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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展
煙霞(연하)로 집을 삼고, 風月(풍월)로 벗을 사마

타데우스 로팍 서울
2025. 6. 13(금) ▶ 2025. 8. 2(토)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122-1 1, 2층

그림에서든, 조각에서든, 어떤 작업에서도 나의 어떤 맑은 기운과 관조자의 맑은 기운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길 소망한다. - 이강소
타데우스 로팍은 6월 13일부터 8월 2일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강소의 개인전 '煙霞(연하)로 집을 삼고, 風月(풍월)로 벗을 사마'를 개최한다. 본 전시는 2024년 9월 갤러리와 국제적 협업을 체결한 이후 함께 선보이는 첫 번째 전시로, 회화, 조각, 판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폭넓게 아우름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독창적이고도 선구적인 위치를 확립한 이강소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전시 제목은 16세기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이 안동 도산서원에 머무르며 자연 속에서의 성찰과 수양을 노래한 시조 '도산십이곡 (陶山十二曲)' 중 제2곡에서 비롯되었다. “煙霞(연하)로 집을 삼고, 風月(풍월)로 벗을 사마”는 인간이 자연 속에 스며들어 존재의 본질을 되묻고, 자아를 우주적 질서와 조화시키려는 시인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긴 구절이다. 이강소는 이러한 퇴계의 자연관에 깊이 공명하며, 자신의 예술 또한 자아를 표출하거나 고정된 실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 세계의 흐름과 조응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작가는 자연의 흐름에 조율된 상태, 침묵 속 감응의 순간, 그리고 물아일체의 경험을 포착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한다. 이에 대해 그는 “마음과 우주가 하나가 되면, 이때 나도 남도 탈각한다”고 덧붙인다.
이강소는 동아시아 전통 회화의 요소들과 국제적 양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융합한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유려한 붓놀림에서는 무릇 서예와 수묵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드러나며, 인상주의적 수변 풍경은 문인화의 정신적인 필치를 연상시킨다. 그의 몸짓이 만들어내는 붓놀림(혹은 흔적)은 1950년대 서양의 추상표현주의, 특히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의 작품을 떠올리게 할 뿐만 아니라 일부에서는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물감 튐 자국과 유사한 흔적도 발견된다. 그러나 그의 회화는 서구 회화가 강조한 개인적 자아 표현의 측면이 걷어진 채, 보다 절제된 형태로 자리한다.
이강소는 다양한 회화 사조가 지닌 표현적 잠재력을 유연하게 활용해 왔다. 미술사학자 로버트 C. 모건(Robert C. Morgan)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가는 “필수적인 움직임으로서의 제스처, 공간으로 진입하는 방식, 그리고 살아있고 고귀하며 풍요로운 자연의 도(道)”를 주축으로 삼아 자신만의 고유한 회화적 어법을 구축했다. 그는 긴 서예 붓과의 교감을 통해 몸의 움직임을 회화에 반영함으로써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기운생동(氣韻生動)’, 즉 예술가의 정신이 작품 속에 생생히 깃드는 상태를 구현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끊임없는 수양과 수련은 신체와 붓, 물감, 그리고 캔버스의 상호작용에서 가감없이 그대로 기운을 통해 전달”된다고 말한다.

전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주요 작품을 통해 작가의 형식적 진화 과정을 조명한다. 그의 작품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슴, 오리, 배 등의 도상은 그 자체로 작가적 언어이자 그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그중에서도 배는 작가의 작업 안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미술평론가 미네무라 도시아키(Minemura Toshiaki)는 “이강소의 배는 수면을 가로지르는 ‘건너기’의 상징적 은유로 기능할 뿐 아니라, 이미지를 넘어 진정한 회화적 실재에 도달하려는 또 다른 ‘건너기’를 실현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바로 이 지점이 “서양 근대회화와 동아시아 수묵화가 교차되고 합류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초기 회화에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던 배의 형상은 시간이 흐르며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붓놀림 속에서 희미한 선의 흔적으로 변모한다. 이에 대해 미네무라 도시아키는 “이강소 회화의 희귀한 매력은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지와 그것을 위협하고 무효화시키려는 여러 가지 요소와의 끝없는 갈등과 대화에서 배어나는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다양한 조형 요소들이 충돌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도상들은 점차 비재현적인 제스처로 전환된다. 그렇게 형상은 사라지고, 화면은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숭고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로 기능하게 된다.
본 전시는 회화와 조각 간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이강소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순수한 에너지’에 주목한다. 갤러리 중정에 전시되는 '무제-94095(1994)'에서 작가의 배는 더 이상 캔버스에 머물지 않는다. 평면에서 공간으로 떠오른 배는 작가의 붓놀림을 연상시키는 청동 덩어리들 사이로 명상하듯 미끄러지며 2층과 1층 전시장을 연결하고 관객을 인도한다. 그렇게 마주하는 작가의 설치 작품 '팔진도'(1981/2017)는 그의 예술적 흐름을 또 다른 방식으로 매개하며 마치 바닥에서 솟아오른 듯 다채로운 산맥처럼 펼쳐진다. 주체와 대상의 구분이 지워진 채 서로 감응하며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이루는 순일(純一) 속에서 작가는 “오직 그 둘이 상관하는 사건과 과정만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1990년대는 이강소가 조각적 실험을 활발히 전개한 시기이다. 그는 육면체의 유동적인 물질성에 매료되어, 점토 덩어리를 공중에 던지고 중력에 의해 낙하시키는 방식으로 조형을 시도했다. 작가는 이를 ‘스스로 만들어지는 조각’이라 칭하며, 이로써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작용에 조각의 형성을 위탁하고자 했다. 이는 동일한 대상을 반복해 그리며 빛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고자 했던 인상주의의 회화적 태도와도 상통한다. 이강소는 조각으로써 자연의 영속적인 흐름을 포착하고자 한 것이다. 점토, 세라믹, 청동, 알루미늄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된 그의 조각은 균형과 붕괴 사이의 아슬아슬한 긴장을 품고 있으며, 미술평론가 엘리너 하트니(Eleanor Heartney)의 표현처럼 “자연 세계의 어떤 우연적 아름다움”을 응축한 시적 조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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