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남재 · 이세하 사제동행 展

 

기억의 공명, 선율의 흔적

 

故박남재 'Memory - 懷古之情' | 이세하 'Harmony - 가족사진'

 

옥천골미술관 개관전, 故 박남재 교수님과 제자 이세하(2016. 4. 22.)

 

 

순창공립미술관 본관 · 기획전시실

(옥천골미술관 · 섬진강미술관)

 

2026. 3. 17(화) ▶ 2026. 4. 26(일)

오프닝 | 박남재 'Memory-懷古之情'

순창공립미술관 기획전시실(섬진강미술관) | 2026. 3. 17(화) 10시30분

| ㅁ | 이세하 'Harmony-가족사진'

순창공립미술관 본관(옥천골미술관) | 2026. 3. 17(화) 14시30분

관람시간 | 10~18시(매주 월요일 휴관)

옥천골미술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로 81

섬진강미술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길 122

주최 · 주관 | 순창군

 

 

박남재 作_무제_oil on canvas_72.7x53.0cm

 

 

대지의 박동, 영원한 생명의 빛깔로 타오르다

- 박남재 예술의 존재론적 성찰과 한국적 인상주의의 승화

 

장욱진

 

1. 사물의 심장에서 길어 올린 내면의 빛과 색채의 해방

박남재의 캔버스는 단순히 외부의 물리적인 빛을 수동적으로 수용하여 재현하는 평면적 공간이 아닙니다. 그의 화면은 사물 내부에서 들끓으며 솟구쳐 오르는 근원적인 에너지가 투사되는 거대한 발광체이자, 작가의 생명력이 응축된 우주와 같습니다. 그는 사물 표면에 찰나적으로 머물다 사라지는 허망한 광선에 매몰되기보다, 존재 자체가 본질적으로 품고 있는 영원한 광채에 천착해 왔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과감하고 강렬한 원색의 향연은 단순히 시각적 화려함을 쫓는 유희가 아닙니다. 그것은 작가의 내면에서 뜨겁게 발현된 생명의 의지가 사물의 형상을 통과하며 뿜어내는 존재론적 선언이며, 동시에 자연에 대한 가장 정직하고도 숭고한 경의의 표현입니다.

​그가 직관적으로 길어 올린 깊은 쪽빛 하늘과 붉게 타오르는 황토빛 대지는 풍경의 물리적 모사를 넘어선 '영혼의 색채'입니다. 이 색채들은 팔레트 위에서 조합된 인공적인 안료를 넘어, 캔버스라는 평면 위에서 스스로 박동하며 살아 움직이는 자율적 생명체로서 그 존재감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이는 작가가 평생을 바쳐 탐구해 온 '보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색채라는 매개로 극복해 낸 경이로운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박남재 作_부안군항_oil on canvas_72.7x53cm_2005

 

 

2. 주체로 격상된 대지,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피어난 생명 서사

박남재에게 산과 바다는 묘사되어야 할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실존과 우주적 사유가 끊임없이 조응하고 충돌하는 거대한 서사의 장입니다. 그의 화면 속에서 산맥의 능선은 작가의 거친 붓질을 따라 마치 살아있는 거인의 호흡처럼 요동칩니다. 그는 자연을 인간의 관찰 아래 둔 부수적인 배경이 아니라, 절대적인 위상과 생명력을 지닌 능동적인 주체로 격상시켰습니다.

​특히 서구적 원근법이 지닌 위계적 질서를 과감히 거부하고 근경과 원경이 동일한 평면 위에서 팽팽하게 긴장하며 마주하도록 설계된 독창적인 구성은, 관객을 대지의 심연으로 강력하게 몰입시키는 영성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지리산이나 마이산과 같은 구체적인 우리 산하의 명승지들은 화백의 내밀한 직관을 통과하며 현실의 장소를 넘어선 고귀한 심상적 공간으로 전이됩니다. 이는 곧 캔버스라는 물질적 매체와 작가의 고결한 정신이 하나로 융합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해 내는 과정입니다. 작가는 자연을 정복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안에서 고동치는 대지의 음성을 붓질로 기록하였습니다.

 

 

박남재 作_무제_oil on canvas_53.0x45.5cm

 

 

3. 직관의 필치,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폭발적 에너지

그의 회화적 여정은 치밀한 계산이나 밑그림의 예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매 순간 마주하는 대상의 본질과 작가의 직관이 뜨겁게 충돌하며 나아가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연속입니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선명하게 남겨진 투박한 마티에르와 켜켜이 쌓인 거친 물감의 층위는, 무구한 시간의 풍상을 견뎌낸 대지의 거친 피부를 연상시키며 그 자체로 하나의 웅장한 드라마를 완성합니다. 이러한 직관적 행위는 세부적인 장식과 기교를 과감히 덜어내고 대상의 핵심만을 단숨에 관통하는 본질적 표현으로 이어지며, 정형화된 화면에 폭발적인 생명력의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특히 형태의 재현이라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면서도 존재의 실체감을 결코 놓치지 않는 그의 작업 방식은 현대 미술의 중대한 화두인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뭅니다. 구상회화가 지닌 서정적인 깊이와 추상회화가 지닌 절대적인 조형미가 한 화면 안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이내 조화롭게 융합되는 박남재만의 독보적인 예술적 영토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러한 에너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 작가가 캔버스 위에서 펼친 치열한 구축과 파괴의 현장에 동참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박남재 作_지리산의 가을_oil on canvas_72.7x60.6cm_2012

 

 

4. 다섯 가지 색의 겸손과 영원한 생명의 빛깔로 남은 이정표

"열 가지 색 중 나는 아직 다섯 가지밖에 모른다"고 말하며 광활한 색채의 미학 앞에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었던 거장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그의 예술을 일시적인 유행이나 세속적인 명성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화백은 사실적 묘사에 있어 완벽에 가까운 기량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본 작업에서는 인위적인 모든 기교를 배제한 채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회복하고 찬미하는 데 모든 예술적 역량을 결집했습니다. 그는 겸허한 구도자의 자세로 평생을 붓과 함께하며,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지점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이제 화백은 그토록 사랑했던 대지의 품으로 돌아갔으나, 그가 평생에 걸쳐 캔버스에 아로새긴 강렬한 빛깔과 생명의 박동은 여전히 뜨거운 기운을 내뿜으며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이번 회고전은 그의 예술적 혼이 여전히 우리 산하의 빛깔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목격하는 엄숙한 증언의 장이 될 것입니다. 대지의 참된 숨결을 일깨워주는 그의 예술은 시대를 넘어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살아있는 교과서이자, 한국 미술사가 간직할 영원한 이정표로 빛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가 평생을 바쳐 일구어낸 색채의 반역과 실체의 세계를 따라, 자연 그 자체가 된 위대한 예술가의 자아를 만나는 깊은 명상의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의 붓끝에서 시작된 대지의 울림은 이제 우리의 가슴 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빛깔로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박남재 作_바보 자화상_oil on canvas_53x72.7cm_2000

 

 

 

이세하 作_H.2084-노인과 바다_505x93cm_나무_2020

 

 

삶의 관계 지형과 하모니의 은유 - 공명에서 울림까지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이 글은 이세하의 개인전이 내세운 특별한 주제인 'Harmony-가족사진'이 어떻게 상응하면서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그녀의 작품이 지향하는 하모니가 품은 미학을 '삶의 관계 지형 속에서 공명에서 울림으로 확장하는 무엇'으로 풀이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I. 기억에서 소환하는 하모니 - 불협을 품은 조율의 미학

이세하는 오랫동안 자신의 화업의 주제인 '하모니(Harmony)'의 시각화에 골몰해 왔다. 그녀에게 하모니는 시간과 기억 속에 축적되어 왔던 각기 성질이 달라 보이는 여러 개별 요소가 하나의 화면 안에서 만나 이루는 '조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상이한 것들의 완벽한 하모니를 강조하기보다 상처, 체념, 회한, 절망에서 피어난 공존과 조화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하모니란 한 화가가 세계를 대면해서 해석하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조형 태도와 맞물리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녀가 기억 속에서 추출해 작품 속에 등장시키는 모든 구상 이미지-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와 같은 악기나 꽃, 포도나무, 자작나무, 사이프러스, 솔섬과 같은 자연물-은 하모니를 구성하는 그녀만의 조형 요소로 자리한다. 달리 말해 그 모든 요소는 하모니의 은유인 셈이다.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하모니는 단지 '잘 어울림'을 뜻하는 미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모니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시간, 공간, 감각 같은 '같은 장(場)'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보존한 채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 관계적 형식이다. 우리는 안다. 그 질서란 단순히 불협을 지우는 평정이 아니라, 충돌과 어긋남을 포함한 채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긴장과 이완 그리고 균형을 배치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따라서 하모니는 완성된 상태라기보다, 이질적인 것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공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정되는 과정의 미학이다. 여기서 조화는 동일성의 승리가 아니라, 각 요소가 자기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자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는 구성의 윤리로 읽힌다. 결국 하모니의 미학은 "하나로 만들기"가 아니라 "함께 있게 하기"―다름이 다름으로 남아 서로를 살리는 공존의 감각을 조직하는 데 있다.

이세하의 작품에서 이러한 하모니는 과거 속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의 화면에 모이면서 시작된다. 포도나무와 화단을 가꾸던 아버지와 채전(菜田)을 가꾸던 어머니, 집 뒷마당에 아버지가 만든 토굴, 소환되는 부안 고향에서의 유년 시절의 추억, 그리고 음악, 미술, 무용을 유난히 좋아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 그리고 십여 년의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작품 속에 자리한 여러 기억의 파편 중에서도 유난히 커다랗게 자리한다.

특히 학창 시절부터 심취했던 모차르트를 필두로 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1919)이나 청년기에 읽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1952)과 같은 문학이 전하는 삶의 철학은 그녀의 작품 속에 잠재적인 힘으로 자리한다. 이와 같은, 다른 것들이 공존, 공생하는 삶 속의 문학, 음악 등 예술의 세계는 하모니의 메시지를 전하기에 족하다.

한편, 앞의 두 문학 작품이 전하는 하모니의 메시지는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즉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보다 내면의 성숙과 존엄을 지키는 투쟁이 무엇보다 주요하다는 삶의 철학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하모니의 세계를 견인한다. '데미안'이 내면의 선·악을 통합하는 하모니를 선보인다면, '노인과 바다'는 실패 가능성 속에서도 존엄을 유지하는 하모니를 보여주는 까닭이다. 여기서 하모니는 '불협이 부재하는 조화'가 아니라 '불협을 품은 조율'임은 물론이다. 이렇듯, 이세하의 작품은 동일성의 승리가 아니라, 어긋남이 어긋남으로 남은 채 공존하도록 박자와 간격을 맞추는 '관계의 조율'이라는 하모니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한다.

 

 

이세하 作_H.2084-노인과 바다_486.6x122.1cm_Acrylic on canvas_2020

 

 

II. 비순차성의 하모니 – 기억의 재배열과 감각의 재배치

전술했듯이, 이세하의 작품에서 하모니는 그녀가 과거의 추억에서 소환하는 모든 것에서 촉발한다. 아버지가 가꾸었던 화단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여러 종류의 꽃들, 넝쿨을 만들며 뜨락에 자리했던 포도나무, 바람에 흔들리며 은빛 몸체를 자랑하던 자작나무나, 푸른 대나무 숲, 고향 하천변에 즐비했던 갈대와 부들, 그 위에 떠오른 하얀 달, 그리고 우아하고 고즈넉한 자태를 뽐내던 솔섬의 풍광, 그리고 캐나다 생활에서 만났던 사이프러스 나무와 같은 '자연'은 물론이고 그녀가 애착했던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와 같은 '악기' 형상은 그녀의 작품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이러한 조형들은 잔잔한 화면 안에서 때론 이미지로, 때론 오브제로 만나고 헤어지길 거듭한다. 지구인지 달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별 혹은 행성, 똬리를 틀면서 힘있게 자라는 포도 넝쿨, 그 사이 공간을 산포(散布)하듯이 흩날리고 있는 꽃들 또는 붉은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 넝쿨 아래 자리한 포도주병과 기대어 있는 콘트라베이스가 어우러진 풍경을 보라. 때로 포도 나뭇잎, 들꽃, 달과 해를 같이 이고 있는 솔섬의 풍광 그리고 때로 커다랗게 자리한 바이올린의 한 측면이 분할된 화면 안에 각자의 자리를 점유하면서 환영의 풍경처럼 유영하고 있는 그의 '하모니' 연작은 사건과 기억의 비순차적이고 혼성적인 조합과 더불어 데페이즈망(dépaysement)과 같은 초현실적인 낯선 배치를 통해서 이질성들이 한 몸을 이룬 하모니의 세계를 길어 올린다.

그것은 마치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철학에서, 이질성(hétérogénité)이 연쇄되는 지속(durée)의 시간 개념과 같은 것이다. 우리 삶의 시간이 어디 하나도 같은 것이 있었던가? 베르그송의 '지속'이란 시계나 캘린더처럼 균등한 단위로 잘려 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 속으로 스며들되 결코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비가역적 시간(temps irréversible)이자, 그것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변형되는 '이질적인 사건들의 시간(temps d'événements hétérogènes)'이다. 그것은 피상적으로 아침, 저녁과 사계절이 반복, 순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속의 시간 속에서 비순차적으로 나아가는 '비반복적 이질성(hétérogénéité non répétitive)'의 세계인 셈이다.

또한 그것은 베르그송이 언급하는 멜로디(mélodie)의 비유와 연동한다. 즉 하나의 음과 또 하나의 음이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앞의 음이 뒤의 음 속에 남아 있고, 뒤의 음이 앞의 음을 변주하면서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되는 멜로디는 지속의 또 다른 말인 셈이다. 베르그송에게서 기억은 '저장고'가 아니라 현재 속에서 계속 새롭게 작동하는 지속의 층위이며, '재배열'이란 과거가 현재를 침투하며 의미를 갱신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멜로디처럼 이어지는 지속은 반복이 아니라, 매 순간 달라지는 질적 변화로서의 시간―기억이 현재를 물들이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세하의 작품 또한 이러한 멜로디가 창출하는 지속의 시간과 오버랩된다. 포도넝쿨과 달, 들꽃과 솔섬, 악기와 같은 조형의 단편적 이미지들이 '기억의 목록'처럼 자리한 그녀의 작품은 과거의 기억이 비순차적으로 화면 안에 침투해 들어오며 하나의 감각적 흐름을 만든다. 그 비순차성은 단절이 아니라 지속의 다른 형식―기억이 현재를 점유하고 현재가 기억을 재배열하는―을 드러낸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식 데페이즈망의 전략은 지속 속에서 서로 다른 시간층을 겹쳐 놓은 감각의 재배치로 읽힌다. 베르그송의 철학을 계승한 들뢰즈(Gilles Deleuze)는 감각을 재현의 결과가 아니라 힘들의 배치가 만들어내는 사건으로 보고, '재배치'란 이미지를 낯설게 배열해 새로운 지각의 가능성을 발생시키는 구성의 문제로 간파한다. 따라서 데페이즈망은 대상을 설명하기보다, 관성적인 배열을 전복함으로써 관객이 '다르게-느끼는' 감각의 사건을 촉발한다.

결국 그녀의 작품 속에서 구현되는 하모니는 지속하는 시간 속에서 이질적인 음들이 서로를 변화시키며 하나의 멜로디로 흘러가게 만드는 관계의 조직 원리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업이 피상적으로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유사한 조형 요소들이 매번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녀의 작업이 실제로는 '비반복적 이질성' 안에 자리하면서 기억의 재배열과 감각의 재배치를 지속하는 작업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이세하 作_H.2083-불.공기.물 그리고 흙_Acrylic on wood, 철_300x237x70cm_2020

 

 

III. 하모니를 은유하는 브리지 – 공명에서 울림까지

이세하의 작품 속에서 하모니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바이올린·콘트라베이스 같은 악기 형상과 꽃·포도나무·갈대·솔섬 등 자연물처럼, 기억에서 소환된 이질적 이미지들이 한 화면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보존한 채 공존하는 모든 '기억 대상'이다. 즉 그것들은 불협을 지우지 않고 박자와 간격을 맞춰 '함께 있게 하기'를 성립시키는 관계적 조율을 시각화하는 이세하만의 조형 요소인 셈이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바이올린이나 콘트라베이스 같은 악기의 한 부속인 브리지(Bridge)가 마치 하모니의 순연한 메타포(metaphor), 즉 하나의 '은유'로 자리한다는 것이다. 브리지는 현악기에서 줄과 몸통 사이에서 서로가 직접 맞닿지 못하도록 끼어든 '제3의 존재'이다. 줄의 높이와 간격 조정을 통해 줄의 진동을 몸통으로 전달해 소리를 증폭시키는 매개체의 역할을 담당함과 동시에 줄과 몸통 사이의 힘을 조율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브리지 높이가 너무 낮으면 소리가 막히고, 너무 높으면 긴장이 풀려 버린다. 미세한 형태·두께·가공의 차이에 따라 현악기의 음색을 다르게 만드는 일종의 필터인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브리지는 현악기에서 '연결·지지·변환'을 동시에 수행하는 결절점이자 '조화의 관계'를 성립시키는 가장 물리적인 은유가 된다.

따라서 이세하가 많은 작품 속에 등장시키고 있는 브리지 형상은 여러 '기억 대상'과 상이한 '조형 요소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도록 힘을 배치하고 재조정하는 '하모니'를 상징하고 은유한다. 물론 현악기의 또 다른 부분인 헤드의 스크롤(Scroll), 줄감개인 페그(Peg)나 보우(Bow)의 활대(Stick)를 더러 확대하여 강조하기도 하지만, 대개 브리지를 강조하는 작품이 다수를 이룬다. 이러한 차원에서 브리지는 그녀의 작품에서 하모니의 메타포로 넉넉히 자리한다.

이 글은 이세하의 작품 속 브리지를 하모니의 은유이자 공명(共鳴, resonance)과 울림(reverberation) 사이의 변환-매개라고 해설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공명'은 "어떤 물체 혹은 공간이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받았을 때, 그 주파수와 자연진동수(고유진동수)가 맞아 진동이 크게 증폭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원인과 조건이 만나는 주파수 일치를 통해 일어나는 증폭의 현상이다. 한편 '울림'은 "소리가 난 뒤에, 소리가 공간이나 물체에 반사·전달되며 계속 남아 퍼지거나 이어지는 소리" 즉 남는다는 지속과 여운이나 잔향과 같은 결과를 함께 지칭하는 현상이다. 실제로 연주되고 있는 바이올린을 보라. 줄의 떨림이 브리지를 통과할 때, 공명은 여기서 힘을 얻어 몸통으로 번져 간다. 그리고 그 진동이 울림통을 타고 공기 속으로 퍼지는 순간, 브리지는 공명과 울림을 잇는 다리가 된다.

요약하면, 이세하가 그리는 확대된 브리지는 '하모니'를 은유하고 상징하는 도상이다. 브리지는 서로 다른 힘이 만나는 자리에서 충돌을 지우지 않고, 충돌이 소리가 되도록 받치고, 연결하고, 변환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화면에서 브리지는 곧 하모니의 은유―불협이 사라지지 않은 채 공존의 음으로 조직되는 방식―이자 공명과 울림 사이에서 '변환과 매개의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그녀의 작업에서 브리지 도상은 공명(작업의 시작)을 울림(감상의 도착)으로 건네는 시각적 장치로도 기능한다. 여기서 공명이란 작가 쪽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기억·문제의식·감각이 맞물려 반응이 증폭되며 작업을 촉발하는 생성의 원리이자 과정―곧 작업 내부의 진동이다. 반대로 울림이란 관객 쪽에서 도착하는 것으로, 작품이 관객의 몸·기억·정서에 남겨두는 여운과 잔향, 즉 수용 이후의 지속 효과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세하의 작품 속 브리지를 '하모니의 은유'로 해설하는 이 글의 주장은 명료하다. 작가 내부에서 발생한 공명이 브리지라는 매개/변환/조율의 구조를 통과하여 화면의 하모니로 조직되고, 그 결과가 관객에게 울림으로 도착한다는 것이다. 이세하의 작품(브리지) 앞에서 각자의 추억과 기억을 소환하는 관객은 작가의 공명을 자신만의 울림으로 수용하기에 이른다.

결국 작품 속 브리지는 우리의 삶 속에 자리한 공명과 울림 사이의 통과점이며, 그녀의 작품이 추구하는 하모니는 그 통과가 가능하도록 긴장을 배치하는 관계의 구조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이세하의 작품에서 하모니가 우리 삶에 드러난 불협과 차이를 보존한 채 공존하도록 간격을 조율하는 기술이라면, 브리지로 상징되는 그녀의 전 작품은 그 하모니가 성립하는 구조적 조건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세하 作_H.2010-데미안_Acrylic on canvas, 바이올린, 천_(50x80cm)x10장_2020

 

 

IV. 에필로그

글을 마치자. 이번 전시는 특별히 'Harmony–가족사진'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다. 여기서 가족은 혈연의 표본을 넘어 우리 삶 속 관계의 구조를 한 장면으로 압축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것은 주체-타자, 아버지-어머니-나, 스승-제자와 같은 인간-인간뿐 아니라, 자연-인간-예술 사이에서 서로 다른 삶의 음들이 잠시 하모니로 머무는 순간으로 재구성한다. 따라서 '가족사진'은 익숙한 서사의 소재를 넘어 물-불-공기-흙을 아우르는 현실의 지평과 그것을 넘어서는 우주를 한데 아우르는 이질적 요소들이 공존하는 하모니의 편집 원리인 셈이다.

보라! 기억 속 자연과 사물의 이미지로 구성한 '아버지 초상'이나, 알과 같은 세상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부단히 내면과 투쟁했던 소설 속 등장인물 '데미안'을 태아의 성장과 빗대어 만든 바이올린 설치 작품도 이러한 삶의 관계 지형을 하모니의 화두 안에서 추적한다. 목재로 된 폐(廢)팔레트를 해체하여 콘트라베이스를 조각으로 만들어 의자와 함께 설치한 작품은 제목처럼 우주의 원초적 질료와 구성 원리를 하모니라는 화두 속에서 탐구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의 내러티브를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로 구성한 대작 회화와 더불어 그것의 프리퀄(prequel) 성격의 부조형 설치 작품-폐(廢)팔레트를 거대한 규모로 조합하고, 바이올린의 수많은 '브리지'를 오브제로 집적하여 배의 형상으로 만들어 설치한 작품-은 단연코 압권이다. 기존의 회화와 대비되는 힘찬 붓질과 거친 마티에르 그리고 오브제들의 만남은 실패의 가능성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분투하는 소설 속 주인공이 견지했던 삶의 태도와 열정을 담아내기에 족하다.

작가 이세하는 오랫동안 기억에서 소환하는 대상과 이미지들로 '하모니'라는 주제 의식을 성찰하고 탐구하는 중이다. 그녀는 삶의 관계 지형에서 기인한 기억을 재배열하고 감각을 재배치하는 조형 전략을 통해서 '불협마저 품은 하모니'가 전하는 은유의 전략과 더불어 공명에서 울림에 이르는 미학을 오늘도 부단히 탐구하는 중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이세하의 작업을 가히 '삶의 관계 지형과 하모니의 은유'라고 해설하고 평가할 만하다.

 

2026.03.02

 

 

이세하 作_H.2370-Brians Family Photo_178.0x111.7cm_Acrylic on canvas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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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60317-故박남재·이세하 사제동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