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이탈 展

 

카틴카 보크, 미리암 칸, 에바 코타트코바

이자 멜스하이머, 산티아고 데 파올리

 

 

 

마이어리거울프

 

2026. 6. 13(토) ▶ 2026. 8. 8(토)

서울특별시 용산구 독서당로29길 6, 1층

 

www.meyer-riegger-wolff.com

 

 

 

 

마이어리거울프는 카틴카 보크(b. 1976, 독일), 미리암 칸(b.1949, 스위스), 에바 코타트코바(b.1982, 체코), 이자 멜스하이머(b.1968, 독일), 그리고 산티아고 데 파올리(b. 1978, 아르헨티나)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은 단체전 《부드러운 이탈 Soft Displacements》을 6월 13일부터 8월 8일까지 선보인다.

전시 속 신체는 온전한 모습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접히거나 잘리고, 매달리거나 구조물 안에 부분적으로 놓인다. 단단해야 할 건축은 유기적인 형태로 느슨해지고, 일상적인 사물과 연약한 재료들은 낯선 감정의 무게를 띤다. 부드러운 이탈 에서 신체와 사물, 건축은 하나의 정해진 모습이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전시는 익숙한 것들이 제자리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순간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사물의 표면에는 감정과 기억, 상상이 겹쳐지고, 작업들은 현실과 내면 사이의 작은 틈을 열어 보인다.

《부드러운 이탈》의 작업들은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익숙하다고 어온 몸, 사물, 공간이 조금씩 제자리를 잃는 순간에 주목한다. 그 어긋남은 극적이지는 않지만, 전시장 곳곳에서 조용한 긴장과 낯선 감각으로 감지된다.

전시는 연약한 신체와 그것을 둘러싼 불안정한 장치들을 따라 전개된다. 펠트, 직물, 세라믹, 석고, 철사와 같은 재료들은 부드럽지만 때로는 몸을 조이고, 감싸지만 동시에 노출시키며, 자라나는 듯 보이면서도 어떤 틀 안에 붙잡혀 있다. 회화, 조각, 설치를 넘나드는 작품 속 형태들은 하나의 상태로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무너지기 직전도, 완전히 안정된 상태도 아닌 채,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에 머문다.

세라믹은 조개껍질처럼 단단하면서도 상처 입은 표면을 드러내고, 철사 구조물은 몸을 보호하는 장치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가두는 틀처럼 느껴진다. 직물은 피부처럼 얇은 경계가 되고, 풍경은 더 이상 배경에 머물지 않은 채 몸과 마음의 상태를 닮아간다.

 

 

 

 

미리암 칸의 <눈높이에서, 2015년 7월 16일>(2015)에서는 고독한 인물이 불분명한 경계에 밀착된 듯 등장한다. 들어 올린 두 손은 자신을 방어하려는 몸짓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무언가와 닿으려는 움직임처럼도 읽힌다. 흑연으로 그려진 단순하고 연약한 형상은 즉각적인 감정을 유발하지만, 그 인물이 무엇을 겪고 있는지는 끝내 분명히 말해주지 않는다.

그 옆에서 에바 코타트코바의 <방 안에 흩어진 나 혹은 유연한 몸들의 방 연작>(2016)은 몸의 일부를 철사 구조물로 바꾸어놓는다. 다리, 케이지, 그리고 사라진 신체의 흔적들은 공간 속에 반쯤 매달린 채 놓여 있다. 이들은 몸을 가두고, 길들이고, 때로는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신체가 얼마나 쉽게 상처 입고 흔들릴 수 있는지도 드러낸다. 함께 놓인 직물 작업과 드로잉에는 꿰맨 자국, 구멍 난 표면, 조각난 생명체와 부드러운 윤곽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아이의 상상에서 나온 듯한 이 형태들은 연약하고 쉽게 다칠 수 있는 존재를 떠올리게 하며, 그 안에는 막연한 불안이 조용히 배어 있다.

산티아고 데 파올리의 작업은 보다 사적이고 모호한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다. <무월(無月)>(2020), <홀로, 그리고 벽돌들>(2020), 그리고 <저무는 여름>(2020)과 같은 회화에서 몸과 풍경, 일상적인 사물들은 서로 섞이며 불안정한 장면을 만든다. 평범한 모티프들은 하나의 분명한 의미에 머물지 않고, 감정이나 무의식적인 기억 쪽으로 흘러간다.

카틴카 보크의 조각들은 전시장 안에 조용히 남겨진 흔적처럼 자리한다. <L-가자미>(2018)의 브론즈 형태는 물고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파편이나 남겨진 자국처럼 보이기도 한다. <발화 Ⅱ>(2021)는 날카로운 세라믹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톱니처럼 이어진 윤곽은 언어, 단절, 혹은 미완의 건축물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업들은 크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무게와 거리, 재료가 놓이는 방식만으로 전시 공간의 흐름을 조용히 바꾼다.

마지막으로 이자 멜스하이머의 작업에서 건축은 단단한 구조물이 아니라, 쉽게 변형되고 흔들리는 유기체처럼 나타난다. 작가는 <저수조>(2018)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형태를 세라믹으로 옮겨오지만, 그 결과물은 건축물이라기보다 변형되고, 닳고, 자라나는 몸에 가깝다. 과슈 작업에서도 건축은 안정된 공간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거한 태양, 식물의 파편, 어딘가 어긋난 실내 풍경이 건축적 공간과 뒤섞이며 꿈같은 장면을 만든다. 이처럼 멜스하이머의 건축은 기능적 구조를 벗어나,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신체적 감각과 물질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60613-부드러운 이탈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