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손, 오가영 展

 

가영에게 Dear Ghayoung

 

 

 

gallery2

 

2026. 1. 22(목) ▶ 2026. 2. 28(토)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5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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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영에게》 Dear Ghayoung

 

김진주

 

《가영에게》는 부재라는 결핍을 목적 없는 애정의 방향성으로 전환하는 시도다. 이는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는 존재의 조건, 타인의 취약성을 떠안는 돌봄의 윤리를 둘러싼 동시대적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오가영은 디지털 이미지와 알고리즘의 환경에서 발생하는 감각적 피로, 여성의 신체가 소비되고 노출되는 방식, 그로부터 비롯되는 자기 인식의 균열을 탐구한다. 고요손은 개인의 욕망과 상상, 불안정한 감정을 지탱하는 구조와 환경을 조형적으로 구성하며, 조각을 관계와 지지의 장치로 확장한다. 《가영에게》는 오가영의 주체적 말하기와 고요손의 관계적 태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전시를 공유의 장소이자 매개의 장으로 조직한다.

‘가영에게’는 물리적으로 함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속된 관계를 환기하는 말이다. 이는 고요손이 2025년 4월부터 오가영에게 보내 온 편지들의 제목이자, 오가영이 자신의 삶을 서술하며 고요손을 향해 열어 온 발화의 방향이기도 하다. 전시는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어간 장기간의 소통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 전제에는 뉴욕에 머무는 오가영이 한국에 올 수도, 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이 놓여 있었는데, 이는 개인적 사정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강화된 이주 규제와 구조적 통제가 중첩된 결과였다. 이동이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되지 않는 현실에서, 두 사람은 전시를 수행하는 물리적 상황에 앞서 전시의 전제를 다시 설정하기로 한다. 누군가는 해내고, 누군가는 기대는 쪽으로.

그렇게 이곳에 놓인 대부분의 요소는 2025년 봄부터 2026년 초입의 겨울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점진적으로 발견되고 구체화되었다. 언젠가 함께 있다면 방 하나를 마음껏 어지르고 싶다는 상상은 실제 공간 구성의 출발점으로 작동했다. 고요손이 편지에 삽입한 꽃과 달팽이 사진은 오가영이 수정하고 확장하는 표면이 되었다. 오가영이 낙엽을 밟던 순간, 창문을 바라보던 시간, 가족과 통화하고 친구와 만나던 장면들은 고요손의 손을 거쳐 사운드, 커튼, 사진, 설치로 변모했고, 두 사람의 편지 속 문장 가운데 일부는 리본 테이프로 인쇄되어 천장과 바닥의 장식이 되었다. 이처럼 이 전시는 사전에 설계된 구조가 아니라, 대화와 선택, 매체적 변환이 반복되며 맥락을 얻은 공간이다.

이러한 형성의 과정은 곧 전시를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관한 현실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전시를 고요손과 오가영의 2인전이라 부르기로 하고서, 고요손은 오가영에게 자신이 부재한 상태에서 전시가 어떤 감각과 동선으로 구현되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오가영의 요청은 고요손의 수행을 통해 다음과 같이 실현되었다. 첫째, 전시에 사운드가 활용된다면 노이즈처럼 들리기보다는 느리고 멜로디컬한 음악, 혹은 특정 소리가 반복되는 편안한 분위기일 것. 둘째, 천장 높이만 한 거치대를 세우거나 작품의 상태가 바뀌도록 유도하는 틀과 각이 생길 것. 셋째, 구부러진 쇠봉, 부드러운 조형물, 낙엽 더미가 있을 것. 넷째, 관객이 없더라도 자신의 작업이 외롭지 않게 지켜봐 주는 작고 많은 친구가 함께할 것. 다섯째, 무언가 너무 많아 전시 공간을 쉽게 걸을 수 없을 것. 여섯째, 의자에 앉기,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올려다보기, 거울을 통해 보기, 작품이나 전경을 위에서 내려다 보기. 일곱째, 직접 그린 낙엽 드로잉을 큰 벽화로 확장하기.

 

 

 

 

편지와 대화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기다림의 시간이 끼어들었다. 이 전시가 그렇듯, 편지 역시 즉각적인 응답이나 정합적인 결론을 요구하는 대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답장을 기다리던 고요손은 “그래서인지, 계절을 건너 주고받는 이 편지는 대답을 강요하고, 동시에 기다리게 되는 형식에서 벗어나 더 즐거워요.”라고 썼고, 그에 대한 오가영의 답장은 “일기장에 적을 나와의 얘기를 요손에게 쓰는 편지에 적으면서, 그렇게 가장 아무도 모르는 내 모습으로, 나만이 아는 내 모습으로 한 번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나 봐요. 그게 요손이 되는 거고.”라는 말이었다. 이러한 기다림이 만든 공백은 단순한 시간의 지연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보류된 상태로 존중하고 감내하는 하나의 태도에 가까웠다. 또한 오가영의 편지는 자기 삶에 대한 서술인 동시에, 그 서술을 특정한 타자에게 열어 둠으로써 비로소 성립하는 말하기였다. 이러한 채워짐과 공백이 오가는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저마다의 속도로 서로에 대한 믿음을 형성해 나갔다.

믿음. 그것은 거창한 선언이기도 하고 사소한 행동이기도 하다. 전쟁터로 나서는 장군의 다짐도 믿음이고, 사랑하는 연인이 말없이 옷깃을 정리해 주는 손짓 역시 믿음이다. 그런 믿음의 또 다른 장면으로서, 오가영의 <올랭피아>(2025)는 고요손의 의자들에 의해 지지된다. 이는 조형을 통해 수행되는 관계적 제스처이자 돌봄의 표현이다. 과거 고요손이 자신의 조각을 위해 제작했던 의자들은 기존의 지시 대상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져, 오가영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도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이에 더해 그는 <올랭피아>가 안정적으로 놓이도록 새로운 좌대를 만들어 세웠고, 어떤 의자에는 오가영의 목소리를 녹음해 흘려 보냈다. 이렇게 비선형적인 궤도를 따라 우회하고 축적된 믿음의 형식들이 이 공간에 겹겹이 모여 있다.

오가영의 작업은 디지털 포토 콜라주를 기반으로 한다. 그는 일상의 파편적인 장면들을 카메라로 포착한 뒤, 디지털 툴을 사용해 여러 레이어를 중첩하며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구성해 왔다. 도시의 풍경과 요소들을 주요한 소재로 삼아 오던 작업은 최근 들어 점차 작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여성으로서의 신체를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 다시 바라보며, 친밀함과 욕망이 투사되는 장소로서 신체 이미지의 정치성을 질문한다. <올랭피아>는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1863)에서 임신과 출산 장면을 연상해 ‘엄마 김치’와 ‘아기 김치’의 서사를 상상한 작업이며, <Vulnerable and Naked 3>(2025)는 온라인 알고리즘에 얽힌 피로감, 감각적 과잉으로부터의 도피를 종이와 연필, 인쇄의 연약한 물성에 대입한 작업이다. 이와 함께 캔버스, 종이, 스펀지를 지지체로 삼은 회화와 드로잉들은 도시의 스펙터클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누적되는 물리적, 정서적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출구처럼 제시된다.

<올랭피아> 앞에 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편해지고, 고요손의 의자들이 만들어 내는 방향성 앞에서 그 불편함은 한층 더 분명해진다. 오가영은 관객들이 자신의 누드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Vulnerable and Naked 3>나 <스폰지 판타지>(2023)를 통해서는 여리고 가변적인 현실이 손에 잡힐 듯한 부피를 얻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나 상황과의 마주함이 이미지와 서사의 차원에서 다시 배열되고 사유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상상의 장면들, 유동하는 이미지들, 주변에 놓인 것들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들. 수수께끼처럼 중첩되는 삶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오가영의 시선은, 고요손이 조성한 공간을 통과하며 막연한 발화를 넘은 명료한 주장으로 밀도를 획득한다.

 

 

 

 

고요손은 이러한 주장이 가능하도록 조형의 방식으로 힘을 보탠다. 개인의 꿈이나 타인의 바람을 실현하려는 열망에서 협업과 도움, 의존과 지지의 관계를 조각의 문법으로 실천해 온 그는, 유약한 재료와 불완전한 공정을 활용해 상상의 장면을 현실의 차원으로 불러들여 왔다. 《가영에게》에서 그 태도는 오가영과의 관계를 통해 구체화된 형식으로 드러난다. 오가영이 일상의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 그는 꽃잎 만 장을 이불 삼아 그의 침대 위에 덮어 주고 싶다고 적었고, 이를 <셀 수 없는 명확한 라일락 이불>(2026)로 구현했다. 별이 가득 박힌 오가영의 <2028년에 그린 별>(2025)을 위해서는 기존 작업 <Michel2: Ink and love backup 2-4>(2025)을 기꺼이 받침대로 내어주고, 그 곁에 <Son>(2024)을 덧붙였다. 또한 오가영의 편지에 담긴 이야기와 실제 목소리를 바탕으로 음악 <Pedal Point>(2026)와 <Mr. Twin>(2026)을 만들어, 그의 말이 공간의 감각적 층위 속으로 편입되도록 했다.

한편, 이 관계의 효과는 오가영에게서 멈추지 않는다. 고요손의 조형적 개입을 통해 오가영의 작업이 떠받쳐지는 과정에서, 오가영이 감각하던 현실은 서사와 물성을 지닌 드라마가 되고, 재현을 넘어 경험의 방식을 조직하는 판타지로 전환된다. 여기서 그가 겪던 불안정한 감정과 상황은 수동적으로 감내해야 할 조건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주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장면으로 재배치되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변화는 고요손에게로 이어져, 타인을 지지하는 행위가 곧 자신을 지탱하는 토대가 되어 돌아온다. 달리 말해, 오가영을 향해 건네진 조형적 지지와 애정은 고요손에게서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타인에게 기대며 얻는 위로와 신뢰로 되돌아오며,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방향이 아닌 순환의 구조를 이루게 된다.

경청. 누군가는 이를 외로움을 견디는 방식이라 말한다. 과감하게는 경청이 제도화될 경우 국가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도 역설한다. 다른 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일은 대단한 기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내어지는 태도도 아니다. 마음을 건네고 시간을 내어 귀를 기울이는 일은 언제나 여유롭지 못하고 더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에서 경청은 추상적인 미덕이 아닌 실제로 작동하는 상호작용의 형식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관심을 습관처럼 기른다면, 이로써 상처를 회복하고 외로움을 견디게 된다면,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관계는 지속될 이유를 얻는다. 《가영에게》는 그러한 경청과 돌봄에 의해 성립하는 관계의 영속 그 자체에 믿음을 건다.

추신. 고요손과 오가영이 주고받은 편지는 각자 운영하는 블로그에 접속해 읽을 수 있다. 일상의 다른 포스팅과 뒤섞인 이들의 편지를 찾아 살펴보기를 바란다. 언젠가 문득, 새로운 편지가 도착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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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60102-고요손, 오가영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