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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덕 展
닿다, 눌리다, 남다

불던 모양, 2026_확성기 (수집된 사물), 합성수지 혼합 점토, 흑연판_46.5x132x46.5cm
봄화랑
2026. 7. 8(수) ▶ 2026. 8. 1(토)
서울특별시 서초구 사평대로55길 114
www.vohmgallery.com

《닿다, 눌리다, 남다》의 전시장에 놓인 형상들은 익숙한 기능과 의미를 벗어난 채 나타난다. 더 이상 소리를 전달하지 않는 나팔, 안팎이 뒤집힌 얼굴, 절단되고 관통된 나무토막은 어떤 중심을 상실한 사물이라기보다, 애초에 하나의 본질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들처럼 보인다. 이들은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무엇과 닿았는지, 어떤 힘이 스쳐 갔는지, 무엇이 지나간 자리인지를 조용히 드러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형태 자체보다 표면에 축적된 시간의 감각이다. 나무는 잘려지고 구리는 접히며 레진은 흘러내리고 굳는다. 흑연판은 서로 다른 재료를 감싸며 또 하나의 피부를 만들고, 이때 만들어진 긁히고 눌린 자국은 지워야 할 결함이 아니라 작품이 자신의 시간을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황효덕은 이처럼 남겨진 흔적, 자국, 얼룩에 주목한다. 사물의 깊숙한 내부 어딘가가 아니라 가장 쉽게 닳고, 변하고, 다시 덧입혀지는 표면 위, 그 얕은 곳에 남겨진 자국을 통해서 사물의 시간을 읽고 지나간 사건을 짐작하며 존재를 감각한다.
흔히 어딘가의 아래 깊은 곳에 진실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상의 외형을 지나 그 안쪽에 있는 본질에 도달하려 한다. 그러나 황효덕의 작품은 시선을 반대로 돌린다. 존재는 안쪽 깊은 곳에 숨겨진 무엇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닿고, 눌리고, 남겨진 흔적들 속에서 비로소 감각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표면은 본질을 가리는 막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유일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그곳은 사물의 가장 연약한 층위가 아니다. 오히려 존재가 세계와 관계 맺어온 모든 시간이 새겨져 있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세계가 맞닿은 장소, 그러한 접촉의 흔적이 남겨진 그 얇은 장소 앞에 우리는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다.

누구 또는 누군가, 2026_종이, 합성수지 혼합 점토, 흑연판_26.5x20.3x8cm

반쯤 오른 것, 2026_나무, 합성수지 혼합 점토, 흑연판_15.5x18.8x19.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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