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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 展
Keepgoing

MIGI GALLERY
2025. 11. 29(토) ▶ 2025. 12. 21(일)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46길 34-2, 2층
www.blog.naver.com/eastop1

no reason_35x27cm_Acrylic on Canvas_2025
지금은 어렴풋이 나는 기억이지만, 내가 어릴 적에 서울 외가댁에서 TBC 방송에서 애니메이션 동영상으로 움직이는 아톰을 본 것은 재미 이상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 시절, 지방에서는 TBC 방송이 수신이 되질 않아 한동안 기억에서 맴돌 뿐 잊고 지냈다. 네 살 무렵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은 모든 것이 파탄이 났고 누나와 나 그리고 어머니는 하루하루 생활고에 시달렸다. 늦게 서야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누나와 나는 밤늦게 그림을 그리다 잠이 들곤 했다. 세월이 흘러 나에게도 가족이 생기고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덧 아들이 다섯 살 무렵 코엑스에 있는 피규어샵에서 아톰을 사서 선물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애니메이션 디지몬 이 유행하던 때라 아마도 아이의 흥미를 끌지는 못하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을 나의 책장 위에 옮겨 세워 놓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깊은 심연의 바닷속을 걷는 것과 같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온 집에서 소주 한 잔을 하노라면 나도 모르게 우연히 나를 바라보는 아톰의 시선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무심코 바라보며 나는 내 할 일을 하곤 했지만, 햇수가 지날수록 “저놈이 도대체 왜 날 보는 걸까? ...”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no reason_35x27cm_Acrylic on Canvas_2025
시선에는 항상 일정한 방향이 있다. 남녀가 처음 만나서 나누는 것은 언어가 본질이 아니라 눈빛이다. 여기서 우리가 처음 대상을 알아가는 단계의 언어는 눈으로 나누는 대화이다. 눈으로의 대화는 겸손과 배려와 호기심이 동시에 발생한다, 언어는 투박하고 해석의 오해를 만들기 쉽다. 그러나 눈은 이미지로 작용하며 의미의 파편들이 아름다움과 함께 동시에 다가온다. 내가 아톰의 눈에서 발견한 것은 애잔함, 그리고 분노와 태양보다 강한 자의식과 삶에 대한 의지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눈빛으로 대상을 어루만지는 “터치”이다. 그것은 어쩌면 숨결, 손길과 같은 시선이 대상에게 전달하는 눈길이다. 플라스틱 피규어랑 무슨 대화를 하겠나 만은 세상을 둘러본다면 철기시대를 거쳐 어쩌면 플라스틱 시대라 할 만큼 일상은 플라스틱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어찌 되었던 아톰의 짧은 과거를 살펴보면 불의의 사고로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갑자기 사이보그로 태어나 인간과 로봇 사이의 정체성에서 고민한다. 한편으로는 분노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로 나타나지만 과연, 어린아이가 겪어야 되는 상실감과 존재의 이유가 아톰 만화에서처럼 대상이 폭발하고 건물이 붕괴되는 역설로 우리는 이해가 가능하다. 모든 슈퍼파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실과 부재는 중력처럼 스스로를 당기지만 이것을 운명처럼 딛고 일어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아톰의 눈빛에서 발견한다.

no reason_91x73cm_Acrylic on Canvas_2025

no reason_91x73cm_Acrylic on Canvas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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