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정 展
숲의 그늘 Shades of Forest
숲의 그늘_Acrylic on canvas_27.3x34.8cm_2023
갤러리 도올
2023. 10. 6(금) ▶ 2023. 10. 22(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87 (팔판동) | T.02-739-1405
http://www.gallerydoll.com
숲의 그늘_Acrylic on canvas_27.3x34.8cm_2023
나는 내가 겪어 왔던 모든 여자들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결국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은 내 손톱이 된 그녀, 내 머리카락이 된 그녀, 내 젖가슴이 된 그녀들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다. 이 작업으로 인해 마음 깊이 박제된 빛으로 존재하던 그들의 삶이 내가 어두운 모퉁이에 다다를 때마다 나타나 길을 밝혀 준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색을 가진 ‘박제된 빛 ’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었으면 한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며, 변하고 있어도 하나다. 이 작업들은 그녀들의 세상 혹은 나의 세상 이야기이지만 서사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즉 전시 < 숲의 그늘 >은 서사는 분절시키고 그 장소의 숨어있는 분위기와 그곳의 감정과 각 개인들마다 다르게 조각된 기억의 조각들에 관한 작업이다. 이것이 내가 그녀들에 관한 기억을 시각화하며 소환하는 방법이다. 바깥과 안의 경계가 모호한 마을과 주변 환경과 뒤섞인 사람들과 그 사이 공간, 그 비틀어진 틈을 회화로 시각화하고자 한다.
지난 2월 전시 < 쉬고 있는 여자들 > 작업을 전시장에 디피해 놓고 보니 <죽어버린 무화과 나무>라는 작업이 내가 하고 있는 작업들의 주제를 대표하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3년 넘게 키우던 무화과 나무가 내 생활이 힘들 때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죽어버렸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렸던 그림이 <너의 무늬5>였고, 죽은 무화과 나무 화분을 처리하지 못하고 방치한 채로 작업실 테라스에 그대로 두었더니 어느 날 옆에 작은 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풀은 무서운 생명력으로 1.5m도 넘는 키로 자랐고 급기야 꽃까지 피웠다. ‘생’과 ‘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극명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 화분을 작업실 안쪽 이젤 앞에 들여와 사생을 했다. 다른 작업들은 내가 직접 본 이미지들과 직접 찍은 사진을 참고해서 그것을 기억으로 조합하거나 콜라주 형식으로 이미지들을 조합하지 바로 사생하진 않는다. 그래서 <죽어버린 무화과 나무>는 더욱 특별하다.
살아내는 순간_Acrylic on canvas_162.2x162.2cm_2023
<무지개를 짓는 여자> <모자를 뜨는 여자> <살아내는 순간> <안녕을 비는 낮의 숲> <씨앗을 날리는 그녀와 말라버린 풀 그리고 새, 새, 새>등 쉬고 있는 여자들이 직접 등장하는 그림들에서 ‘쉬고 있다.’는 라는 뜻은 단순히 그냥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녀들이 오롯하게 자신의 주체적인 마음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순간 즉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애쓰는 순간을 뜻한다. 그녀들은 모두 실재하는 내가 애정하는 여성들이지만 곧 바로 나이기도 하다. 바로 그 순간을 그린 그림이 <안녕을 비는 절벽4> 이다. <사라지고 있는 우리1~6>시리즈 들은 식물, 동물, 무생물 등등 온갖 것들의 추상적인 조합이다. 아직 해석되지 않은 세상을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생’과 ‘사’가 뒤엉켜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결국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된다.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 이라는 입체드로잉 시리즈들은 <박제된 빛> 의 입체화이다. 2년 전 동료작가들과 함께한 퍼포먼스 워크샵에서 <박제된 빛>을 유리구슬 등을 사용하여 빛조각을 모아서 순간적인 무지개를 만드는 퍼포먼스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 퍼포먼스에 사용된 재료가 모조리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 입체 드로잉 시리즈로 만들어 졌으며, 막상 입체로 만들어 빛이 아니라 실제 덩어리가 되고 나니 누군가 듣고 보지 않아도 소소하게 삶의 최선을 다하는 그녀들의 삶, 그녀들의 말 덩어리가 된 것 같아서 제목을 <그녀가 중얼거리는 말> 이라 지었다. 그리고 이 입체 드로잉이 다시 옥빛 채먹으로 그린 <살아가는 중> 이라는 푸른색 드로잉 시리즈가 되었다. 모두 추상처럼 보이는 이유는 ‘생’과 ‘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극명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푸른색은 새로운 생의 의지로 충만한 경계에 놓인 세상,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작은 노력들을 의미한다. 결국 돌이켜 보니 예전 처음 태고의 기운을 간직한 “야쿠시마 숲” 에 갔을 때 느낀 그 죽음과 생의 에너지를 계속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숲의 그늘> 이 되었다.
살아가는 중_25x17.5cm_colored ink on paper_2023
안녕을 비는 절벽_Acrylic on canvas_72.7x60.6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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