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경 展

 

수(需)

 

 

 

GALLERY GRIMSON

 

2025. 12. 10(수) ▶ 2025. 12. 22(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22 1층 | T.02-733-1045

 

www.grimson.co.kr

 

 

命_54.5x36.5cm_지본수묵(和紙)_2023

 

 

나 자신이 무언가 대단한 존재가 되길 소망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류(時流)라는 것은 오묘하기에 사람을 골탕 먹이듯 엉뚱한 방향으로 물길을 돌려 유유히 흘러갈 때가 있다. 세계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과정으로만 움직이지 않으며 선량하고 노력한 자들에게 언제나 정당한 보상을 베풀지도 않는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생각해보면 사람이 살아가며 그러한 부조리를 모두 피해가는 것은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나에게도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해 괴로워하고 방황하던 시절이 한때 존재했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화가인 나 자신은 그림을 그리며 감정을 달랜다.

이때 화가가 거치는 하나의 과정은 바로 ‘우의(寓意)’이다.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어떠한 사물에 비유하여 미적인 형상을 화폭 위에 나타낸다. 세상의 수많은 무엇 중에 내가 선택한 ‘우의’는 동물이었다. 나의 작품들은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들이다. 동물은 그저 다만 주어진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순수할 뿐만 아니라 거짓으로 치장하지 않는다. 또한 내게는 한 동물을 통해 삶의 위안과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된, 어떤 특별한 경험도 있었다. ‘이미 삶에 닥친 어려움이라면 할 수 있는 데까지 감내해보자, 그리고 조용히 숨어 다음 기회를 엿본다면 재기의 행운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각기 개성 있는 모습들과 맞닿은 구석이 있었다.

옛날부터 동양의 화원들에게는 동물을 그리는 ‘영모(翎毛)’라는 장르가 이미 존재했다. 문인화가들 역시 산수와 사군자만 그렸던 것이 아니었다. 수묵의 간략한 필치로 그들 역시 동물의 형상을 빌어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나는 이들의 표현 양식에 우열을 나누어 따로 구별하려 들지 않았다. 동양 전통회화 양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나는 문인과 화원들의 장점을 두루 본받고자 하였다. 나의 주된 제작 방법이었던 견본채색(絹本彩色)의 치밀한 묘사양식은 일본에서의 유학경험을 통하여 이전보다 더욱 원숙해졌다. 또한 나는 최근의 작업을 통해 문인의 정서 역시 한 화면에 같이 담으려고 하였다. 때로는 시(詩)를 덧붙여 주제 의식을 강조하거나, 수묵의 필법에 있어서도 리듬감을 주어 감정을 강조한 작품도 있다. 이 같은 방법을 통해 나는 동물들의 귀여운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애잔한 고독감을 드리워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묘한 여운을 남기고자 했다.

오늘날의 ‘미술’이라는 개념에서 시(詩), 서(書), 화(畵) 소위 ‘삼절(三絶)’의 의미가 과연 있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봤지만 그러나 나는 모두가 중요한 회화의 조형적 요소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마음에는 어떠한 변함이 없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수(需)’는 본디 『주역(周易)』에 등장하는 말로서 ‘불리한 상황에서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한 인간이 보기에 도저히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 그럼에도 인내하며 또 다른 기회를 기다리는 나 자신의 마음, 그것을 나는 동물들의 여러 모습을 통하여 화폭 위에 표현하고자 했다.

 

 

자화상(自畵像)_60x43.2cm_비단에 채색과 금박_2024

 

 

모정(母情)11_29x21.5cm_비단에 채색_2022

 

 

鯨_56x160cm_비단에 수묵채색_20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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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51210-김봉경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