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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E 정수진 展
Lagotopia 토끼의 세계

하코갤러리
2026. 6. 24(수) ▶ 2026. 7. 19(일)
서울 성북구 창경궁로43길 22 하코갤러리아트샵
www.blog.naver.com/haco_gallery_artshop

나의 작업은 한 마리 토끼에게서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반려 토끼 크림이가 나이를 먹고 병원을 자주 다니게 되면서 처음으로 토끼를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엔 동네 동물병원에서 고양이도 잘 봐주지 않던 시절이라, 토끼는 병원을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그래서 치료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작은 엽서와 그림을 만들었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끝까지 크림이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크림이는 당근별로 긴 여행을 떠났다. 이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크림이가 행복한 곳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마지막 무렵의 크림이는 스스로 일어서기 어려울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나는 몇 시간마다 물과 건초, 좋아하던 과일 조각을 먹여주며 곁을 지켰다. 그 시간을 보내며 처음으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림은 떠나가는 존재를 붙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 위한 인사였다. 그렇게 시작된 그림은 점차 하나의 세계로 확장되었다. Lagotopia 라고토피아는 토끼를 뜻하는 lagos와 utopia를 결합해 만든 이름이다. 이곳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지만, 현실에서 만난 존재들과 풍경, 기억들이 모여 만들어진 세계이기도 하다.
작품 속 존재들은 모두 토끼의 얼굴을 하고 있다. 토끼는 특정한 인종, 성별이나 나이, 직업을 드러내지 않는다. 관람자는 익숙한 분류와 판단에서 잠시 벗어나 각 존재가 지닌 삶의 흔적에 집중하게 된다. 나에게 토끼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한 존재를 사랑했던 기억에서 시작되어,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 매개이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기록들의 모음이다. 한 마리 토끼를 향한 마음에서 출발한 작은 그림들이 지금은 수많은 존재들의 이야기와 풍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관람객 또한 <Lagotopia 라고토피아>를 여행하며 자신만의 기억과 소중한 존재들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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