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익현 展

 

IL MARE _ Wave

 

IL MARE_Wave1 _112X145_chinese ink, acrylic, silver paper on canvas_2023

 

 

 

 

IL MARE_Wave2_112x145cm_chinese ink, acrylic, gold paper on canvas_2023

 

 

Il Mare Wave: 자신들이 가진 신비로 돌아가라.

 

정익현(鄭益炫) 작가는 심연(深淵)을 주제로 회화작업을 지속해온 중견 작가이다. <Il Mare>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는 연작은 시간을 통해서 변화를 거듭했는데, 올해 2023년에 선보이는 작품은 형식면에서 더욱 물오른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불과 1년 전인 2022년 대구달성문화센터에서 선보인 개인전의 작품과 천양(天壤)의 차이로 발전한 모습이다.

 

작년에 작가는 전시회에 앞서 “심연에서 올려다본 수면, 금빛 · 은빛 빛오라기(빛줄기)를 잡고 힘껏 두둥실 몸을 띄운다. 넘쳐나는 걱정, 욕심, 두려움도 버려야 도달하는 그곳에서, 어느새 나는 봄날의 윤슬이고 싶다."라고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봄날의 윤슬”이란 저 멀리 빛에 비춘 잔물결 때문에 일렁이는 빛의 춤을 말한다. 우리는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내면에 여러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자의식(self-consciousness)으로 외부세계를 바라본다. 자의식은 나이면서 동시에 참된 내가 아니다. 우리 철학에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는 말이 있는데, 마음이라는 바다는 성(性)과 정(情)이라는 물을 모두 통솔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순수하고 맑은 성(性)은 가끔 일어나기는 하지만, 심을 어쩌지 못한다. 주지하다시피 성(性)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우리는 정을 극복해 참된 성을 실현하는 것을 가리켜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배웠다. 그런데 자의식은 바다이다. 자의식이라는 바다는 주위의 모든 것(외부세계)을 덮을 수 있을지언정 자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의 심연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래적으로 불행을 달고 온다.

우리 동아시아의 고전 『논어(論語)』의 첫 구절은 “때대로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시작한다. 신플라톤주의의 개창자인 플로티누스(Plotinus, c.204-270) 역시 “너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절차탁마하여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진정한 덕성이 없다면, 신은 명목상의 허울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동서양의 성인들 모두 내면의 참된 본성을 닦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IL MARE_Wave10_150x350cm_chinese ink, acrylic, gold paper on canvas_2023

 

 

플로티누스의 철학을 가리켜 한마디로 헤놀로지(Henology)라고 한다. 토 헨(to hen)은 하나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이다. 따라서 헤놀로지는 하나에 관한 학문이라는 뜻인바, 플로티누스가 말하는 하나는 단순히 한 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포괄했을 때의 하나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익현 작가가 말하는 바다이다. 모든 존재의 관계 전체가 바로 세계이고, 세계는 바다로 비유되는 것이다. 그 세계에 우리의 내면까지 포함된다.

 

바다라는 대양은 모든 포말을 귀속시킨다. 그러나 바다라는 대양에 의해서 작은 포말 하나라도 바다가 아닌 경우가 없게 된다. 반면에 바다라는 대양은 작은 포말에 의해 비로소 구체성을 띄게 된다. 즉, 정익현 작가가 바다를 그려서 나타내려 하는 것이 태초부터 우리 안에 구유되어 있는 잠재된 신성이다. 정익현 작가는 플로티누스의 사상적 후예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의 철학을 염두에 두면서 음미하고 체득하여 그림으로 실천하여 표현한다. 정익현 작가의 작가노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높은 산, 바다의 넘실대는 파고, 강물의 드넓은 조류와 별들의 운행들을 감탄하기 위해 떠나는데,

정작 자신들이 가진 신비는 머무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다.

 

우리의 내면은 모든 것을 원만자족하게 갖추고 있다. 자의식은 북송의 장재(張載)가 제창한 심통성정(心統性情)에서의 마음[心]일 것이다. 마음[心]은 바다이다. 그러나 마음은 너무나 크고도 넓어서 여러 가지 모습을 포괄하고 있다. 칠정(七情)과 같은 희(喜) · 노(怒) · 애(愛) · 락(樂) · 애(哀) · 오(惡) · 욕(欲)의 파도가 몰아치는가 하면 사단(四端)과 같은 신성이 깃들어있기도 하다. 따라서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IL MARE_Wave4_130x162cm_chinese ink, acrylic, gold paper on canvas_2023

 

 

나는 나그네길 잠시 머물던 곳을 떠나서 영원히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려 하네.

 

나그네길 잠시 머물던 곳[逆旅之館]은 우리 인생이다. 영원한 본래의 집은 어디일까? 내 마음 속의 신성이며, 아름다운 양심의 공간이다. 이를 우주 밖 어디쯤 우리가 왔던 본래의 곳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정익현 작가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해서 말한바 “자신들이 가진 신비”와 정확히 같다.

이쯤 되면 정익현 작가가 그리려는 바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체감될 수 있다. 정익현 작가의 모든 그림은 이중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바탕에 푸른빛의 심연이 바다와 같고,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붉은 바탕이나 백색 바탕이나 녹색 바탕이나 모두 바다와 같이 깊은 심연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 내재되어 있는 황금의 여울이나 봄날의 윤슬이 잠재적 가능성을 암시하는 구조이다. 바탕(바다)은 현실태이고 황금의 윤슬은 가능태이다. 우리가 언젠가 가야하는 목표이다. 현재 잡거나 짚을 수 없더라도 언젠가 영원히 돌아가야 할 우리의 본연이다.

정익현 작가의 2022년 전시가 추상표현주의적 성향이 강했다면, 올해의 작품은 정념을 발라내고 굳건한 의지로써의 구성력을 옹골지게 배가시켰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특히 <Il Mare: Wave 2>라는 작품은 중앙에서 한 개 상층부에서 두 개의 푸른 소용돌이가 주위의 시선과 분위기를 빨아들이는데, 금박의 황금 윤슬은 각각 상층부와 하단의 기층에서 다시 빛을 관객을 향해 발산하고 있다. 정익현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바다가 모든 것을 통솔한다 할지라도 마음이 정제되고 나타(懶惰)가 걷히는 순간 홀연히 신성의 빛이 드러난다는 동서양에서 살았던 옛 사람의 가르침이 차례로 떠오르는 것이다. <Il Mare: Wave 4>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자동기술에 의해 그려진 녹색 바탕은 기세와 운율이 충색되어 화가의 손이 춤을 추는 가운데, 정제된 금박의 표면이 충천(衝天)하는 기세의 모든 에너지를 차분하게 달래주고 있다. 끝으로 <Il Mare: Wave 10>은 수직이미지가 유달리 강조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높은 음가의 소리를 느끼게 해준다. 자줏빛의 하단부와 황금빛이 분리된 가운데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상승하는 일곱 개의 선은 두 개의 층위를 관통하고 있다. 그 느낌이 강렬하다 못해 스산하다.

 

 

IL MARE_Wave5_112x162cm_chinese ink, acrylic, silver&gold paper on canvas_2023

 

 

정묘년(427년) 구월, 날씨는 차고 어두운 긴 밤, 쓸쓸하고 스산한 바람만 불어온다.

 

여기서 도연명은 스산한 구월을 가리켜 거문고 음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음 무사(無射)로 표현하고 있다. 음력 구월은 우리로 치면 시월이고 스산하고 춥기 때문이다. 악기의 높은 음가의 소리에 빗대어 계절의 스산함을 표현했듯이, 정익현 작가는 일곱 개의 상승하는 선으로 스산한 분위기를 나타냈다.

모노크롬이나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들, 가령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6) ·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 ·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 어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 · 사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와 같은 작가들은 인문학의 귀재였다. 추상회화는 인문학에 물길을 대지 않으면 풍요를 수확할 수 없다. 정익현 작가 역시 대가들과 같은 방향으로 수맥을 댄다면 늦지 않게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진명, 큐레이터 · 미술비평 · 철학박사

 

 

IL MARE_Wave6_80x117cm_chinese ink, acrylic, silver paper on canvas_2023

 

 

작가노트

 

작품의 문을 통해서 보는 사물들은 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다. 외부의 세계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어둠속에서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며, 때로 그 창에 비친 다른 사물을 관찰할 수도 있다. 내가 펼친 모든 색의 향연은 오래된 트라우마를 풀어내는 몽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계를 표현할 준비를 하면서 편안함과 안락의 일상, 구태의연한 습관적 사고로 부터, 나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집중하였다. 그 소리는 심연이라는 새로운 테마가 되었고 우주로부터 나 자신의 내면으로 향해 있음을, 그리고 그 표현 방식으로서의 추상표현 이라는 미적문법을 통해 형상화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푸른색은 희망의 색이다. 희망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다. 푸른색으로 미래에 대한 창조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더 넓은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가감 없이 펼쳐진 금빛은 고난을 이겨낸 기쁨과 풍요를 표현하고 있다. 푸르름 위에 머문 면 위에 덧대어 경계와 구획을 만들고, 그 경계 너머로 황금빛 시선을 돌려 허무가 아닌, 무를 다시금 잉태하게 한다. 색과 추상이라는 메타언어를 통해 비로소 자아의 본질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다.

 

바다(IL-MARE)속에서 바라본 바다표면은 마냥 푸르지만은 않다. 빛의 투영이 만들어낸 그림자는 시선너머의 기억이고 내면에서 울리는 작은 목소리다. 표면위에 부딪힌 빛은 파도(Wave)의 골을 따라 잔영으로 기억을 타고 더듬는다. 이때 들리는 소리는 검은 어둠으로 빛을 막아서 형상을 창조하고 내 눈앞에서 명멸해간다.

 

간혹 심연에서 바라본 바다표면은 사물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으며 잊어버렸던 잔상을 현실로 불러온다. 먹과 금박으로 표면을 만든 형상은 기억의 반영이다. 그림 속에서 빛은 왜곡된 바다를 거쳐 빛의 프리즘으로 움직인다. ‘윤슬’을 물결위에서 바라보며 그저 형상은 빛의 잔영일 뿐이다. 깊은 심연에서 올려다 볼 때 비로소 빛이 가렸던 본연의 형상이 잔잔한 울림이 되어 작가와 관람자 사이에 존재한다.

심연이라는 주제의 연속작품 ‘IL MARE_Wave로 추상의 세계를, 색과 긴 호흡으로 캔버스라는 대지위에 단조롭지만은 않은 울림으로 담담히 펼쳐보았다. 찰나의 순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자신만의 별을 발견 했으면 좋겠다. 깊고 오묘한 공간적 에너지를 품은 푸른색과 황금색의 파동이 지친 당신에게 희망과 치유라는 새로운 기쁨이 되길 바란다.

 

 

IL MARE_Wave8_112x162cm_chinese ink, acrylic on canvas_2023

 

 

IL MARE_Wave9-1_258x194cm_chinese ink, acrylic, gold paper on canvas_2023

 

 

 

 

 
 

정익현 | 鄭益炫 | Jung Ik Hyun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 | 대구 예술대학교 한국화 전공

 

초대개인전 | 2022 "IL_MARE" Baecknyun gallery, Daegu | "Re:feel by Re:filling" G2 gallery, Ginza, Tokyo | 2020 深淵 (ABYSS), gallery TOMA, Daegu | 2019 Bodre Andmiro Gallery, Seoul | 2017 Debec VIP lounge gallery, Daegu | 2016 Lexus gallery, Daegu | France Paris B.Vhara, LE d' Art KFe 외 5회

 

단체전 | 2022 Seiko_kai 초대전 Tokyo Metropolitan Art Museum | Works of metaphor. Seokjae, soophia gallery, Gasan | 2021 "March", Daegu culture & arts center | Art&musical performance, itaewongil, Daegu | 2020  Artmuseum Daegu wish project | DCAA Clermont Ferrand Exposition , France | Fendemic&Daegu, Daegu culture & arts center | 2019 New York Art fair, Metropolitan, N.Y | Korea-Japan Exchange Exhibition, Korean Cultural Center, Tokyo 외 다수

 

수상 | 프랑스 평론가상 수상 (France Paris Special K-ART D'ASIE) | Bronzed Critic Award (2016 Sweden Special Invitation Exhibition) | 통일기원 작가초대 서울시장상 수상 외 다수

 

작품소장 | 렉서스코리아, MK전자, 대경영상의학과, (주)도일, 동산산업

 

현재 | 한국미술협회, 대구미술협회, 한국현대미술작가연합회, 대구가톨릭미술가협회 회원

 

Instagram | jih_stella

Homepage | www.jungikhyun.com

E-mail | a-stella@daum.net

 

 
 

*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30915-정익현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