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진 초대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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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뮤지엄갤러리 제1관

 

2026. 3. 18(수) ▶ 2026. 3. 29(일)

초대일시 | 2026. 3. 18(수) pm 5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09 대양AI센터 B1 | T.02-3408-4162/4

 

www.gallery.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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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진의 조각을 보는 시선

 

빨래판의 해학, 숭고와 비천함의 경계

작품의 토대가 되는 '빨래판'은 한국적 일상의 서사를 품고 있다. 과거의 빨래터는 노동의 현장인 동시에 여성들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였으며, 빨래판의 굴곡은 옷감을 문지르는 반복적인 '신체적 접촉'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해학은 빨래판이라는 비루한 도구가 인간의 고귀하고 관능적인 신체(가슴, 엉덩이)와 겹쳐질 때 생기는 '숭고함과 비천함의 조화'에 있다.

역사적으로 성적 해학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사회적 금기를 무너뜨리고 인간의 본질을 폭로하는 도구였다. 중세 기도서 가장자리의 외설적인 낙서나, 성자의 황홀경을 육체적 절정으로 표현한 바로크 미술이 그러했다.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를 예술 작품으로 격상시킨 것처럼, 고영진은 빨래판의 요철을 신체의 곡선으로 치환하며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위트를 던진다.

 

라캉의 그물망과 기호화된 섹슈얼리티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성(Sexuality)이 생물학적 결합을 넘어 언어와 사회적 규범에 의해 길들여지는 영역이라고 보았다. 작품 속 인체를 가로지르는 가로줄(주사선)은 바로 사회가 드리운 '그물망'을 시각화한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신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매체가 스캔하여 박제한 '기호로서의 성'을 소비할 뿐이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대상의 전체가 아닌 특정 부분(눈빛, 목소리, 신체 일부 등)에 집착한다. 작품이 신체를 온전한 전신이 아닌 가슴, 엉덩이, 손 등으로 파편화하여 보여주는 방식은 우리가 타인을 욕망할 때 전체성을 잃고 특정 부위만을 쫓는 결핍의 존재임을 드러낸다.

반면, 빨래판의 거친 요철은 나무의 생태적 질감, 즉 언어로 다 가둘 수 없는 육체의 '실재(The Real)'를 대변한다. 이는 육체를 데이터로 통제하려는 현대 사회의 시선에 대한 저항이다. 작가는 빨래판이라는 아날로그적 사물에 디지털적 주사선을 새김으로써,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인공적인 환상에 매몰되어 있는지 묻는다. 촘촘한 격자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나무의 생동감은 관객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실재'의 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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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에 대한 해학적 보고서

오늘날 유튜브나 숏폼 콘텐츠는 신체를 전체로 보여주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가장 자극적인 부위만을 정밀하게 골라내어 전시하고, 대중의 시선을 특정 부위에만 고정시킨다. 작가는 이러한 현대 매체의 폭력성을 조형적 오마주로 비튼다. 만 레이의 곡선과 원시 비너스의 볼륨은 현대적 가공을 거치며 하나의 '상품'이나 '기호'로 박제된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가 신체를 어떻게 효율적인 상품으로 규격화하고 지배하는지 그 시각적 권력의 작동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역설적이게도 이 비판적 성찰은 '나무'라는 묵직한 재료를 통해 완성된다. 금방 사라지는 디지털 이미지와 달리, 작가는 칼날로 새긴 깊은 홈을 통해 알고리즘화된 신체에 '무게'와 '실재감'을 부여한다. 시각적 유희로만 소비되던 현대인의 섹슈얼리티를 다시 실존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이다.

작가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도구 위에 가장 디지털적인 시각 장치를 덧씌워, 우리의 욕망이 '빨래판의 노동(실재)'과 '디지털 스크린(허상)' 사이 어디쯤에 있음을 폭로한다. 결국 이 조각은 "빨래판으로 세탁된 현대인의 신체"에 대한 유쾌한 보고서이다. 작가는 관객에게 묻는다. 매일 스크롤하며 소비하는 수많은 육체 중, 온전한 '인간'으로 마주한 것이 있는가? 고영진의 조각은 알고리즘에 의해 조각난 우리의 감각을 복원하고, 시각적 권력의 주체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투박하고도 지적인 성찰의 기록이다.

 

정수모 (디지털 크리에이터, 조형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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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목신,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들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무언가를 그리고 만드는 행위가 좋았다. 부모님은 좀 더 안온한 길을 원하셨지만, 나는 결국 춥고 배고픈 조각가의 길을 택했다. 그렇게 나무와 함께 생의 고락을 나누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무라는 존재는 참 묘하다. 세파와 시간의 흐름을 자기 몸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기 때문이다. 켜켜이 쌓여 단단해진 나무의 근육, 손바닥에 닿는 정감 어린 촉감, 그리고 고유한 결이 만들어내는 무늬들. 그것들을 깎고 다듬는 '노작(勞作)'의 기쁨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흘러 내 나이도 일흔 중반을 훌쩍 넘어서게 되었다.

나무나 사람이나 결국 다를 게 없다. 세월이라는 풍파를 맞으면 병들어 갈라지기도 하고, 깊은 상처가 남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정성껏 치료받고 관리받아야 본래의 자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조금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인생의 순리 같은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조형적인 미를 탐구하고 추상적인 표현에 감성을 불어넣으며,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했다. 그때는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 속 주인공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를 위태롭게 오가며 지나간 사랑을 회상하곤 했다.

어느 해, 프랑스 유학 중이던 친구 정수모와 함께 우연히 퐁피두 미술관의 에로틱 전시회장을 거닐던 오후였다.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은 내 눈에 거대한 해일처럼 감각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외설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육체성을 메타포라는 정교한 틀 안에 가두어놓은 하나의 소우주였다.

그 무렵부터 나의 작업 노선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내면에 숨겨진 리비도를 슬쩍 건드리는 은유와 해학, 그리고 타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카타르시스적 작업들. 하지만 이제 나는 다시, 침묵과 감성이 공존하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창작의 여정을 이어가려 한다.

작업실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곳엔 건강하고 다정한 온기가 '발효'되고 있다. 이웃과 온기를 나누며 ' 이든이, 이봄이'와 평범한 하루하루를 한 편의 시나 단편영화처럼 엮어가는 가족들. 그들에게 마음 깊은 곳 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고고(高高)하고도 고고(固固)한 나무와 함께,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감성의 바다를 쉼 없이 항해하게 해주신 '목신'의 은혜에 나지막한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2026년 2월 28일 고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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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진 | 高寧辰 | Ko Young-Jin

 

서라벌 예술대학, 경희대학교 사범대학 | 미술교육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80 ~ 1984 한국미술청년작가회 | 1982 대한민국 국전 | 1983 ~ 1985 대한민국 미술대전 | 1984 중앙미술대전 | 1984 ~ 1996 한국미술협회전 | 1985 ~ 현재 조각가협회전 | 1986 동아미술대전 | 1986 서울현대미술제 | 1987 ~ 1996 이후전 | 1995 ~ 현재 한국 현대미술조형작가회 해외전 (중국, 베트남, 아르헨티나, 모로코, 인도, 터키, 불가리아, 이란, 독일, 튀니지,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에콰도르, 말레이시아, 대만, 네팔, 몽골, 블라디보스톡, 마닐라) | 2001 ~ 현재 한국미술협회 의왕지부 | 2010 이천 야외 조각심포지움 | 2014 예술의전당 서울 국제조각페스타 | 2015 국제조각페스타 | 2018 ~ 현재 체인지전 | 2026 세종뮤지엄갤러리기획전

 

개인전 | 6회 | 평화랑, 종로갤러리, 나화랑, Arts Will, 세종갤러리, 세종뮤지엄갤러리

 

현재 | 한국미술협회, 한국현대미술조형작가회, 체인지전, 한국조각가협회

 

해외전시 | 2019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 2016 블라디보스톡(아르세니예프 연해주립박물관) | 2015 몽골전(몽골국립현대미술관) | 2014 네팔전(네팔 국립미술관) | 2013 인도네시아전(인도네시아 국립 미술관) | 2012 대만전 (국립대만예술대학 아트뮤지엄) | 2011 터키전 (이스탄불 총영사관갤러리) | 2009 말레이시아전 (말레이시아 국립미술관) | 2008 에콰도르전 (에콰도르 과야사민 미술관) | 2007 카자흐스탄전 (카자흐스탄 국립미술관) | 2006 인도네시아전 (인도네시아 국립미술관) | 2004 튀니지전 (Maison des Arts) | 2003 독일 아시아태평양 교류전 (Urasia Art Hall) | 2002 이란전 (Saad-Abad Palace) | 2001 불가리아전 (앙카라 국립미술관) | 2000 터키전 (앙카라 국립미술관) | 1999 인도전 (전 인도조형예술협회 전시장) | 1997 모로코전 (모로코 국립미술관) | 1996 베트남전 (베트남 국립미술관) | 1996 아르헨티나전 (아르헨티나 국립미술관) | 1995 중국전 (중국 절강성 소주시 범달리 화랑)

 

작품소장 | 대한주택공사, 사단법인 대원학원, 롯데마트, 해태그룹, 봉화고등학교, 불가리아 대사관

 

E-mail | space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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