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미형 展
눈앞의 풍경

mother_116.5x90.8cm
NO BOUNDARY GALLERY
2026. 5. 1(금) ▶ 2026. 5. 30(토)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번영로 2610 (성읍리) 2층

간절함_116.5x90.8cm
페인팅을 시도해보면서 향나무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모아 작년 여름 전시를 했었다. 전시가 끝나고 좀 더 큰 크기에 향나무그림을 다시 그려보았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그림에 대한 나의 공부랄까 탐색이랄까, 향나무가 아닌 것들도 그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서 사진작업으로 이야기를 풀던 넝쿨을 그리게 되었다. 두 눈을 사로잡은 넝쿨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은 절박한 삶에 대면한 나의 소망이 투영되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핏줄 같고 뼈대 같은 겨울 넝쿨선의 자태에 매료되어 겨울에만 사진으로 기록했었다. 그러다 싱싱한 초록으로 모든 것들을 덮어버리는 여름의 무성한 넝쿨로도 시선이 옮겨갔다.
한 무리의 초록넝쿨들이 기어이 삼나무꼭대기까지 닿았다. 길고 긴 여름은 그들의 편에 섰다. 간절함을 아는 듯. 절실함은 이런 모습들의 조합이 아닐까. 두 손을 모아 간절한 기도를 하는 여자, 그 여자의 손을 잡고 함께 마음을 전하는 남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할아버지, 떠나지 못하고 산자들 사이를 떠도는 해골과 유령들. 그들이 이 오래된 창고를 지키며 함께 하고 있다.
벌판에 야자수들이 촘촘히 서 있다. 그 야자수를 타고 오르는 수직의 넝쿨들이 반짝이는 햇살을 받아 따듯하게 보인다. 엄마가 떠준 털스웨터를 입은 듯 매서운 바람에 춥지 않을 것 같다. 넝쿨이 이렇게 높이 오르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벌판의 중심에는 낡고 허물어져가는 작은 집이 있다. 그 집을 감싸 안으며 한 몸이 되어 누워있는 넝쿨들. 그늘 속에서 말없이 더 높은 꼭대기로 새로운 넝쿨들을 올려 보내고 있다.
넝쿨은 나무처럼 스스로를 단단하게 세우지는 못하지만 서로 엮이며 뻗어간다. 생존에 대한 넝쿨의 의지는 너무도 확고해 거대한 나무조차 휘감을 만큼 강력하다. 높은 언덕을 장악한 넝쿨들은 이 아름다운 낙원의 주인이 자신이라며 당당하게 서 있다. 소나무를 타고 오르며 승리의 여신처럼 우뚝 서서 나를 부른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얽히고설킨 채로 이런 저런 모양이지만 넝쿨은 혼자가 아니면서 하나이다. 그들의 놀라운 생명력이 뜨거운 태양을 만나 반짝이는 풍경을 본다.
넝쿨이 흐르는 과수원창고를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림 속 두 개의 창고는 같은 창고인데 다른 계절의 풍경을 기록해 두었다가 그림으로 담았다. 뒤로는 바람을 막아주는 삼나무들. 여름에는 쏟아지는 듯 푸르게 성하고 겨울에는 시들어가며 무너지는 넝쿨의 생을 담아 보고 싶었다. 굳게 잠긴 대문은 하여 감귤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삼나무와 넝쿨까지 이 낙원의 모든 것들을 지키고 있다.

나는 기다리네_116.5x90.8cm
커다란 새의 날개 같은 넝쿨도 보았다. 지는 해를 뒤로하고 고개를 숙인 채 온몸으로 생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아침이면 떠오르는 해를 향해 두 손을 쭈욱 뻗으며 나아가는 넝쿨도 있었다. 이렇게 넝쿨은 지나는 나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맨 처음 그린 넝쿨 그림은 ‘평화의 집’이다. 시린 바람이 불던 겨울, 넝쿨이 휘감은 이 하얀 집을 보았을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전율이 흐른다. 사람이 떠나고 오래도록 시간이 흐른 강렬한 흔적. ‘평화의 집’이라는 낡은 현판 주위로도 넝쿨들이 물결처럼 흐르고 있었다. 넝쿨들은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도 들어가 내부도 점령하고 삼켜버릴 기세였다. 불현듯 어쩌면 평화란 이런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갈등의 시간을 뒤로 하고 넝쿨은 보란 듯 저항의 상징처럼 이 집에 남았다. 모두가 떠나버려도 넝쿨만은 빈집에 남아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그 손길을 뻗어 집을 지켜내는 것 같았다. 잠시 눈을 감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평화의 집을 오가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지금 이대로가 평화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넝쿨이 선사한 풍경 말고도 잊지 못할 몇 장면을 그림에 담았다. 눈물을 흘리는 과수원 창고가 그 중 하나이다. 몇 해 전 고3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지나면서 봐두었던 과수원으로 향했다. 서귀포의 진한 아침햇살은 새로 깔아놓은 하얀 타이백 위에 선명한 그림자를 남겼다. 탐스런 귤들이 영글어가는 과수원을 지키며 너의 삶도 고단하구나. 흰 눈이 내린 듯 반짝이는 세상에서 혼자 늙은 창고가 붉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귀한 눈 풍경도 꼭 그려보고 싶었다. 동백나무와 먼나무 그리고 향나무 삼형제에 둘러싸인 이웃집 위로 눈이 흩날린다.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입술이 열리며 “아아! 첫눈.”이라고 말한다. 처음 보는 눈인 것처럼, 처음 말을 하게 된 사람처럼, 처음 사는 것만 같은 시간 위로 순백의 눈이 쌓여간다.
바닷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 혼자서 바다를 바라보는 여자를 보았다. 슬픈 일이 있었던 걸까? 외로운 그녀의 뒷모습에 마음이 쓰인다. 그녀의 마음처럼, 내 마음처럼 큰 파도가 일렁이다 부서지고 또 다른 파도가 일어났다 사그라진다. 밀려오며 요동치던 성난 파도는 신기하게도 그녀 앞에서 이내 잠잠해진다. 가슴에 커다란 파도가 있으니 누구보다 파도를 잘 안다는 듯 그녀는 파도를 달래주고 있었다. 여기 가득한 쓸쓸함으로 강인한 한사람,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기형도 ‘그집 앞’ 중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낙원의 파수꾼_90.8x116.6cm

눈물을 흘리는_64.9x90.8c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