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현 展

 

투명한 밀도

 

 

 

로이갤러리 압구정

 

2024. 3. 9(토) ▶ 2024. 3. 30(토)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42길 24-6 1층, 7층

 

www.instagram.com/roygalleryseoul

 

 

 

 

투명과 밀도


그동안 작가 자신의 언어와 여러 비평가에 의해 형성되고 구조화된 그의 회화에 대한 내러티브를 수용하면서도 다른 관점과 해석을 전달해 보고자 한다.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회화로 실현하려는 것은 직접 타이틀을 결정한 ‘투명한 밀도’이다. 이 키워드는 두 가지 영역으로 달성되는데, 표현 기법으로 담아낸 조형언어와 기호로 담아낸 삶의 순간들이다.
작가 특유의 기술을 배우기 전의 원초적인 화법은 화면을 대하는 관점 및 태도와 연관된다. 낙서향의 필치와 풍부한 색감, 투명감을 의도한 중첩으로 구성된 작품은 오일 스틱이 대표적인 매체로 활용된다. 일반적인 유화 작업에서 유화물감을 붓에 묻혀 작업을 하는 것과 달리, 물감이 아닌 오일 스틱 자체를 쓴 후 손이나 붓으로 문지르고 이 과정에서 미디엄을 함께 사용해 유동성을 키우기도 하고, 붓에 오일 바를 비벼 묻히거나, 오일 바를 미디엄에 개어 붓에 묻혀 작업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감성과 의도를 드러내며, 솔직함으로 가장 빠르게 본질(순수성과 투명성)에 도달한다. 다만, 매체를 다양하게 변용하는 것은 형식적 발상보다는 내재된 이야기의 복합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택은 힘을 빼고 그린 그림이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작품명 ‘Draw without drawing’은 작가의 작품이 고전적인 드로잉의 개념이 아닌 작가 안에 있는 것들을 끌어내는(draw) 것임을 나타낸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현재 160번 대를 지나고 있다. 이 번호는 숫자 뒤에 하이픈이 붙거나 알파벳이 붙는 등의 방식으로 파생되지 않고 하나씩 부여되는데 작품이 작든 크든, 혹은 몇 번의 레이어링이 일어났는지 상관없이 동등하게 여겨지고, 작가의 작업 과정과 수반된 삶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여정이며, 모든 과정과 산출물이 다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200번, 300번의 ‘Draw without drawing’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 묘한 설렘과 기대감이 있다.

 

 

 

 

1. 투명
작가는 대학에서 미술학, 디자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기업에서 디자인 실무 경력이 있고, 이후 오랜 기간 회화에 천착하고 있다. 이 과정의 수행은 회화 안에서 조형언어와 디자인언어에 대한 동시적 이해와 조합을 바탕으로 내재적으로 품고 있는 코드를 시각화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을 분석하면 가시적인 면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디자인이 연상된다.
현실의 사물성을 재현하는 애플의 ‘스큐어모피즘’, 단순한 선과 면으로 아이콘을 구성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랫 디자인’, 플랫디자인에 입체감을 부여한 구글의 ‘머티리얼 디자인’, 그림자로 볼륨과 촉각감을 강조한 드리블의 ‘뉴모피즘’ 등 지난 20년간 UI디자인의 흐름은 한 작가가 일생에 걸쳐 펼치는 작풍의 변천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십수 년의 화력 안에서 근현대 작가 특유의 시기적 변천을 답습하지 않았고, 그만의 변천 과정으로 구현한 화면은 또 다른 UI 디자인 양식인 ‘글래스모피즘’과 닮았다. 글래스모피즘은 특유의 투명도(배경을 흐리게 처리해서 유리에 성에가 낀 듯한 효과), 개체가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중 레이어의 방식, 선명한 컬러를 사용해서 흐릿한 투명도를 더욱 강조, 개체의 은은하면서 가벼운 느낌의 테두리 등의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유사성을 유추한 것은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의 것이지만,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작가가 경험하고 익히고 받아들이는 것, 망막에 맺힌 이미지와 해석된 데이터에 대한 일정 부분의 반영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작가가 진정으로 의도하지 않은 것은 그러한 부분으로 보인다.
투명은 태초의 맑음도 있겠으나 정제를 통해서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삶은 인터뷰에서, 팔레트에 반듯하게 쌓인 스테인리스 물감 종지에서 알 수 있듯 규칙적이고 계획적이다. 그는 계속해서 정렬을 유지할 것이다. 작업공간 안에서 즉흥성도 정렬한다. ‘순수하고 자유로운 놀이’라는 작가가 정의한 규범 체계에서 부족함과 미숙함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욕망이 느껴진다. 손과 붓이 ‘움직이는 대로’는 삶을 긍정하는 태도의 일환이며, 본인의 작업 과정을 신뢰하는 것이다. 더 맑고 투명한 레이어를 위해 표현을 정제하면서 중첩한다. 레이어의 사이를 감각하면 관념적으로 포토샵의 지워진 배경처럼 백색과 회색의 체커보드가 언듯 보이는 듯도 하다. 선명한 기억을 흐린 이미지로 드러낸다. 은은해 보이는 화면으로 감상자에게 삶의 긍정을 강렬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대비감, 순환과 적층은 투명성이 담보되어, 맺혀있는 실재한 이미지도 물결 위의 마블링 물감처럼 일렁이듯 보인다.

 

 

 

 

2. 밀도
하나의 화면 안에서 쌓인 시공간과 (기호화된)등장인물의 중첩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테서렉트와 같은 특이점의 지점을 연상시킨다. 다만 어둡고 외로운 느낌이 없이 밝고 포근한 느낌만이 존재하는데, 이 안에는 긍정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긍정과 함께 ‘부정의 부정’이 담겨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과 두려움은 작품 안에서 생생하고 영원하게 존재시킴으로, 다시 기쁨과 행복으로 전환한다. 극복된 아픔은 작가와 관객 모두를 감화시킨다. 작가가 구축한 이데아는 신성성을 향하지는 않지만, 이상적 원형에 도달하려는 시도를 숨기지는 않는다. 나, 나의 아이, 그리는 행위, 일상, 경험, 기억, 감각 등을 함유한 이 기호적인 형상들은 정확한 재현을 달성하지 않아도 서사를 가능케 하고, 또 서사를 이끌어간다.
웹 개발에서 ‘디자인 시스템’은 디자인 원칙과 규격을 정의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 UI컴포넌트, 코드를 포괄하는 시스템을 말하는데, ‘Draw without drawing’ 시리즈의 기호화된 내러티브와 색채의 정의, 매체의 조합은 하나의 디자인 시스템을 회화에 도입한 듯 각각의 회화가 일관성을 보유하면서도 각각의 구분된 감상을 제공하고 있다. 작품명이라는 URL을 따라가면 화면(회화) 안에 아카이브 페이지가 퍼블리싱 되어 있는데, 촘촘하고 견고하며 제대로 작동하는 화면(회화)으로 보인다.
물론 거칠게, 부드럽게, 신나게 그린 작품에는 코드화된 방식을 거부하려는 작가 본래의 의지도 피력된다. 이는 관습과 제도 교육 등 여러 권력 장치에 의해 현대인에 스며들어 있는 자기 검열을 탈피하기 위함이다. 또한 게이미피케이션이 적용된 것처럼 구상과 구현의 모든 그리기 과정 중 비 게임적 맥락에 게임 요소를 적용하여 오락이나 유희 목적의 맥락으로 탈바꿈 시켜 창작 행위 자체를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게 만들고 있다. 작가가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은 단순히 밀도를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연쇄적으로 꺼내어 다시 감각하고, 해상도를 높이는 행위도 동시에 일어난다.
이러한 행위의 총체가 투명성에 가려지지 않은 깊고 묵직한 밀도를 형성한다.

기존에 작성된 비평들과 다른 관점으로 계속 나아가자면, 작가가 완성한 체계는 순수하게 이성적인 회화이며, 여러 분석에 언급된 자동기술법을 맹종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자유로운 표현 방식, 다양한 혼합매체는 심지보다는 표피같이 느껴진다. 작가는 회화로 실현하려는 것이 있다. 조형 언어의 형식적 구축은 장식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내려놓는 것이 맞아 보인다. 이 정렬된 화면이 투명과 밀도를 담아냈고, 감상자를 지순한 행복으로 감화시킬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이 더 맞아 보인다.
전시에 등장한 작가의 작품들은 삶의 순간들을 차곡히 쌓은 푸릇한 선반들이다. 작가가 작품 안으로 내어준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레이어마다 행복 추구와 긍정 회복의 비가 투명하게 내리고 있을 것이다. 젖은 줄도 모르고 기분 좋은 축축함으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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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40309-하정현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