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선 展

 

행간 속 의지

 

Wille NO.12_116.8x91.0cm_mixed media_2023

 

 

HWAN GALLERY

 

2023. 9. 11(월) ▶ 2023. 9. 26(화)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 26길 5 | T. 053-710-5998

 

 

Stanze NO.01_45.5x45.5cm_mixed media_2022

 

 

코로나 이후 대부분 시간을 혼자 실내에서 보냈다. 작업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혼자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지냈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다. 협회, 페어, 출판, 전시, 공모 등 제도들도 결국은 먹이사슬 속에 상품을 수집, 재처리, 재포장, 판매하는 자본주의 주변부 분류처리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게 되었다. 결국 주변의 제도와 권위의 신화를 믿고 기대는 자들 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고 신화에 도전하는 자들이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상화되고, 언어조작에 의해 가치가 전도되고 왜곡되는 사회, 방송과 SNS로 가짜행복을 선전하고 불필요한 경쟁과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득권의 노예로 전락해버린 승자독식 사회, 광고, 스팸공해와 양아치들의 주택사기에 숨 막히는 사회, 이런 신자유주의 지옥에서 예술의 존재 의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낙관과 성장이 안겨준 환상이 깨지면 사람들은 비로소 노예의 길을 인식하며 불안과 절망의 기나긴 시간을 해쳐 나가야 할 것이다. 내 작업이 이 긴긴 절망의 시간을 지나가야 할 많은 이들에게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세상을 관조하는 지혜를 상기시키고 절망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겠다.

 

 

Trace No.02_65.1x53.0_mixed media_2022

 

 

나는 주류 신문매체를 소재로 작품을 해오고 있다. 왜곡, 날조된 가치의 배설물에 불과한 신문들을 해체하고 정화시키고 변형시켜 현상 너머의 차원으로 내보내고 행간의 틈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흔적을 드러내고자 했다. 물론 감상자 스스로의 느낌과 해석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나는 지난 십년 간 작업을 통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었고 의지를 초월하고자 하는 이념을 제시하고 있었다. 작업을 하면서 항상 확인하는 것은 언어로 정리된 개념들이 작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상징이나 은유도 시각언어의 표현에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몇 년간 천착했던 한국적인 정체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아Q식 정신승리가 아닌 냉정한 자기절제와 적극적인 자기초월이 절실한 시대라고 본다.

나는 감상자들이 재료가 남긴 흔적을 관찰하고 선과 선 사이 행간을 들여다보며 직관에서 직접 이념에 육박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수직선, 수평선, 곡선 등을 통해 표현된 현상 너머의 차원은 끊임없이 운동하며 변화한다는 것을 관조할 수 있길 희망한다. 납작하고 평평해진 이 현상 세계에 저항하는 몸부림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길 희망한다. 그 속에서 초월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기를 희망한다.

 

 

Wille NO.03_72.7x60.6cm_mixed media_2023

 

 

Wille NO.05_90.9x72.7cm_mixed media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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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30911-최대선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