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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oko NAGAI 展
토모코 나가이
Origami Light and Cabbage-Green Curtains

페로탕 도산파크
2026. 5. 15(금) ▶ 2026. 6. 27(토)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10 | T.02-545-7978
www.perrotin.com

Origami Light and Cabbage-Green Curtains Tomoko NAGAI
페로탕 서울은 토모코 나가이의 개인전 《빛의 종이접기와 양배추색 커튼》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최근 작업을 중심으로, 작가가 회화 매체를 통해 구축해온 고유한 시각적 서사와 감각을 조망한다. 나가이의 화면은 일상적이고 사적인 대상들로부터 출발하지만, 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공간감과 리듬을 형성한다. 직관적인 구성과 과감한 색채, 그리고 속도감 있는 붓질은 화면 전반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친숙한 이미지들은 낯선 방식으로 병치되고 확장된다. 이러한 회화적 전개는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장면을 만들어내며, 관람자로 하여금 장면 사이를 유영하듯 경험하도록 이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간 축적해온 조형적 감각과 동시대 회화 안에서의 위치를 새롭게 환기하는 자리로, 개인적 기억과 시각적 상상이 결합된 회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곰인형, 소녀, 인형의집, 유니콘, 꽃, 피크닉 등 나가이 토모코의 작품 속 소재들을 열거한다면, 단순히 귀엽기만 한 작품을 연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단순하지도, 또, 귀엽기만 하지도 않다. 작품 표면에는 색과 붓질과 때로는 스프레이 된 그라데이션의 지층이 조밀하고 깊이 있게 쌓여, 사진으로는 결코 회화적 표현의 깊이가 파악이 잘 안될 정도이다. 뉴트로로 대변되는 색감도 적절히 난이도 있는 세련감을 보여준다. 작품 구석구석에는 나가이가 오랫동안 쌓아온 물감과 건식재료를 다루는 필력을 통해 구현한 안정감 있는 회화의 매력과 단호한 자신감이 가득하고, 천부적이라 밖에 할 수 없는 조형감각이 돋보인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그림을 그리는 행복, 조형적 안정감, 긍정적 감정들이 천연의 충전재처럼 사이사이에 채워진 따사로운 지도처럼 다가온다.
나가이는 일본의 동경, 오사카 다음으로 큰 도시인 나고야가 있는 아이치현에 태어나 아이치현립 예술대학 유화과를 졸업한 후 동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치예술대학은 대부분의 일본의 엘리트 미술대학과 같이 석고상, 정물화, 자화상 등을 그리는 아카데믹하고 엄격한 입학 실기시험을 본다. 이 곳은 나라 요시토모의 모교이기도 한데, 진지한 소묘에서 소녀들의 초상으로 옮겨간 나라처럼, 나가이 역시 ‘입시미술’을 겪었고 고전적 의미에서의 소묘기술과 화면 구성력을 체득하여 입학한 후 서서히 현재의 스타일로 옮겨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가이가 그려내는 드레스 입은 소녀나 핑크색 토끼, 단순화 된 나무나 버섯, 원근이 사라진 공간들은 얼핏 어리숙한 그림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감식안을 통해 조금만 관찰하면 화면 속의 뛰어난 균형감, 쌓아 올려진 물감의 절묘한 농담조절과 색채조합, 거침없는 붓의 사용, 탄탄한 디테일의 묘사 등이 실력파의 솜씨를 드러내는, 즉, 일종의 기술적 순진함을 가장한(technically faux-naïf) 화면임을 알 수 있다.
나가이의 그림 속 공간은 르네상스적 원근법을 생략하여 마치 로마시대 벽화처럼 동, 식물들과 소품들을 화면에 펼쳐 보여주고 있어 확장성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방 안의 카펫이 어느 순간 밤하늘로, 화분의 꽃이 정글 속 열대식물로 마치 이야기 타래처럼 엮이듯 연결된다. 이런 경향은 20세기 중엽에 마티스가 남 프랑스 니스의 호텔 실내풍경 속에 창 밖 해변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테이블보 디자인이 그대로 벽지까지 타고 올라가게 하는 식의 현실의 공간을 초월하여 2차원과 3차원이 우아하게 교차되는 감각을 생각나게도 한다. 양쪽 모두 마치 누군가가 애써 일상의 시계를 멈춤으로써 행복한 나날을 보장받은 양 달콤한 시간만이 흐르는 화면이다. 나가이의 화면에서는 소녀의 방, 인형의 집, 숲이었다가 공책의 표지도 되었다가 하는 공간에 체크패턴, 물방울, 과일, 동물 캐릭터들이 부유하는 듯 표현되어, 작가의 경쾌한 순발력이 쫓아다니는 우리의 시선을 즐겁게 한다. 아이들이 인형의 집 속을 들여다보며 놀 수 있는 것처럼 인형의 집은 입체이기도 하지만 전개된 공간이기도 하고 또 실내이면서 외부인 것 같기도, 진짜이면서 가짜인 것 같은 도착적인 감각이 신선하면서 자유롭다.

이런 신선한 감각의 표현은 그녀가 밑그림으로 시작하지 않고 머리속의 청사진을 바탕으로 직관적으로 직시하며 속도감 있게 작업을 하는 방식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림을 그릴 때는 밀도 높은 집중력을 유지했다 쉬는 사이클을 이어간다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문득 바타유가 라스코의 동굴벽화를 그리던 선사시대 화가들을 언급한 것이 떠올랐다. 바타유는동굴속동물의이미지들이서로얽힌듯겹쳐묘사되어있는 방식이 단순히 아름다움이나 장식성만을 유념하여 그린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그는 이러한 예술이 통상적인 습관이 아니라 천재적 순발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이같이 의식적 의도를 초월하는 방식이 이 예술의 가장 중요한 계기와 맞닿는다고 한다. 나가이 작품의 매력도 우리가 예술을 규정하는 지루한 틀에서 벗어난 초범주적이고 다소 파괴적인 방식, 그리고 작가 내면의 온전한 경험적 에너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다양한 것 처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방식 또한 다양한 것이다.
“조그마한 것들을 동경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이번 전시에서도 어린시절부터 아끼고 좋아하던 사랑스러운 대상들을 곁에 두며 탐닉하는 기쁨과 마주할 때의 흥분, 과거에 대한 기억들이 작품 전면을 차지한다. 엄지손가락 만한 고양이, 토끼, 다람쥐 등 소동물가족이 서양식 옷을 입고 전원주택같이 여유로운 양옥에 살아가는 실바니안 패밀리의 피규어들에 대한 사랑과 수집욕은 일본에서 자란 아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겪는 열병 같은 것인데, 나가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또, 미국에 바비인형이 있다면 일본에는 리카쨩인형이 있는데, 나가이는 이런 마루인형도 여럿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실바니안도 리카짱인형의 경우도 인형의 가족, 친족, 친구의 개체수가 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의상, 액세서리, 초소형 가재도구, 식품모형 등의 미시적 세계관은 어린이 장난감의 차원을 넘는 일본디자인의 섬세한 디테일과 압도적인 집념을 보여 줄뿐더러 이와 함께 성장한 성인들에게는 현실도피적 노스탈지아를 달고 살게 만든다. 애정으로 만들어진 소품들을 만끽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여전히 함께하는 작가의 따사로운 행복감이 그녀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에게도 전달된다.
동시대 작가 중에는 엘리자베스 페이턴이나 카렌 클림닉 등이 나가이의 경향과 유사한 점이 있다. 모더니즘의 규제하에서는 공공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캔버스의 표면에 사사롭고 자신에게 친밀하고 소중한 대상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펼치는 태도는 포스트모던 이후의 회화적 징후인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적이고 키치적 서사를 스스럼없이 캔버스나 전시장으로 옮기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일상 또는 소녀적 기억 속에서 몽상적인 소재를 찾으며 케케묵은 격식을 버리고 흐트러진 듯한 터치로 부담 없이 펼치는 회화의 도발, 즉 새로운 세대의 세련감이 잠재된 회화들이다.
나가이의 손길에 시대감각을 견인하는 매력이 있는 것이 분명한 것이 그녀는 일본의 공영방송 NHK의 제2의 채널이면서 전국적 영향력을 보유한 NHK교육TV(NHK E)와 손을 잡고 협업을 한 바도 있다. 교육TV 는 디자인대국인 일본의 국영방송 답게 일본의 지식 뿐 아니라 디자인의 미래 또한 이끌어가는 채널로, 일본의 탑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도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나가이는 어린이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오프닝 타이틀 디자인과 예술작품 제작을 담당하면서 일본의 어린 세대들을 위한 예술적이면서도 전위적인 시각경험을 마련한 바 있다. 일본의 차세대를 인양하는 나가이의 감각이 한국의 관객들도 매료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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