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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재 展
Blow-Up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6. 7. 1(수) ▶ 2026. 7. 25(토) 서울특별시 용산구 회나무로6길 5, 혜광빌딜 4층
Engineered Nostalgia
문소영 (독립 큐레이터)
본 것이 중심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것만 보게 되는 것일까? 영화 욕망(Blow-up, 1966)의 주인공 토마스는 우연히 담은 풍경으로부터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수상한 흔적을 발견한다. 범죄 현장에 대한 추측을 확신으로 전환하기 위해, 그리고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확대할수록 이미지는 오히려 모호해지고 의심은 더욱 커져간다. 추적이 진행될수록 사진은 증거라기보다는 추상적인 이미지에 가까워진다. 실재에 다가가려 할수록 오히려 실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디지털 이미지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고해상도의 이미지는 실재에 가까운 형상을 보여주지만, 이미지를 확대할수록 이미지는 점점 픽셀로 분산되어 원래의 이미지의 맥락을 떠올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기계적 이미지는 실재이기를 거부하고, 허구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기를 자처한다. 토마스라는 이름은 의심하는 자를 뜻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 그 자리에 있었을까? 보이는 것이 늘 진리가 아닌 세상에서, 이제는 일견 보다 백문이 더 중요해진 시대가 와버린 건 아닐까.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대를 지나, 인공 지능과 알고리즘이 정보를 보기 편하게 정돈해 주는 시대가 되었다. 박이재는 《Blow-up》을 통해, 기계적 시선이 설계한 이미지의 위계를 의심하고 멀어져 본다.
박이재는 원본의 맥락이 희미해질 때까지 이미지를 확대해 본다. 망망대해 같은 스크린 속에서 더 이상 뻗어나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나아가 본다. 사진을 확대할수록 형상은 점점 노이즈가 중심이 되는 비물질의 표면으로 전환된다. 작업의 제목들은 작가가 크롭한 이미지의 해상도이다. 작가는 화소로 분리된 이미지를 조각으로서 탐구해본다. 이미지는 가상의 세계를 벗어나 캔버스라는 새로운 단위로 환산되고, 회화라는 신체를 획득하게 된다. 기승전결로부터 이탈한 단상들은 객체로서 새로운 해석을 유도한다. 바닥칠 과정에서 미디엄으로 섬세하게 표현된 그레인은 기계적 이미지의 형상을 취하면서도 필연적으로 두께감을 갖는다. 물성은 사진 속에서 납작하게 머물던 주변부를 다시 밀도 있는 대상으로 돌려놓는다. 이러한 실천은 단순히 기계적 이미지를 회화로 옮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기계적 시선이 만들어낸 익숙한 위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미지를 스스로 바라보고 판단하며 화면 속 요소들을 환기하고자 한다. 확대와 크롭, 편집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이미지는 원본의 맥락을 잃어가지만, 중요도에 따라 분류되던 이미지들은 평등한 조건으로 화면에 놓이게 된다. 주변부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복권하는 박이재의 시도는, 이전 시리즈 <하자>(2024)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이사에 앞서 하자 점검을 하던 중, 공간에 남아있는 지난 시간의 흔적들로부터 고유의 개성과 형상을 발견하고, 그런 것들이 결함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다. 경험과 이해에 따라 이미지에 위계가 생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학습된 바라보기를 경계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박이재는 수행에 가까운 그리기를 통해 주변부로 밀려난 이미지들에게 정성스럽게 물성을 더하고, 삶의 기념비로서 복권해 본다. <Blow-up>에서는 그러한 관점을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하고, 회화적 담론으로 이어본다.
박이재는 기계적 시선이 구축한 시각적 위계를 의심하며, 스스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기계적 시각을 거치지 않더라도, 이미지에 위계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조건인지도 모른다. 이미지의 서열이 반드시 사회적이거나 상투적 조건을 수반한다기보다는, 앞서 말했듯 개인적 경험이나 가치관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생성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화나 아날로그 사진 속에서 이러한 위계가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설계되었던 반면, 디지털 이미지 속에서 위계는 임의의 가정을 통해 피상적으로 구성된다. 가령 스마트폰의 자동 누끼 기능은 이미지를 픽셀 단위로 분석하고, 윤곽과 형태, 명암의 차이, 맥락 등을 판단하여 피사체와 배경을 분류하고 경계를 설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위계는 확대된 이미지 안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형상이 무뎌진 이미지 속에서는 더 이상 무엇이 중심이고 무엇이 배경인지 판단하는 것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는 모호해진 표면을 분배하길 포기하지 않고, 허공으로부터 피사체를 분리하기 위해 주변부를 더욱 치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한다. 배경으로 밀려난 주변부는 다시 한번 분석의 대상이 된다[1]. 박이재는 이러한 기술적 이미지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한다. 작가는 자동 누끼 기능이 생성하는 허구적 경계와 형상을 반복적으로 증식시킨다. 이미지는 더 이상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 물질과 표면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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