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ke, Cell, and The Ghost 展

획, 세포, 그리고 유령

 

장순원, 정주원

 

 

 

Gallery SP

 

2026. 1. 22(목) ▶ 2026. 2. 28(토)

서울특별시 용산구 회나무로44가길 30

 

www.gallerysp.com

 

 

Sunwon Chang 作_No One Has Been Born Yet, 2025

 

 

시작은 획이었다. 선은 색, 질감 등 나름의 형상이 있었으나 미시적이고 원초적이기에 뚜렷한 대상으로 지명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것은 무엇이지만 아무것이 아니기도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역할을 지니지 못한다면, 목적이 없다면 도태되는 곳이기에 획이 회화이기 위해서는 형태를 형성하고 장르를 갖추며 서사를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서사가 매개되기 전, 장르로 정립되기 전, 형태가 이루어지기 직전에 획은 존재했다. 그리고 납득 받지 못한 그것은 기억을 보유하고, 의식에 부응하며, 본능에 진솔했다.

가까운 동료로 지내온 장순원과 정주원은 획이 단위나 요소가 아닌 그 자체의 목소리로 발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자문을 던졌다. 이는 그림의 시초이자 말미이기도 한 붓질에 문자화되지 않은 내막이 진동하고 있음을 실감해왔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에서 숙련한 기술과 별개로 작가들은 각자의 체형, 생활 패턴, 거주 환경 등에 따라 획이 움직이는 범위와 리듬을 달리하는 것을 감지하며, 단출한 붓질 속에 사회의식과 개인의 실존성이 뒤엉키는 지점을 주목했다. 그러나 획의 현상성은 정보와 이미지가 지배적인 스펙터클 사회에서 메시지가 아닌 자국, 물질, 뉘앙스로 축소될 존재이기도 했다. 때문에 미시적인 움직임이 사회 속에 공표될 수 있도록 그들은 뚜렷한 이미지나 서사에 따라 그리기를 기획하는 대신, 둔탁한 붓질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어느 존재, 풍경, 또는 사물로 둔갑해 나가는 과정 중심의 그리기를 고수하였다. 무엇을 매개한다는 목적보다 획이 면으로 뭉쳐지다가 점과 선으로 와해하기를 왕복하는 그리기를 통해, 작가는 회화와 몸 사이의 교감으로부터 비집고 나올 내밀한 현실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자기 앞에 놓였을 존재가 먼저였는지, 아니면 즉흥적으로 그어진 선이 그것을 불러왔는지 순서를 명징하게 가늠하기란 어려웠다. 가령 그림에서 혓바닥이 된 토스트, 아니면 토스트가 된 혓바닥은 주방에서 스쳐본 조각에서 비롯되었거나 인체 사진에서 포착한 윤곽에서 출발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기 속 시간과 의식의 경과는 순차적이지 않고 동시다발로 벌어졌기에 환영의 흐름은 목격될 수 없었다. 눈앞에 놓인 뚜렷한 사실은 분절된 존재를 하나로 버무린 붓의 경로뿐이었다. 때문에 표면 위의 마띠에르(Matière)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촉각적 반응이자 의식 너머로부터 거슬러 온 존재의 파편일 수도, 그 무엇으로 회귀할 수 없을 물질일지 몰랐다.

때론 현실은 보이는 것이 아닌 감촉과 감흥으로 들이닥쳤다. 불시에 전해진 몸의 반응과 정동은 작가가 딛고 서 있는 곳의 시간과 장소를 알렸지만, 이는 출처가 불명료한 토속과 일상성이었기에 역사가 조명하지 못할 삶의 현전이었다. 때문에 이들에게 다가오고 소멸한 존재들은 이름으로 불릴 수 없었다. 호명 받지 못한 그들의 숨결은 매개자의 몸을 거쳐서 뭉그러진 물감을 빌려 살결을 이루고 흉터를 드러내어 한때 그곳에, 지금 여기에 있음을 증언했다. 그러므로 작가들에게 현실은 온전한 사실로 다가올 수 없다. 그림에서 현실은 재현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접촉과 회고, 그리고 실현의 문제이므로, 이들에게 회화는 매개의 장치 이상으로 변이가 야기되는 실제적인 현장이다. 그 현장은 사회에 보증 받지 못한 감각과 몸짓들이 표면 위로 겉도는 가운데 존재들이 도래하고 이면으로 물러나는 곳이다.

 

 

Juwon Jeong 作_Crow in Garden_2025

 

 

이처럼 장순원과 정주원에게 현실은 선명하도록 비구체적인 현상이다. 눈앞에서 현현하는 순간은 찰나이고, 그 짧은 시간 속에 그들이 직면할 수 있는 것은 정황뿐이기에 현실은 직면하는 사라짐이다. 현실이 사실로 규명되기 위해선 기록의 수집과 이를 편집하는 상상이 동원되어야 했지만, 개연성과 합리적 근거를 부여하는 일련의 절차는 현실과 매체의 간극을 되새겨 줄 뿐이었다. 특정한 시점에 마주했을 형(形)의 외각과 이를 보완할 사료를 참조로 윤곽을 잡았기에 현실은 그 자체로 화면 속에 대면 된 바가 없었다. 따라서 작가들은 형상을 뒤쫓기보다는 흩뜨리는 반어적 재현을 구사하기로 한다. 회화는 세계를 호출함과 동시에 소외하는 곳이므로 장순원과 정주원의 획들은 화면을 가로지르고 파열하여 현실과 그림의 틈을 노출시킨다. 시간이 엇갈린 기록과 혼탁한 구술에 의지하여 사실을 구현해나간 화가들은 존재와 세계를 이미지로 다듬는 대신 붓끝으로 균열을 내어, 그 사이로 현실이라는 수수께끼를 비집어 넣는다.

표피 위로 획과 획이 연합하고 충돌하는 흐름은 회화가 매체이기 전에 뒤엉킨 몸짓들의 플랫폼임을 알린다. 언어로 포섭되지 않은 붓질이 집결하여 안착한 화면은 순전한 안료 덩어리이자 육체적 씨름에서 비롯된 회화적 상흔이다. 이와 같은 형식은 관습적으로 전해진 재현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설적으로 재현을 부정하는 행위로 인해 계측 불가능한 세계를 암시할 수 있게 된다. 추상에서 구상으로 이행하는 회화는 ‘바로 그것’이라 지목할 수 없는 분열된 형상으로 남아 있기에 화면 속의 그것과 화면 너머의 무엇 사이에서 느슨하고 팽팽한 관계를 연상하도록 만든다.

단 하나의 붓질을 계기로 육체, 시간, 장소 그리고 사건을 이어가는 장순원과 정주원의 화법을 돌아보며, 전시는 《획, 세포, 그리고 유령》으로 작명이 되었다. 전시 제목은 점층적인 운율과 접속 부사의 연결감에 의해 획이 세포에 이르러 유령까지 도달하는 상상을 일으킨다.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문학적 비약, 그러나 관념 속의 움직임은 회화에서 유사 경험으로 물화(物化)된다. 의식 속에 잔존했던 어렴풋한 형상은 손짓에 따라 자취를 남기고, 남겨진 자취들은 또 다른 윤곽을 이루어 보는 이의 시각을, 몸을 교란한다. 때론 형상을 목표로 삼지 않는 비정형의 드로잉이 형상을 도래시키는 경우도 목격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회화는 공중 속에서 발음되는 ‘획, 세포, 그리고 유령’보다 신비롭게 실재적이다. 회화에 속했던 것은 신체의 것이 되고, 신체의 것이었던 것은 회화의 것이 된다. 그리고 이들이 왕래하는 기류 속에서 현실은 요동 중이다.

 

양기찬 (갤러리에스피 큐레이터)

 

 

Sunwon Chang 作_Heavy Breath_2025

 

 

Juwon Jeong 作_Humdrum Apartment_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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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60122-Stroke, Cell, and The Ghost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