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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은 展

gallery is
2026. 4. 1(수) ▶ 2026. 4. 7(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52-1 | T.02-736-6669
www.galleryis.com

인연, 머무는 시간의 회화 - 개인전 <인연>에 부쳐
김경은의 그림은 늘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꽃, 나무, 산책길에서 스치듯 만난 풍경들, 함께 시간을 보낸 얼굴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지만, 그림 속에 남는 것은 장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지나온 뒤의 마음이다.
첫 개인전 이후 시간이 꽤 흘렀다. 그동안 그림은 삶에서 떨어져 있지 않았고, 오히려 일상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쌓여왔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 걸린 작품들은 이전보다 더 조용하고, 말수가 적다. 그 조용함 속에는 그동안 버텨온 시간과 선택의 무게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이번 개인전 <인연>에서 만나는 그림들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꽃은 화려하게 피지 않고, 풍경은 계절을 주장하지 않으며, 인물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화면에는 멈춰 선 시간, 말로 다 하지 않은 마음, 그리고 관계 속에서 생겨난 거리감이 남아 있다. 작가는 종종 말해왔다. 자신이 어떻게 작품을 완성하게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그러나 작품에 드러난 조용함과 고독감은 우연이 아니라 작가가 스스로 선택해 온 태도처럼 보인다.
<사과나무>는 이번 전시에서 오래 머물게 하는 그림이다. 열매를 강조하지도, 계절을 말하지도 않은 채 화면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는 무엇을 상징하기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시간을 담담히 품고 있다. 크림 톤으로 눌린 색감과 정직한 구도는 대부분의 나무가 풍경의 요소가 되는 것과는 달리, 그 자체로 두기 위한 장면, 하나의 존재 상태로 만든다.
김경은의 꽃 연작들은 여전히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마음을 사로잡지만, 이번 전시의 새로운 지점은 풍경과 나무로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한 걸음 물러나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이다. 그 흐름에 <Sunny>나 <4월> 같은 작품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보는 이의 기억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포개게 하고, 감각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Sunny>는 느슨한 공간 속에서 보는 이가 자연스럽게 산에서 들판으로, 다시 강아지로 시선을 천천히 옮기며 평온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그림 속의 강아지는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존재이지만, 편안한 색감 속에서 기억 속의 한 장면으로 작동한다. 나무 하나, 길 하나가 감정의 중심이 되어 동행의 느낌을 전달한다.
<4월>은 계절을 다루고 있지만, 봄의 생동감이나 서정을 강조하지 않는다. 여기서 4월은 시작의 계절이라기보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담장 너머 자리의 이미 지나가고 있는 시간에 가깝다. 꽃과 색은 존재하지만 앞서 나서지 않고, 화면 전체는 한 걸음 물러난 거리에서 유지된다. 이 절제된 시선 덕분에 보는 이는 언젠가 자신의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나무를 찾게 된다.
첫 개인전과 이번의 꽃 연작을 통해 김경은을 꽃의 작가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꽃은 전형적인 아름다움이나 생명력을 상징한 적이 없다. 김경은의 꽃은 말하지 않는 인물이며, 그래서 꽃 작품은 늘 인연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화 또한, 그동안 옆을 보고 있는 꽃, 스러져 가는 꽃, 혼자 있는 꽃을 그려오며 이미 예견되어 있던 또 하나의 장을 펼친 것이다.
김경은의 그림에서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일상을 대상으로 하되 그것을 기록하지 않으며,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관계를 낭만화하지 않는 태도다. 작가는 일상에서 건져낸 기억의 밀도를 조용히 장면에 남기고, 보는 이는 그림 앞에 서 있는 동안 강요하지 않는 작가의 세계를 각자의 호흡으로 천천히 경험한다.
<인연>이라는 제목처럼, 이번 전시는 관계의 흔적과 시간의 응축을 보여준다. 이 그림들은 말이 적지만 오래 남는다. 아마도 우리가 인연을 기억하는 방식과 닮아 있어서일 것이다.
작가의 바람처럼 다음 개인전이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찾아온다면, 개인적으로는 <사과나무>의 다음 장면을 기대해 본다. 조금은 흐트러지고 흔들리는 시간의 자국을 담은 모습도 좋을 것 같다.
2026년 4월 이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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