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해상도 展

The Resolution of Memory

 

최영. 전우현. 김선재

 

 

 

마리나 갤러리

 

2026. 6. 5(금) ▶ 2026. 6. 27(토)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호수로817 레이킨스몰 260호(백화점 2층 연결통로 앞)

 

www.marinagallery.co.kr

 

 

최영 作_모호한 해상도(Ambiguous Resolution)0411, 2026_Oil on Canvas_50×50cm

 

 

우리는 매일 수천 장의 이미지 속에 산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시선을 점유하는 이미지들 속에서, 세상은 더 선명하게, 더 빠르게 보여줄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선명함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무엇을 또렷하게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 이미지는 하나의 권력이 되고 배제의 도구가 된다. 선명함이 진실처럼 작동하는 세계에서, 흐릿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진다.

이 전시는 그 강요된 선명함으로부터 기꺼이 비켜선 세 작가ㅡ최영, 전우현, 김선재ㅡ의 이야기다. 이들은 흐리고, 겹치고, 머무는 방식을 통해 우리 곁에서 지워진 풍경과 기억을 복원한다.

이러한 사유의 궤적은 도시의 경계를 넘어 세 작가의 공간을 오가며 마주한 풍경들로부터 더욱 선명해졌다. 갤러리스트로서 직접 목격한 그들의 공간은 단순한 제작 현장이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의 밀도를 쌓아 올리는 사색의 장소였다.

최 영의 연구실에서 마주한 환한 미소는 그가 다루는 흔들리는 이미지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의 작업은 전쟁과 이념이 충돌하는 시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더 이상 선명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제주 4·3의 피해자였던 할머니의 역사를 뒤늦게 마주하고, 어릴 적 바닷속에서 눈을 떴을 때의 뿌연 세상을 기억하는 작가에게, 흐림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다. 그의 화면 속 대상은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이 하나의 층위 안에서 겹쳐지고 서로를 침범하며, 유화 특유의 블러링(blurring)은 대상을 고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게 만든다. 그에게 해상도는 기술적 수치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밀도이며, 동시에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이다.

 

전우현 作_같은 시간 같은 자리 1, 2026_oil on canvas_116.0×80.0cm

 

 

전우현의 공간은 식물들이 주인공이 되는 다정한 채집소였다. 작업실 한 편에 놓인 노란 꽃 화분처럼, 그는 재개발의 틈새에서 홀로 피어난 접시꽃이나 사라져가는 골목의 빛을 캔버스 위로 옮겨온다. 반복된 산책의 경로 속에서 마주한 대상들을 통해 개인의 이동과 정착, 불안과 회복의 감각을 하나의 화면 안에 중첩시키는 그의 작업은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그 안에 어떤 시간이 깃들어 있는가를 묻는다.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늘어선 물감 튜브와 붓의 흔적들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해 그가 얼마나 오래, 깊게 머물러왔는지를 증명하는 숭고한 노동의 기록이다.

작업실 한복판에 서서 자신의 세계를 응시하던 김선재의 뒷모습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호출해내는 치열함이 느껴졌다. 다양한 조형물의 골조와 섬세한 회화 작업들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그는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지점의 여백을 묵묵히 쌓아간다. 숲속에서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는 낯선 눈빛, 빛을 머금고 공중을 유영하는 신비로운 존재들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세계를 자신의 기억처럼 느끼는 순간, 관객이 스스로의 기억을 호출할 수 있도록 비워둔 그 여백은 작가의 깊은 고민이 머문 자리다.

세 작가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 선다. 우리가 선명하게 보지 못했던 것들, 흐릿하게 남겨진 시간들, 겹쳐진 채로 존재하는 기억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작업실의 공기를 가르며 나눈 대화들, 그곳에 머물던 물감의 냄새와 창밖의 빛은 이제 마리나갤러리라는 공간으로 옮겨왔다. 이 전시는 성급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선명함이 놓쳐버린 흐린 것들 앞에서,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게 머물기를.

 

글. 함윤희(마리나갤러리)

 

 

김선재 作_2025_Over World Map_아이패드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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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60605-The Resolution of Memory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