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동완 展

 

수면으로부터 Letters from Yesterday

 

 

 

ThisWeekendRoom

 

2026. 2. 11(수) ▶ 2026. 3. 14(토)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대로42길 30 | T.070-8868-9120

 

www.thisweekendroom.com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연필을 쥔다. 무심코 각인된 일상 속 장면과 누군가의 인상이 사라지지 않은 채 켜켜이 퇴적되어 간밤의 꿈으로 안부를 물어온 탓이다. 기억의 바닥에서 길어 올린 것은 나였다가, 당신이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익명의 초상들. 그 면면은 하나의 대상으로 귀속되지 않은 채 어렴풋한 잔상으로 남아 지나온 시간의 비언어적 편린들을 소환한다. 국동완은 개인의 무의식을 통하여 연결되는 현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곱씹으며 십여 년 전부터 그가 꾼 꿈을 일기로 기록해 왔다. 의식의 경계에 걸러진 잔여들은 시작과 끝이 뒤엉킨 문장의 틈새에서 글자라는 증언을 통해 매번 흔적 없이 물러나는 자신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도록 했다. 애석하게도, 구태여 손 글씨로 적어 내려간 몇 날 며칠의 일기와 꿈 사이에는 언제나 낙차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낱장은 꿈꾼 이가 목도한 것부터 사사로운 주변까지 모두 담고 있는 완결된 세계처럼 지각된다.

작가의 작업에서 언어는 의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를테면 특정 기호로 해독되기보다 추상화된 문자와 기하학적 형상으로 치환된 흔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성질은 ‘메아리어’, ‘반향어’ 등으로 번역되는 에코랄리아(Echolalia) 개념과도 연결되는데, 비록 저 자신은 망실되었으나 어느 중간 지대에서 살아남아 다른 모든 언어의 지층이 되는 소리의 기억을 일컫는다.1 실상 꿈은 말로 정리되기 이전의 감각이며 기록되는 순간 이미 부분적으로 소실된다. 그러나 “와야 할 꿈은 꼭 다시 온다.”2 명도를 반전시켜 스캔한 검은 일기장 위로 수놓인 하얀 포말은 파도와 눈과 구름과 안개, 그리고 국화를 닮았다. 마치 태곳적 인류의 옹알거림이 여러 방언을 덧입어 구전되듯 내면에 고인 감정 역시 모습을 바꿔 가며 끊임없이 밀려온다.

그렇다면 잊힌 꿈은 어디로 향하는가. 작가는 저들을 저장하거나 저들과 작별하는 방식을 고민하며 자연스레 죽음을 상기시켰다. 이에 본 전시에서는 책의 형태로 제작된 꼭두를 선보인다. 꼭두란 한국 전통 장례에서 상여(喪輿)를 장식하던 나무 인형이자 망자를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길잡이를 가리킨다. 그의 꼭두는 책의 형식을 빌린 자화상과도 같아서 관람자로 하여금 고요하고도 소란한 무의식의 지대로 무사히 진입하도록 이끈다.

 

 

 

 

꿈이 파도의 거품이라면 수면 아래 침잠해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국동완은 내연의 잔물결을 더듬으며 아득하게 해묵은 미결의 대상들을 마주해 보기로 한다. 이내 그는 꿈을 물의 물성으로 여기고, 종이라는 그물을 이용해 심연의 강 아래 서식한 이들을 하나둘씩 퍼 올리기 시작했다. 맑은 물에 잉크를 풀어 조색한 다음 날카로운 송곳으로 이미지를 새긴 용지를 담가 염색하는 식이다. 할퀸 자국에 안료가 스미고, 꺼내어 건조하는 동안 종이는 송곳에 긁힌 표피 위로 머금은 잉크를 내뱉는다. 핏방울처럼 봉긋하게 솟아오른 액체가 마른 자리의 이면에 머지않아 크고 작은 멍울이 진다. 이를 조용히 기다리거나 손수 닦아내는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상처와 치유의 반복이다. 작가는 잉크가 번지는 모양을 관찰하며 유난히 지워지지 않아 끈질기게 딸려 오는 얼굴과 장면들을 묵상한다. <에피스트로피3> 연작은 그러한 태도를 반증하듯이 어딘가 비슷한 도상들을 반복해서 제시하는데, 동시에 제가끔 다른 무늬와 얼룩을 지닌 이들은 엇갈리는 파동으로 공간을 잠식한다. 이는 반복해서 꾸는 꿈일지언정 결코 동일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렇게 수면 너머로부터 건져 낸 탁본에는 나, 언니, 동생, 엄마, 태아, 하얀 비둘기, 숲, 나무 덩굴, 호박, 버섯, 초롱꽃, 달, 집, 마을, 사원, 책, 구슬, 양초, 낙서 등이 등장해 가상의 풍경을 이룬다.

못내 뒤로하던 문장의 실체. 당신으로부터 휩쓸린 파도에 너무 많은 기억이 엉겨 꿈의 주인이 나였는지조차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을 읽는다. 단 한 사람의 전부를 들여다보았을 뿐인데 여러 이의 우주가 같이 오는 듯하다. 우리는 서로서로 삶을 통과하며 낸 생채기를 때로 정성껏 돌보고, 때로 내버려둔다. 그럴수록 어떤 감정은 가라앉으며 어떤 감정은 끝끝내 뭍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야트막한 흉터가 아문 자리에 더 큰 슬픔이 침투하기도 한다. 다만 이 모든 것은 필연적일 테다. 그러니 봉인된 세월의 자욱을 열어 보는 지금은 어김없이 어제의 내가 허락하는 오늘일 것이다.

 

이유진 (디스위켄드룸 큐레이터)

 

 

당신으로부터 From You, 2026_ink on paper_40.5x40.5cm

 

 

꼭두_소설 2-4 Kkokdu_Novel 2-4, 2026_maple_21x4.8x14.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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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60211-국동완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