적 통찰이 필요한 때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무고히 해치지 말라. 만물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자는 사람을 존중하지 못한 것과 같다.” 하였던 해월 최시형의 사상은 우리가 직면한 기후재난에 소중한 가르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동양사상의 생명존중 사상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하는 대안적 자연관을 근본 바탕에 두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 재고찰하는 내용으로 전시를 구성하였다.
서두에서 밥 무어헤드 목사의 <우리 시대의 역설>을 인용했듯이 오늘날 인류는 더 편리해지고, 더 많이 가졌고, 더 빨라졌지만, 인간의 내면은 더 공허하고, 더 우울하고, 더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AI의 등장은 인간의 내일을 불투명한 미래로 만들고, 향후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빠르게 인간의 자리를 대처하리라는 전망 또한 인간의 불안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고, 무위자연을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과거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떠난 인간의 삶이 불가능하듯 자연의 소중함을 말하고, 보전하는 일은 바로 인간의 삶을 보전하는 일이기에 모든 것의 우선이 돼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나온 것이다. 작가는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닌 하나로서의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 작품에서 모든 존재의 귀함과 가치를 말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작가는 관객이 자연과 인간의 재연결을 꿈꾸고,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가 함께 상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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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60723-강래오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