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구엘 바르셀로 展

Miquel Barceló

 

그리자유: 빛의 연회장

 

작은 동물(La petite bête), 2021_캔버스에 혼합매체_235x235cm

 

 

타데우스 로팍 서울

 

2023. 3. 9(목) ▶ 2023. 4. 15(토)

서울특별시 용산구 독서당로 122-1 (한남동) | T.02-6949-1760

 

https://ropac.net

 

 

노란 정물화(Bodegón groc), 2021_캔버스에 혼합매체_190x240cm

 

 

송별 음악, 오늘날의 연회, 그리고 지난날의 연회들, 그 모든 것이 놓여진 하나의 긴 테이블.
- 미구엘 바르셀로

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오는 3월 9일부터 4월 15일까지 현대미술작가 미구엘 바르셀로(Miquel Barceló)의 개인전 ⟪그리자유: 빛의 연회장(Grisailles: Banquet of Light)⟫을 개최한다. 해양생물과 꽃, 그리고 뼈가 되어버린 생물들로 구성된 ‘연회’ 회화들은 작가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대형 정물화 연작으로, 중세 화가들이 사용했던 기법인 그리자유(grisaille)로부터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그리자유는 단색조의 색을 사용하여 그 명암과 농담(濃淡)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법을 일컫는 용어이다. 바르셀로는 단색조의 색채 위에 얇은 색조의 층위를 켜켜이 더함으로써 반투명한 화면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그리자유 회화 전통에 경의를 표한다. 본 전시는 일련의 연회 회화와 더불어 해양생물, 그리고 힘을 상징하는 황소 회화까지 아울러 선보이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스페인의 저명한 현대미술가로 꼽히는 미구엘 바르셀로에게 회화란 자신을 세상과 결부시키는 본능적인 방식이자 수단이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정물화를 다루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로 하여금 자신을 둘러싼 자연 속 대상과 시각적 요소들 특히, 그의 고향인 지중해 마요르카 섬 도처에 있는 해양 생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작업은 미술사에 관한 깊은 지식에 근거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연작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와 스페인 정물화(bodegón)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정물화라는 회화적 장르에 근간을 두면서도 바다와 자양물, 그리고 삶의 순환과 작가와의 관계성에 그 초점을 맞춤으로써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회화적 전통을 따르는 작가는 실물 크기의 테이블로 화면을 가로질러 구획하고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객을 연회장으로 초대한다. 이 별난 연회에 초대된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그의 삶과 풍요로움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바르셀로는 전통적인 그리자유 기법을 계승하되 단색조 배경에 반투명 유색 층위를 덧칠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구축했다. 이렇듯 옅고 느슨히 표현된 정물화는 캔버스 표면 위 자리한 빨간색,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의 얇은 아크릴과 잉크 레이어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작가 특유의 유려한 필치로 그려진 요소들은 자연과의 상호연결성을 떠올리게 할 뿐만 아니라, 무너질 듯한 환경에서도 모든 생명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구조적 역할을 한다는 지점에서 상호의존성을 환기하기도 한다. 작품 내 대상들은 꿈과 현실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하며, 마치 이들 중 하나라도 떨어지면 떠내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인다. 작가가 ‘폼페이에서 온 테이블 […] 또는 어떤 것들의 얼어붙은 재’라고 묘사하듯, 그의 작품은 마치 잔상과 같은 여운을 남긴다.
그의 작품에는 바니타스(vanitas) 장르를 연상시키는 상징적 요소들이 다분히 등장하는데, 이는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지나친 방종에 대한 경고로써 활용되었던 도상들이다. 칼과 해골, 그리고 책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상기이다. 이들은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꽃다발이나 과일이 담긴 그릇과 같은 식물적 요소와 대비되어 배치됨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고조된다. 연회 회화에는 뱀장어나 문어, 새우, 성게 등 작가가 거주하는 섬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해양 생물이 등장한다. 각 작품에서 쏟아져 나오는 얽히고 설킨 생명체들은 풍요의 희소성에 대한, 그리고 자연과의 깊은 연결성이 지니는 가치에 대한 작가의 언급이자 역설이다. 환경 운동가이자 지지자인 바르셀로는 관람객에게 테이블에서 무심코 만나는 보물들에 눈을 돌리고 또 그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를 장려한다.

 

 

달아나는 개를 그린 유색 회화(Quadro color de gos que fuig), 2022_

캔버스에 혼합매체_205x248cm

 

 

차려진 테이블 주위로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는 특유의 활기가 넘친다. 정물화란 본디 움직이지 않는, 생명이 없는 대상을 담은 회화인데, 바르셀로에게 정물화란 더이상 정적인 것이 아니다. 기존의 원칙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형식적 접근을 취하는 작가는 활력이 넘치고 동적인, 새로운 정물화를 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테이블 옆에 앉아 음식을 갈구하듯 바라보는 개의 모습이나 해양생물로 가득찬 와인의 바다처럼 끊임없이 너울거리는 붉은 배경 등 작품 곳곳에서 작가만의 고유한 예술적 어휘들이 나타난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굴 벽화에 매료되어 다양한 작품의 레퍼런스로 다뤄왔는데, 이러한 그의 천착은 일련의 황소 회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를 연상케 하는 황소는 테이블처럼 등을 길게 펴고 서있다. 마치 생동감 넘치는 만찬의 유쾌함과 시공간이 정지된 취약함 사이에 놓인 연회에 참여하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관람객을 응시한다.

바르셀로는 그림 그리는 행위를 캔버스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에 비유한다. 이러한 생명은 그리자유 회화의 섬세한 물질성과 함께 스며든다. 그가 묘사하듯 ‘먼지 나고 지글지글거리는’ 목탄은 캔버스 위에 얹혀진 선명한 안료들과 한 데 섞이며 어우러지기도 하고, 하얀 바탕의 바다 거품이나 이끼가 연상되는 두터운 질감으로 쌓이기도 한다. 존재는 부재와 균형을 이루고, 유색은 흑백과, 조화로움은 불안정성과, 풍요는 결핍과, 그리고 삶은 죽음과 그 균형을 맞춘다. 본 전시는 현대 사회에 가장 시급한 질문 중 하나인 쇠퇴와 회복에 관해 고찰해보기를 권유하며, 작가가 상정한 정지된 장으로 관람객들을 안내한다. 본 전시와 연계하여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의 에세이와 작가의 설명을 담은 도록이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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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30309-미구엘 바르셀로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