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展

 

오비추어리(Obituary)

 

What's left-01_Wood, paint, steel nails, and wood oil finish_187x5x7cm_2024

 

 

갤러리 공간아래

 

2024. 2. 28(수) ▶ 2024. 3. 1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로 9길 39, 1층

 

 

What's left-02_Wood, paint, steel nails, and wood oil finish_130x20.4x5.5cm_2024

 

 

오비추어리(Obituary)

1.
“날수 셀 줄 알기를 가르쳐 주시어, 우리들 마음이 슬기를 얻게 하소서.”
(시편 90편 12절, 최민순 옮김)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자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품었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전문변호사에게 자문을 받아 3개월에 걸쳐 작성한 뒤, 2명의 증인을 세워 공증을 받고 로펌 보관소와 아내에게 각각 한 통 씩 맡겨두었다. 그 안에는 나의 오비추어리, 부고기사 초안이 들어있다.

우유를 사거나 마실 때면 유통기한이 얼마 남았는지를 확인한다. 나는 나에게 남은 유통기한(expiration date)을 떠올려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2023년 10월 한 달 동안 미국 중서부 2,800킬로미터 넘는 거리를 차를 몰아 아내와 여행을 했다. 정확히 10년 전 차를 몰고 스페인 남부 장거리 여행을 했을 때와는 체력이나 에너지 수준이 달라져 있었다. 이렇게 로드트립(road trip)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좋아하는 위스키와 샴페인을 실컷 마실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지금 여기에서 마시는 술이 내게는 가장 향기롭고 맛있는 것이어야 한다. 고객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도움을 주고 돈을 벌 수 있는 날은 결코 길지 않다. 사랑하는 도시 교토에 가보는 것도 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오늘 주어진 기회가 한없이 소중해진다. 북클럽 트레바리에서 매달 4시간 가까이 사람들과 밤 늦도록 대화를 나눌 때면 이런 시간이 유한하며, 지금 여기에서의 시간은 이 순간이 마지막임을 깨닫는다. ‘유통기한’을 떠올리며 하루를, 프로젝트를, 관계를 시작할 때 갈림길(fork in the road)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지혜를 갖게 된다. 그것이 매일 아침 일어나서 ‘대니보이(Danny Boy)’를 연주하는 이유다. 대니보이는 유언장에 “내 장례식을 하지 않는 대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음악을 들으며 추억해 주길 바란다”라고 적은 나의 플레이리스트 ‘SFMF(Song For My Funeral)’ 첫 번째 곡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술인 크뤼그(Krug) 샴페인과 함께.

2.
“마야: 정말이야, 슈발블랑 61년산은 지금 절정일 거야…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몰라. 도대체 뭘 기다리는 거야?
마일스: 나도 몰라. 어쩌면 특별한 사람과 함께 하는 특별한 기회를 기다리는 지도.
마야: 네가 슈발블랑 61년산을 따는 날, 그 날이 바로 특별한 날이야.”

(영화 <사이드웨이> 중에서)

 

매일 한 번씩 나는 질문과 마주한다. 그 중 첫 번째 질문은 “Hoh, what do you want?”이다. 이 질문은 나의 다양한 욕망을 마주하도록 도움을 주는데, 막연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욕망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해준다. 이 질문과 마주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장수=복福”이라는 가정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다가 70대쯤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다. 80대에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렇다고 자살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70대 쯤 심각한 병에 걸린다면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내게 죽음이란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잘 살게 만드는 드라이버(driver)이다.

 

 

Goodbye Again-03_Wood, steel nails, and wood oil finish_23x11x11cm_2024

 

 

3.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인생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류시화 옮김, 2014, 261쪽)

미술 작업과 전시를 통해 나는 나만의 사전(dictionary)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첫 개인전(2023)에서 펼쳐낸 ‘어덜트(adult)’, 즉 심리적 성인이 되는 법에 이어, 이번 두 번째 전시에서는 두 번째 항목인 ‘오비추어리’에 대한 나의 해석을 담아 작품을 선보인다. 죽음을 연구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죽음에 대한 연구는 결국 삶에 대한 연구”라고 했듯이, 오비추어리 즉 부고기사는 어떤 사람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알리는 글이지만, 핵심은 그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전시를 준비하며 나의 마지막 순간, 혹은 그 시점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모습을 생각해보게 된다. 좋은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포도를 섞듯(assemblage) 좋은 인생 역시 다양한 시도와 경험의 조합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다양한 재료를 통해 인생의 남은 시간을 표현해보는 것은 그 시간을 더 잘 보내기 위한 나만의 준비이자 의식이었다.

 

김호

 

*이번 전시에서 특별 상영되는 뮤직 비디오 ‘Danny Boy for Hoh’s Obituary’은 정영찬(호서대학교 겸임교수, 수동예림)이 디렉팅과 프로듀싱을, 정윤지(피아니스트, SJA 실용전문학교)가 편곡(듀엣 피아노)과 피아노 연주를, 마이클 골드(Michael Gold, PhD, Jazz Impact)가 베이스 연주에 참여했다. 김호가 솔로로 연주한 Danny Boy는 김광민 편곡의 것이다. ‘나의 부고기사’에 담길 이 소중한 노래를 즐겁게 함께 연주해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Stargazing-03_Paint and sandpaper on linen_35x27cm_2024

 

 

Self-portrait in or of Kyoto-03_Wood wood oil finish, and oil stick on li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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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40228-김호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