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 展
시들지 않는 선
unverwelkliche Linie
시들지 않는 선 2023_Acrylic on canvas_163x163cm
MUSE SSEUM GALLERY
2023. 6. 1(목) ▶ 2023. 6. 30(금)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서하천전로 213
http://musesseum.com
시들지 않는 선 2023_Acrylic on canvas_163x163cm
남겨지고, 그리고, 이어지고
깊은 새벽, 작가는 달빛에 의지한 검은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은 작업에 대한 갈등과 고민 속에 환기이기도 했다. 그 순간 한 척의 배가 어둠을 뚫고 지나갔다. 작가는 잔잔한 바다 위에 남겨진 일렁이는 파도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 날은 걷고 또 걸었다. 최근 이동이 잦았던 작가의 습관이기도 했지만, 넓은 하늘을 보기 위해서란다. 그러다 보면 계절 맞아 나고 자란 갈대가 시야에 들어오기도 했다. 무심결에 바라보는 것이 점점 고요한 침잠에 이르면, 결국 마지막까지 걸러진 내면의 목소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작가가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껏 본 것은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흔한 대상들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러 가는 배가 지나간 흔적에서나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디는 연약한 갈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남겨진 잔상은 지워지지 않고 새겨져 그가 연구하는 회화의 언어가 되었다. 비로소 ‘나의 작업’과 연결되는 지점이 그림으로 엮어졌다. 일상이 영감이 되고, 작품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 자체이다. 구태여 대상을 찾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것보다 작가의 시각과 손끝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작가가 선택한 것은 대상을 똑같이 그려 넣는 것이 아니라 조형요소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넓은 면들이 여러 층위를 만들거나 얇은 선들이 겹치면서 색을 그려 넣는 등 회화로 거듭났다. 여기서 필자는 여전히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존재’와 ‘위치’라는 키워드를 언급하고 싶다. 점, 선, 면, 색채 등 기본적인 조형요소가 작가적 감각으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재료적 ‘위치’가 대립, 비례, 조화 등 구도를 통해 캔버스 화면 위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역전된 시간 2023_Acrylic on canvas_91x73cm
전시명이자 출품작인 <시들지 않는 선>(2023)은 마찬가지로 시공간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다양한 구획과 지나가는 붓질, 대비되는 색감 등을 바라보자면 시선이 어느 한 곳에만 집중되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존재가 미술의 최소 단위로 연동되지만, 화면은 결코 가볍지 않다. <2개의 선>(2023)에서는 전체적으로 옅은 색이 감돌아 자칫 서정적 아우라에 몰입될 수도 있으나 찰나에 중간 부분의 노란 선이나 위의 파란 면이 주의를 돌리며 기시감마저 든다.
김경한 작가의 회화 연구는 오랜 시간 여러 해를 거치면서 진전되었다. 첫 전시에서 내비친 확고한 의지가 이어져 전시마다 새로운 성과를 내는 것이 매우 집요하면서도 놀랍다. 작가는 갈구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야멸차게 몰아붙이면서 매너리즘과 주관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전통적 매체들이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은 것을 반증하고 동시대 회화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특히나 이번 전시는 그동안 보여준 작품들이 추상화에 가까웠거나 구상이 첨가되기도 했던 장르적 접근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감상의 혼란을 일으킬 뿐, 작가가 제시하는 조형원리를 통해 활성화된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관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독립큐레이터 허금선
둘이 하나 되기 2023_Acrylic on canvas_91x73cm
해 밝은 밤 2023_Acrylic on canvas_91x73c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