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재 展

 

Rumination

 

Rumination-23022_74x45cm_Acrylic on  Paper_2023

 

 

G&J 갤러리

(인사아트센터 3층)

 

2025. 6. 4(수) ▶ 2025. 6. 10(화)

Opening 2025. 6. 4(수) 17시 30분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41-1 인사아트센터 3층 G&J갤러리 | T.02-737-0040

 

https://blog.naver.com/gj-gallery

 

 

R-25012_50x50cm_Acrylic on Canvas_2025

 

 

기억에 축적된 자연

 

거칠게 쓸어내린 붓질, 고요한 여백 속 선명한 색. 신호재 작가의 회화은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단순한 형태의 자연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기억 속 자연을 떠올리게 된다. 신호재 작가의 작품은 명확한 자연의 형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어딘가 본 적 있는 풍경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는 자연의 정서를 응축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나타낸다. 그가 일필휘지로 그린 일월오봉도, <Rumination-일월오봉도>는 속이 탁 트이는 듯하다.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듯, 기분좋은 착각을 주는 그의 자연은 <무제>가 그려진 1982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남도의 자연을 늘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자랐다. 새벽녘 시원하게 불어오던 바람과 푸르른 산천과 같은 풍경들은 그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가 그림을 시작한 이후 그는 그때의 감각을 잊지 않고 천천히 되새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면에 옮겨왔다. 그 시절의 자연을 되돌려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는 자신의 회화들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릴 수 있는 그 때의 풍경을 그리고자 한다. 특정한 장소보다는, 자연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과 기운, 그리고 그 안에 머물렀던 시간의 결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그의 작업 모토가 되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자연을 따라 함께 나아가고 있다.

 

 

R-25016_50x160cm(4ea)_Acrylic on Canvas_2025

 

 

신호재 작가는 자신만의 회화를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다듬어 왔다. 그의 작업 세계는 남도의 산과 바다, 구름과 강 등, 일상 속에서 오랜 시간 눈과 몸에 배어 온 자연 경물들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그림은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억에 응축된 자연’ 즉, 그가 직접 체험하고 마음속에 간직해 온 이미지들을 생략과 재구성을 통해 캔버스 위에 풀어낸 결과물이다. 이렇게 표현된 자연은 작가 개인의 감각을 넘어 예술이라는 매개체 안에서 ‘상징화’되고, 그로 인해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 변모한다.

이러한 맥락은 얀 아스만이 말한 ‘문화적 기억’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아스만에 따르면, 문화적 기억은 과거의 사실을 단순히 기록하거나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구성된 과거’다. 특정한 이미지나 상징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현재화함으로써, 개인 혹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신호재 작가 역시 남도의 풍경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자연을 ‘나의 정체성이 깃든 장소’로 다시 만들어낸다. 그에게 자연은 단지 배경이 아닌, 자신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장소로서, 시간과 감정이 켜켜이 쌓인 내면의 풍경이다.

 

 

R-25007_72.7x60.6cm_Acrylic on Paper_2025

 

 

작가에게 자연은 단지 관찰의 대상이 아닌, 오랜 시간 몸과 감각에 스며든 기억이며, 그가 살아온 삶의 배경이자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정체성이다.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하는 자연을 따라가는 것에 가깝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자연의 분위기와 기운, 그 안에 깃들어 잇는 정서를 화면에 옮겨내고자 한다. 이 기억된 자연을 작가는 과감한 생략과 변형의 방식으로 화면에 드러낸다. 작가는 “작품에 자연을 담으면 담을수록 자연을 스스로 해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는 작가가 자연을 표현하고 나타내는 방식이 얼마나 신중하고 절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작가의 ‘덜어냄의 미학’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연의 형태를 과감히 생략하면서, 자연을 좀 더 표현하지 않고 비워두는 선택을 한다. 이러한 방식은 동양적 미학과 닿아 있는데, 특히 전통 산수화의 여백처럼 그의 화면은 시선이 머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비어있는 공간은 단순한 여백이 아니라, 관람객이 자신의 자연을 투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렇듯 신호재 작가는 동양적인 상징과 서양적인 색채 감각을 융합시켰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의 작품에서는 앞서 설명한 동양의 미를 엿볼 수 있다. 여백과 같은 동양적 정서가 깃들어 있으면서도, 서구적인 색감 사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지난 기억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것이 아닌, 자신의 기억과 감성을 바탕으로 자연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시도이기도 한다.

 

 

Rumination-24008_162x112cm_Acrylic on Canvas_2024

 

 

또한, 작가는 재료 선택에 있어서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지녔다. 자연을 중요시하는 면모는 그의 그림 뿐만 아니라 배경이 되는 재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재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골판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하며, 기능적인 도구로 여겨지는 화이트 보드를 아름다운 남부의 산천을 나타내는 화면으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산업화의 상징과도 여겨지는 재료 위에 그만의 색과 선이 더해지면서, 그것들은 더 이상 일상의 사물이 아니라 남도의 풍경, 기억의 조각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작가는 익숙한 재료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어서며, 자연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보다 직접적이고 솔직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신호재 작가는 자연을 그저 재현하는 것을 넘어, 자연을 감각과 기억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그의 작업은 동양적 여백과 정서를 지니고, 서구적 색채로 동서양 회화의 미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교차시킨다. 그의 회화는 특정한 장소를 보여주지 않지만, 보는 이의 마음 속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풍경’을 다시 정의한다. 이는 단지 자연을 그리는 방식의 전환을 넘어, 회화가 감정과 기억의 형식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의 작업은 오늘날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연’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시도이다.

 

Critic. 위혜영

 

 

Rumination-South_150x70cm_Acrylic on Paper_2019

 

 

R-25001_72.7x60.6cm_Acrylic on Canvas_2025

 

 

R-25003_127x63cm_Acrylic on  Paper_2025

 

 

 

 

 
 

신호재 | Shin, Ho-Jae

 

전남대 미술과 및 조선대 교육대학원 졸

 

개인전 | 39회 | 단체전 | 500여회

 

Homepage | https://blog.artmusee.com/shinhojae

E-mail | shingr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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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50604-신호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