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배히 초대展

 

김배히 화업 60, 회고전

 

 

 

 

2025. 7. 23(수) ▶ 2025. 7. 28(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34-1 | T.02-736-6347

 

https://insaartplazagallery.com

 

 

 

 

김배히 화업 60, 회고전

 

김배히는 1970년대 중반에는 사실적인 형태 묘사를 기반으로 하는 그림을 그렸다. 사실주의는 아닐지라도 그에 준한 형태미를 따랐다. 당시 목우회를 중심으로 한 화단의 기류는 사실적인 묘사와 인상주의가 만나는 절충 지점에 있었다. 이는 실재하는 현실을 재현하는 형식의 구상 회화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경향이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작품 대다수가 이러한 경향을 주도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1970년대 후반의 인물화를 통해 당시 화단의 기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정면성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초상화 형식은 아닐지언정, 정적이고 단정한 자세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에 시선을 준다. 책을 읽거나 무릎에 올려진 책을 쥐고 있는 여성의 모습에서는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들 작품에서 유교적인 정서를 감지하는 건 비약이 아니다. 포즈며 표정을 보면 유교적인 사회에서 강조되는 정숙한 숙녀의 자태가 감지되는 까닭이다. 이러한 인물화의 정서는 당시 화단의 보편적인 경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물화는 이전보다 간명해진다. 세부적인 표현을 의식하지 않는 활달한 터치가 화면을 지배하는 가운데 색조는 이전보다 밝아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 시기의 풍경화는 인상주의보다는 야수파에 가까운 성향이었다. 무엇보다도 담대하고 거친 터치와 강렬한 색채 대비 그리고 추상적인 이미지가 공존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형태에 관한 한 상당 부분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대체함으로써 색채 포름에 근사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1990년대에는 비교적 인물화 숫자가 많은 편이고, 형태는 단순화하는 경향이다. 단순화한 형태미임에도 사실적인 조형감각이 골격을 이룸으로써 인물의 형태는 견고하다. 무엇보다도 색채 포름에서 독특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힘차고 활달한 터치가 지어내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매우 감각적인 조형감각의 소산이다. 비록 사실성에서 벗어나 있으나, 야수파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강렬하고 담대한 색채 대비로 꾸며지는 인물상은 세련된 조형감각을 구사한다.

그의 작업에는 인물 및 풍경과 함께 꽃을 소재로 한 작품도 적지 않다. 복사꽃을 비롯하여 매화, 벚꽃과 같은 나무꽃과 해바라기 봉숭아꽃, 접시꽃, 장미, 맨드라미, 옥잠화, 모란, 꽃양귀비 그리고 억새꽃이나 갈대, 스렁크와 같은 마른 꽃도 즐겨 다루는 소재이다. 스케치하러다니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꽃들이 대다수다. 형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꽃과 마주했을 때의 그 감동을 표현하는 데 우선한다. 필치가 거칠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건 표현 감정을 시차 없이 곧바로 캔버스에 받아내겠다는 의지의 발로이다.

 

 

 

 

꽃을 소재로 한 그림은 일반적으로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방식을 취한다. 꽃은 가감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에 재현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일반적이다. 그는 이와 달리 회화로서의 꽃을 표현하고자 한다. 눈에 보이는 사실에 대한 감동을 주정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려는 것이다. 눈에 익숙한 꽃이기에 그 형태미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인지 모른다. 따라서 꽃의 아름다움을 회화적인 아름다움으로 변환함으로써 꽃의 이미지는 관념화한다.

2000년대의 꽃 그림이 야수파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후에는 인상파가 추구한 빛과 순색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색채이미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순색과 중간색을 적절히 조합함으로써 밝고 경쾌한 시각적인 인상을 준다. 단적으로 인상파가 추구했던 자연광에 의해 깨어나는 순색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형태미보다는 자연광 아래에서 느끼는 밝고 경쾌한 느낌을 솔직하게 전달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인상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풍경은 색다르게 보인다. 그가 바라보는 풍경은 원거리이다. 앙각구도에 가까운 좀 색다른 구도를 선호한다. 수묵산수의 앙각구도는 키 높이보다 더 높은 산을 올려다보는 시점에서 비롯된다. 산이라는 대상과 가까운 위치에서는 올려다보게 되는 상황이다. 앙각구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중반 이후이다. 물론 1990년대에도 앙각구도가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통상적인 풍경화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앙각구도에 합당한 풍경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붓을 드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2010년대부터는 앙각구도를 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어쩌면 계룡산을 지척에 둔 공주시 반포면에 화실을 신축한 이후부터이지 싶다. 화실에서 근거리에 자리한 계룡산을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계룡산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들은 그림의 소재로서 적합하다. 가벼운 걸음으로 스케치를 나다니다 보면 언제나 우뚝 선 계룡산과 마주하게 되니, 그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이는 그만의 구도 감각이 만들어낸 독특한 서사이다. 그 자신이 서 있는 곳으로부터 시골가옥에 이르는 공간에 시야를 가리는 물상들이 엄연히 존재하건만 일부만을 남긴 채 모두 소거한다. 평야 지대가 아니라 논과 밭, 채전 또는 덤불이나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는 탓일 수도 있다. 그가 존재하는 시점으로부터 근경의 물상이 화면에 채워지는가 하다가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흐릿해지면서 점경 형태로 마을 집들이 자리한다.

이렇듯이 아득히 먼 곳의 마을 풍경 대다수가 전면에 꽃을 배치하고 있다. 꽃양귀비를 비롯하여 장미, 나팔꽃, 접시꽃이나 복사꽃 같은 꽃의 이미지를 화면 중심에 배치하고 형태는 개략적으로 표현한다. 그 꽃이 무엇이든지 구체적인 형태 묘사를 지양함으로써 어렴풋이 그 형태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에 그친다. 근거리에 존재하는 꽃임에도 개략적인 이미지만을 드러냄으로써 특정 소재 중심의 풍경이 아님을 역설하려는 듯싶다.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조형적인 특징은 언제나 구체적인 묘사가 없다는 점이다. 형태를 묶는 윤곽선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는 두 가지 상황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하나는 형태 묘사가 아니라 표현적인 이미지로 상황을 설명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추상적인 표현 자체에 의미를 두는 일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빼놓고는 간결하게 처리되는 그의 작업을 설명하기 어렵다.

실재하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풍경화임에도 사실적인 이미지가 아닌 반추상에 근사한 표현에 머무는 건 생략과 절제를 통한 심상 표현에 중점을 둔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는 어쩌면 문학에서 말하는 서정적인 이미지와 상통하는 것일 수 있고, 시적인 표현일 수 있다.

 

 

 

 

그는 최근 이전 작업과는 확연히 다른 실험적인 인물화를 시작했다. 명암이나 원근과 같은 조형기법을 중심으로 하는 인상주의와 달리 드로잉 작업이 근간이다. 인물을 선묘로만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드로잉 작업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검은색 윤곽선만으로 인물을 표현한다. 유채색을 쓰기도 하지만 전체상으로 볼 때 검은색의 윤곽선이 조형의 핵심이다.

이러한 형식의 인물화는 이전에 잠깐 시도한 일이 있었으나, 그냥 일과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최근 작업은 그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이전의 선에다 몇 번 더 붓질을 가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즉, 드로잉이 날것이라면 최근 작업의 선은 회화적인 맛을 좀 더 곁들인 표현이다. 따라서 드로잉과 회화의 경계에 놓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드로잉의 개념에 가까운 건 인물의 얼굴에서 눈코입을 묘사하지 않는 데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드로잉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 드로잉과 화화의 중간 지점, 즉 경계선상에 자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드로잉도 회화의 영역에 당당히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느냐에 대한 하나의 답인 셈이다. 어쨌거나 이처럼 새로운 형식의 작업은 창작활동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하나의 도전이다.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신항섭(미술평론가)

 

 

 

 

김배히는 1939년 충남 보령 태생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을 통해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교직을 떠난 후에는 대전과 공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충남 지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목우회>와 <신작전> 창립 회원이기도 한데, 오늘까지 이 두 미술 단체 회원전에 지속적으로 출품하고 있다.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초대로 마련된 “김배히 화업 60, 회고전”은 초기 작업부터 오늘에 이르는 작품 전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이다. 6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작가가 어떠한 조형적인 성과를 이루어 왔는지 그 여정을 살필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사실주의와 인상파를 절충한 듯한 화풍, 즉 이른바 국전풍의 작품 경향을 따랐다. 견고한 형태미를 갖춘 인물화는 단정하고 정적 모습을 통해 시대적인 분위기를 반영했다. 1990년대에는 차츰 야수파적인 속성의 작업으로 바뀌면서, 거칠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터치와 강렬한 색채 대비가 인상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달리 보면 색채 포름을 중심으로 하는 간결한 구성 및 구도를 선호하면서 자신만의 형식을 모색하게 된다.

2000년대에는 인상파와 야수파의 속성을 함축하는 독자적인 형식의 풍경화를 성취한다. 물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전경과 원경을 하나의 관점으로 통합하는 독특한 구도는 그만의 조형감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면에 꽃을 배치하고 들녘을 건너뛰는 아득한 원경에 마을을 배치하는 구도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처럼 중경을 생략한 채 전경과 원경의 극단적인 대비는 시공간을 초월한 듯싶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최근에는 이전과 완연히 다른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고 있다. 인체 드로잉을 회화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명암이나 원근과 같은 조형기법을 중심으로 하는 인상주의와 달리 드로잉 작업이 근간이다. 인물을 선묘로만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드로잉 작업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검은색 윤곽선만으로 인물을 표현한다. 유채색을 쓰기도 하지만 전체상으로 볼 때 검은색의 윤곽선이 조형의 핵심이다. 즉, 드로잉이 날것이라면 최근 작업의 선은 회화적인 맛을 좀 더 곁들인 표현이다. 따라서 드로잉과 회화의 경계에 놓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드로잉의 개념에 가까운 건 인물의 얼굴에서 눈코입을 묘사하지 않는 데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드로잉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 드로잉과 화화의 중간 지점, 즉 경계선상에 자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드로잉도 회화의 영역에 당당히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느냐에 대한 하나의 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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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50723-김배히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