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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채연 展
Soft temple

콤플렉스
2026. 6. 9(화) ▶ 2026. 6. 27(토)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로 59/2층 | T.0507-1494-2094
www.komplex.kr

Soft temple 강채연 개인전
김지윤
오늘날 우리는 온전히 살아있음을 어떻게 느끼는가. 우리의 몸을 떠올려 보자. 물컹하기도 단단하기도 한 살과 뼈, 내뱉는 숨, 입안의 오돌토돌한 혀와 함께 있는 축축한 체액,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의 무게를 담아 내딛는 걸음과 오늘 날씨를 느끼는 작은 땀구멍이 있는 살갗. 무엇인가 충분하지 않다. 단단하고 명징하지 않다. 대신 눈을 뜨자마자 확인할 수 있는 화면 안의 수많은 데이터는 어떠한가? 아마 충분히 믿을 만할 것이다. 우리가 잠든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살과 근육의 비율, 뼈의 단단함과 우리 몸이 머금은 물의 무게 그리고 스트레스 지수까지. 이 모든 데이터는 충분히 무겁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온전히 살아있다는 것은 어쩌면 감각이라기보다 감각보다 더 가까이 있는 데이터로 이뤄진 이성적 판단에 가까울 것이다. 데이터보다 빠른 고통이 몸으로 도착하기 전까지. 강채연의 《Soft Temple》은 이러한 데이터가 내리는 판독의 표면을 다시 축축하게 적셔 부드럽게 만든다. 작가에게 질병은 생에서 탈락할 신체적 징후가 아니다. 질염, 다낭성 난소 증후군, 기형종 등의 여성의 질병은 몸이 정상성에서 이탈한 결함이라기보다, 몸 그 자체가 이미 생과 사, 증식과 손상, 정체와 흐름이 동시에 일어나는 사원임을 드러내는 매개이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에서 질병은 오히려 부드럽게 생동하고 흐르며, 데이터 밖에 존재하는 여러 감각을 드러내는 조건이 된다.
작가는 〈Reserved for Future Cases〉와 〈Epidermal Script〉 연작에서 AI와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이미지 위에 바이오(Bio) 재료를 더해, 비현실적 질병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강렬한 색감과 거친 표면, 탈락한 막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언뜻 생명이 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내 액체가 마른 흔적과 내외부가 필연적으로 만나는 다공성 표면으로 인해 화면은 다시 생과 접촉하는 막이 된다. 작가는 이를 위해 AI와 대화하며 만든 이미지 위에, 바이오 재료를 섞고 뿌리고 휘젓고 말린 후 다시 붓고 휘젓는 일련의 반복적 수행을 거친다. 이때 작가의 수행은 데이터와 생명이라는 이분법적인 경계를 부드럽게 허물어 하나의 화면으로 길어 올리는 움직임이 된다.

더불어 〈Skinscape〉, 〈28 days skin〉 연작에서는 탈락된 막이 더욱 여실히 드러나는데, 막 또한 모두 먹을 수 있는 바이오 재료로 형성되었다. 이때 바이오 재료가 소환하는 식용성의 의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먹는 것은 소화기관을 거쳐 우리 몸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때로는 제대로 흡수되지 못하고 배출되거나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즉, 몸 안팎의 경계를 통과하면서 흡수와 거부, 공생과 탈락의 반응을 동시에 발생시킨다. 더불어 작가의 작업에서 사용된 바이오 재료인 스코비, 젤라틴, 식용 색소 등은 스스로 형태를 바꾸며, 막을 만들고, 얼룩을 남겨 다시 작품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때문에 작가의 작업에서 우리의 몸과 공명하는 이 바이오 막은 얇은 데이터의 표면에서 멀어져, 죽음과 생이 맞닿는 순환의 주체가 된다.
따라서 《Soft Temple》은 여성의 부드러운 몸을 찬양하는 신전이 아니다. 오히려 정상성이라는 하나의 완벽하고 고결한 여성성에서 이탈된 축축한 몸, 탈락되고 오염된 몸 안팎의 존재와 만나는 사원이다. 이 사원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날카롭지 않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얼마나 딱딱하고 투박하며 감각적으로 무지하게 나뉘어 왔는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를 드러내는 작가의 감각은 결코 이분법적이거나 차갑지 않다. 여러 색이 섞이고, 젖고, 흐르고, 무너지며 물컹거리는 강채연의 작업은 데이터 밖의 무수한 존재와의 호흡을 드러낸다.
따라서 작가가 제시하는 삶은 0과 1로 나뉘는 경계, 스크린에 비친 가벼운 데이터, 혹은 우리의 마지막 숨까지 예측하려는 AI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이 모든 데이터마저도 촉촉하게 흐르게 하고, 외부와 부딪혀 썩어 죽게 만들며, 다시 태어나게 한다. 죽음의 여러 막과 그 막 사이를 충돌하여 굽이굽이 흐르는 것. 그것은 부드러워서 모호한 삶이자, 동시에 항상 죽음과 맞닿은 우리의 몸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물컹한 몸을 끌어안고, 서로 맞대며, 온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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