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민 展

 

Bottoms up

 

섬 그림 Island Painting_oil on canvas_324x390cm(6 pieces, 162x130cm each)_2025

 

 

갤러리 2

 

2025. 11. 6(목) ▶ 2025. 12. 13(토)

서울 종로구 평창동 509-13 | T.02-3448-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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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지 The Ground_oil on canvas_170x200cm_2025

 

 

전시 《Bottoms up》은 장재민이 지난 몇 년간 탐구해 온 자연 그리기를 새로운 시점에서 접근한 방식에 주목한다. 그는 제주에서 머물며 풍경이 하나의 비현실적인 전체로 엮이는 과정, 즉 자연이 본래의 형태를 잃고 편집되어 다시 발생하는 지점을 포착하고자 했다. 이러한 태도는 조르주 바타유가 말한 ‘비정형(informe)’의 사유처럼, 형태의 위계나 구분이 해체되고 서로 다른 질감과 층위가 뒤섞이는 회화적 전환으로 읽힌다. 여기서 자연은 단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가능성이 무한한 상징적 장소로 변모해 회화의 언어 속에서 형태를 뒤집는 계기가 되어 다시 등장한다.

그의 최근 회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시점의 중첩과 화면의 구조적 전개다. 그는 며칠이고 같은 장소를 바라보며 체화한 풍경의 형상들을 회화로 옮긴다. 그 과정에서 직접 본 대상에 관한 기억이 쏟아지는 동시에, 주변의 시간과 장소가 기존 맥락과 동떨어진 채 덧대어진 상상 속 이미지가 교차한다. 장재민은 이러한 복합적으로 축적된 층위를 하나의 ‘가설적 무대’로 응축한다. 그는 자연을 그리되, 과장되거나 축소된 요소를 병치하며 서로 다른 시점의 파편을 한 화면 안에 조립한다. 바닥이 전면으로 뒤집히고, 상하가 교차하며, 멀리 떨어진 지점들이 한 장면 안에서 결합한다. 이러한 화면은 현실의 논리를 약간 비틀어 제시하는데, 이는 왜곡이라기보다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고 다시 조직되는 과정이다. 이때 회화는 뒤섞임을 매개로 스스로의 구조를 재설정하는 지점을 만들어 낸다.

 

 

구불구불한 길 The twisting Path_oil on canvas_200x160cm_2025

 

 

<섬 그림>(2025)은 여섯 개의 캔버스를 연결한 대형 연작으로, 바다에서 길, 나무, 산, 하늘로 시선이 확장되는 과정을 담았다. 상단의 파란색 바다와 하단의 녹색 숲이 공존하는 유기적인 풍경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초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바다와 산을 바라보는 분리된 동시에 하나인 항공 시점은 풍경을 받아들인 뒤 해체하여 다시 구성하려 한 그의 의도를 비춘다. 같은 맥락에서 <불꽃과 연못>(2025), <붉은 언덕>(2025), <폭포>(2025)는 화면의 방향 구조를 해체하는 실험이 동반되었다. 캔버스를 거꾸로 놓거나 돌려가며 그려진 숲과 물 형상들은 상하와 좌우 질서를 무력화한 채 서로 뒤엉키고, 그 안의 인물과 동물들은 방향을 잃은 듯 서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방향의 해체, 즉 회화의 중심이 물리적 구도에서 화면의 운동으로 이행하며 스스로의 구조를 전복하는 상태를 드러낸다.

<원담과 파도>(2025), <만조 시간>(2025)은 인물과 배경의 관계가 초현실적인 구도로 구성된 작품들이다. <원담과 파도>에서는 뒷모습의 인물 실루엣이 도드라지며, 그의 앞에는 또 하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는 인물 앞에 하나의 벽이 놓였기 때문인데, 그 벽은 실제 사물이 아니라 마치 바다의 수면이 들어올려진 듯이 연출된 장면이다. 그 결과, 인물은 막다른 풍경 앞에서 시선을 잃은 듯 멈춰 섰다. 현실에서 바다의 수면은 그렇게까지 치솟아 보일 리 없지만, 장재민은 그 불가능한 장면을 그려냄으로써 비틀어진 시점을 만든 것이다. <만조 시간>은 수면이 가득 차오른 순간, 바위에 정박한 배가 일렁이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 풍경을 바라보는 인물은 만조의 파도가 자신에게로 밀려오는 광경을 응시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 잠겨 있는 듯한 상태로 보인다.

이번 전시는 결국, 장재민이 자신의 회화를 새 국면으로 밀어 올린 전환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신작에 관한 앞선 설명에서 드러나듯, 그의 그림은 완결된 화면보다 ‘그리기’의 출발 지점에서 이미 정형화된 규칙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연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옮기는 사색가의 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이제 회화 그 자체의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세우려 한다. 화면은 더 이상 풍경을 담는 표면이 아니라, 균열과 균형이 교차하는 장이 되며, 높아진 채도의 색, 응고된 포말, 반복적으로 쌓인 붓질은 자연의 묘사라기보다 회화라는 물질이 힘을 드러내는 사건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장재민의 회화는 스스로의 구조를 갱신하는 운동으로서의 회화로 확장해 나간다. Bottoms up-밑면은 뒤집혔고, 이제 그 위에 새로운 회화가 세워진다.

 

 

하얀 섬과 노을 White Islet and Sunset_acrylic oil on canvas_147x184cm_2025

 

 

연기와 숲 Smoke in the Forest_oil on canvas_130x162cm_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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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51106-장재민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