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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실 展
Gardening & Painting
정원일과 그리기

블루메미술관
2026. 5. 1(금) ▶ 2026. 10. 31(토)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59-30 | T.031-944-6324
www.bmca.or.kr

흙을 일구듯, 그림을 가꾸다 - 백순실의 40년 회화를 정원일의 언어로 읽는 전시
흙을 일구고, 씨앗을 심고, 다듬고, 때로 덮고 기다리는 일. 정원일은 느리고 반복적이며 그 결과를 온전히 예측할 수 없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떠한가. 블루메미술관은 올해 기획전시로 한국 추상회화의 독자적인 세계를 40여 년간 이어온 백순실 작가의 개인전 《정원일과 그리기》를 선보인다. 이 전시는 그리기와 정원일이라는 언뜻 무관해 보이는 두 행위 사이에서 공통된 시간의 감각과 몸의 언어를 발견하고, 그 연결을 통해 백순실의 작업을 새로운 방식으로 읽어보려는 시도이다. 전시는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1980년대 말부터 최근작까지 35점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백순실은 40여 년간 동다송(東茶頌) 연작을 지속해온 작가이다. 초의선사가 기록한 한국 차 문화의 정신을 화면의 언어로 번역해온 그의 작업은 차를 마시는 일상의 행위로부터 출발한다. 먹과 화산석, 과슈와 매트 미디움, 해먹 등 다양한 재료를 수십 번 바르고 쌓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대지의 생명력을 담는 두터운 화면을 만들어온 작가에게, 동다송은 차에 관한 그림이 아니라 시간과 절제와 바탕에 대한 회화적 사유의 기록이다. 찻잎이 물에 스미듯, 안료가 종이에 얼룩을 내듯, 재료가 시간을 지나 화면이 되는 이 과정은 정원사가 흙과 계절에 기대어 정원을 만드는 방식과 닮아있다. 이 전시는 그 닮음을 개념적 렌즈 삼아, 백순실의 그림을 '정원일의 언어'로 다시 읽는다.

전시는 일구다, 가꾸다, 기다리다, 덮다라는 네 개의 정원일 어휘를 공간의 흐름으로 구성한다. 일구다- 80년대 말 한지 위에 세필로 반복해 그은 선들과 2000년대 캔버스에 재료를 쌓아 만든 바탕이 서로 다른 표정으로 일궈진 흙밭처럼 펼쳐지는 첫 공간. 관객은 고랑사이를 거닐 듯 그림이 일어난 장소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꾸다 - 바탕 위로 형상과 색이 더 강하게 말을 거는 90년대 중후반 작품들의 공간, 정원사의 손길이 식물에 미치듯 작가의 의지가 화면 위로 뚜렷해지는 시간이다. 기다리다 - 재료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화면,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효과가 전면에 드러나는 작업들로 구성된다. 흙과 물과 미생물에 기대어 서는 정원사처럼, 작가는 여기서 조금 물러서 재료의 시간을 기다린다. 덮다 - <Quiet Time>이라는 제목의 작품들이 실제 작가가 가꾼 정원이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마지막 방에 놓인다. 이미 일구어진 바탕을 오래 바라보다 떠오르는 형상을 찾아 띄워내는, 그리기가 아니라 찾기에 가까운 행위의 그림들이 겨울의 정원사가 다음 계절을 생각하며 고요히 자연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전시는 마무리된다.
《정원일과 그리기》는 완성된 이미지를 감상하기 위한 전시가 아니다. 그림이 만들어진 시간, 재료와 행위가 화면이 되어간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작가가 자연과 맺어온 관계를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이다. 정원사이자 화가인 백순실의 일구어진 화면 앞에서 우리가 오래 머물게 되는 것은, 그 그림이 완성된 이미지이기 이전에 지금도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삶의 장소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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