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 마리 길 위에 내려앉아展

A bird came down the walk

 

권자연 · 김유주 · 윤가림

 

 

 

공작새방

 

2022. 10. 20(목) ▶ 2022. 11. 26(토)

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길 1-14

 

www.studiogongok.com

 

 

공작새방의 세 번째 전시 〈새 한 마리 길 위에 내려앉아(A bird came down the walk)〉가 2022년 10월 20일부터 11월 26일까지 열린다. 김유주, 권자연, 윤가림이 모인 이번 전시에선,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에서 따온 제목처럼, 땅에 살포시 내려온 한 마리 새를 숨죽여 지켜보는 고요한 아름다움이 방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자연의 목가적인 이미지 뒤에 치열한 생존 본능이 존재하듯, 섬세하고 잔잔한 작품 뒤에는 작가들의 고민과 예민한 감각이 선연하게 살아 있다.

 

 

권자연 作_그의 산/ 여기 His Mountain/ Here_colored pencil on paper_56.5x38cm_2022

 


권자연의 〈그의 산/여기〉는 푸른색 드로잉 연작이다. 작고하신 아버지를 추억하고자 시작된 ‘그의 산’ 주제는 어린 시절 산에 올라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마치 세상을 가진 것만 같았다는 아버지의 산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자신 안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이런저런 현실을 잠시 뒤로하고 꿈을 꿀 수 있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었던 아버지의 산은 이제 ‘여기’ 작가의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들, 내가 밟는 땅에서 자라는 것들, 내가 보는 앞에서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들 또 변하지 않는 것들, 나를 나이게 하는 이 모든 것을 작가는 아련하고도 얼핏 불분명해 보이는 드로잉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눈에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깊숙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의 작품은 잊히고 가려졌던, 자취를 더듬기조차 어렵도록 바래진 기억과 경험을 오늘 이곳에 되살려낸다. 권자연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수학하였고, 이화여대 서양화과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았다.

 

 

김유주 作_기대 Expectation_porcelain, paper_80x63x8cm_2022

 

 

김유주는 마치 과학자가 정연한 순서에 맞춰 실험을 진행하듯 단계 하나하나를 찬찬히 밟아가며 재료의 물질적 특성을 탐구하는데, 그 결과는 따스하고 서정적이며 때로 우연적이기도 하다. 〈기대〉 시리즈는 흙물을 석고 형틀에 주입하여 성형하는 슬립 캐스팅 기법으로 제작된다. 달걀껍질처럼 얇고 속이 비어 바사삭 부서질 것만 같은 기물에 작가는 숨구멍을 내듯 반복적으로 작은 구멍들을 뚫는다. 극도의 조심성과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에 이어 험난한 재벌 소성을 거쳐 뽀얀 차돌 같은 반투명의 기물이 탄생한다. 재료에 내재한 물질적인 힘이 작용하도록 조력하는 소박한 마음과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담뿍한 작품이다. 〈홀드(Holed)〉는 손잡이가 달린 컵에 불로 타들어간 듯한 검은 구멍이 새겨진 연작으로, 바닥에 놓이기도 하고 컵이라는 기능에서 이탈되도록 벽에 나란히 걸리기도 한다. 작가는 자기가 만든 컵에서 지구의 북쪽 끝 라플란드 지역의 토착민인 사미족의 전통 목공예 컵인 ‘쿡사(kuksa)’를 떠올린다. 자작나무를 직접 고르고 깎아 평생 소중하게 사용한다는 쿡사에는 사용자의 기나긴 세월이 깃들기 마련이다. 검게 뚫린 구멍을 차분히 응시하다 보면 우리는 삶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상처 그리고 그것이 남긴 세월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김유주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에서 도자공예를 전공했다.

 

 

윤가림 作_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_embroidery on paper, gilded frame_66x39cm_2014

 

 

윤가림은 체험적 공감각과 상상으로 감각하는 세계, 닿을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이는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며 느끼는 스스로의 근원이나 본질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작가는 특히 촉각적 감각에 집중하며 관객과 접촉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자수 작업이 그 중요한 도구가 된다. 효용가치가 없어진 낡은 동물 백과사전, 오래된 꽃 일러스트, 의학도감 같은 기록물을 선택해 작가가 종이에 직접 자수를 놓는 방식이다. 시간을 촘촘하게 쌓아 올리는 자수란 과정을 통해 윤가림은 먼 과거에 삽화를 그렸던 또 다른 작가의 마음을 상상하며 마치 시공을 초월한 협업을 하듯 자신의 흔적을 더한다. 오래된 그림과 새로 놓인 자수가 만나면서 야기되는 시각적 긴장감과 낯선 촉각은 우리 각자의 해묵은 기억을 소환하고 신선하게 매만질 시간을 선사한다. 윤가림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각과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졸업 후 영국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조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즈넉한 가을날, 공작새방에서 선보이는 전시 〈새 한 마리 길 위에 내려앉아〉를 통해 오랜 세월 잊고 지낸 추억에 잠시 잠겨보는 즐거운 시간을 경험하시길 바란다.

 

 

 

 

 
 

 
 

*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21020-새 한 마리 길 위에 내려앉아(A bird came down the walk)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