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행은 展

 

불이 non-duality

 

 

 

갤러리 자작나무

 

2022. 3. 11(금) ▶ 2022. 3. 31(목)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간동 36번지 | T.02-733-7944

 

www.galleryjjnamu.com

 

 

빛의 숲에서 In the Forest of Light, Acrylic on Canvas, 160.2 x 130.3 cm, 2022

 

 

빛으로

'늙은 아이 - 경계인 - 나나 - 불이' 이야기
The Story of 'Old Child - Border Rider - Nana - Non Duality'


2010년부터 노인의 풍모를 풍기는 동시에 신생아의 특징을 지닌 '늙은 아이'라고 별명 지어준 인물을 그렸다. 당시 극단에 있는 현상과 두 가지의 상보적인 성격을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있었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그것을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라는 내 경험 밖에 있는 '생'을 벗어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 경계에 맞닿아 있는 신생아와 노인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어떤 특유의 '인물'을 꼭 표현해 보고 싶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담고 인류의 보편성이 드러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학생 시절부터 미술사에서 배우는 인물들의 다양한 표현에 매력을 느꼈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나는 왜 이런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왜 이런 인물의 모습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했고, 그리는 인물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내 그림을 유심히 관찰하고 느껴보았다. 2018년에 인물에게 '경계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걸쳐있으면서 동시에 경계를 허문 다는 의미였다. 작업을 하면서 두 가지 현상이나 두 가지 극단적인 관점으로부터 벗어나서 보다 자유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싶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고 구성을 해체시켜 해방감으로 향하고자 했다. 미술사를 종종 그림에 차용하기도 하는데, 학창 시절에 책으로 미술을 감상하고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공간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며 그것을 재해석해서 전통으로부터 배워 새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인물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과 인물 밖의 풍경과 오브제에 대한 연구와 작업도 계속해나갔다. 동시에 내가 그리는 인물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는 지속되었다. 2021년에 그 인물에 '나나'라는 세 번째 별명을 지어준 것은 내 작업의 중심에 '나'에 대한 화두가 늘 자리했고 나의 예술이 '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두 번 써서 강조해서 그 초심을 간직하고 싶었다. 나는 언젠가 '나'는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진 적이 있다. 내 몸도 정신도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의심)을 해보면서였다. 그때 아래와 같은 시를 남겼다.

 

 

빛의 정원에서 In the Garden of Light, Acrylic on Canvas, 160.2 x 130.3 cm

 

 

'나'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내 몸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내 정신'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나를 궁금해하는 '나'는 누구일까?

20대에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했던 때였다. '나'는 태어났고 언젠가 죽는 생명을 가진 존재였다. '죽음'이라는 현상은 나를 삶의 허무 속에 잠식시켰으나, 결국 나는 스스로 이 '삶'을 살아내기로 선택하였다. 도서관에서 방랑하던 과정에서 '장자'를 만났다. 그리고 '예술'이라는 것이 이 유한한 삶의 방식으로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예술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장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자유의 경지와 정신의 표현을 하고 싶었다. 예술이란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져 세상에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으로서 한 인간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놀라웠다. 나는 그동안 그림을 오래 그려왔고 좋아했기에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림은 말과 글이라는 언어의 장벽이 없이 이미지로 전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한 끝에 '나'라는 인간은 태어나고 죽는 존재이자 보이지 않는 어떤 신비로운 세계에 맞닿아 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넘어서, 결국 '나'라는 것이 '너'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학적으로 봐도 우리는 모두 원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별'이고 '구름'이고 '바다'였다. 내 몸과 이 세계는 순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라는 것이 처음부터 서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편리를 위한 인간의 창조적인 언어활동의 결과였다. 나, 너, 우리와 같은 것들은 인간이 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개념'적인 것이었다.

 

 

Little Rider, Acrylic on Canvas, 53 x 45.5 cm, 2022

 

 

그런 생각 끝에 내가 그리는 인물에 '불이 (non-duality, 不二)'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현실에 있는 두 가지 대립되는 현상들은 서로 상보적이고 상생하는 것이다. 두 가지 대립적이고 극단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사실은 하나로부터 피어난 것이고, 그것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그리는 인물의 표현에서도 '불이;둘이 아님'은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다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신생아에 관심을 가지고 그 특징들을 그림의 모티브로 가져왔던 것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허무'를 강한 긍정을 통해서 상쇄시키기 위함이었다. 사실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그리는 인물에게 붙여준 '늙은 아이, 경계인, 나나, 불이' 이 네 가지 별명은 동어반복이다. 작업을 하면서 드러나고 있는 무의식에 있는 것들을 알아채는 과정에서 붙여준 별명들이다.

나는 작업을 하면서 내면을 살펴보고 어루만진다. 내면에는 삶의 허무, 어둠, 불안, 억압이 있고 그것을 의지, 기쁨, 평화, 자유로 이끌었다. 이 마음은 빛과 같지 않을까. 과학적으로 '빛'은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고 한다.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빛'이다. 빛과 같은 마음은 한 가지 현상이 일어나면 다른 한가지 대립되는 현상으로 조화로운 상태를 이루려고 하는 것 같다. 이 세계와 나의 내면은 본래 '하나'이지만, 바람이 불어 어떤 것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다른 상보적인 것들로 채워지고 다시 '하나'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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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0311-하행은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