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자 展

 

 

 

갤러리 오모크

 

2022. 3. 4(금) ▶ 2022. 5. 3(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366, 2층 | T.054-971-8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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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과 결 - 질료의 시간성을 탐구하는 조형 실험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권기자는 이번 개인전의 주제를 '물감의 층리, 시간을 조형화하다'로 내세웠다. 여기서 '층리'란 "층층이(層) 쌓일 때 생기는 결(理)"을 의미하는 말로 주로 "퇴적물이 쌓여 굳어져서 지층이나 암석이 만들어질 때 나타나는 나란한 줄무늬"를 가리킨다. 그런 차원에서 '물감의 층리'라는 주제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성되어 가는 권기자의 조형 언어'를 함축적으로 해설하는 하나의 메타포로 작동한다. 그것이 무엇이고 실제의 조형 언어는 어떠한 것인가?

 

 

 

 

II. 선의 변주와 변용

작가 권기자의 작업에는 선(線)의 변주(變奏)와 변용(變容)이 자리한다. 최근작을 잉태케 한 <Untitled>(2000~2009)라는 제명의 '생성 시대 연작' 혹은 '우주 연작' 그리고 <Space Life>(2009~2011)라고 하는 제명의 '우주 연작'은 형식적 차원에서 0차원 점(선의 차원 응축), 1차원 선(선의 지속), 2차원 면(선의 차원 확장)이 상응하는 조형으로 분석할 만하다. 필자는 구체적으로 작품 <Untitled>를 점들의 향연으로, 작품 <Space Life>를 점, 선, 면의 비대칭적 조화(asymmetrical harmony)로 해설한다. 풀어 말해, 전자에서는 어두운 바탕면 위에 드리핑 기법을 통해 수많은 점을 우주의 별처럼 형상화하고, 후자에서는 선묘가 중첩된 추상적 화면 위에 유기적 형태의 면들과 두터운 점의 형상을 혼성함으로써 우주로부터 추출된 점, 선, 면의 하모니를 탐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Natural>(2011~2016)이라는 제명의 '자연 연작'에서도 그리고 최근작인 <Time accumulation>(2017~ )이라는 제명의 '시간 연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업에서도 이러한 '선의 변주와 변용'은 일관되게 드러난다. 전자에서는 캔버스의 한쪽 면에서 반대편으로 물감을 선형(線形)으로 흘려보내면서 그 이동과 정지의 흔적들을 명상하듯이 기록하고, 후자에서는 물감의 껍질들을 지속적으로 채집하고 중첩해 낸 결과물을 캔버스에 옮겨 층리를 선형으로 시각화한다. 달리 말해, 전자에서는 캔버스 위에 선들의 움직임을 쌓아 올리면서 화면 위 두툼한 마티에르를 강화하는 촉각적 회화로 '선의 변주'를 창출한다면, 후자에서는 물감의 표피들을 쌓아 올린 측면의 층리를 드러냄으로써 시간의 층이 가시화된 3차원 입체와 같은 촉각적 회화를 통해 '선의 변용'을 실험한다.

 

 

 

 

따라서 전자가 선들을 지속적으로 쌓아 올리는 '선의 변주'를 통해 과거의 선들을 현재의 선들로 뒤덮는 '은폐의 미학'을 실천한다면, 후자는 물감의 껍질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물감층을 절단해서 그 측면을 관객에게 드러냄으로써 '선의 변용'을 선보이고 과거의 존재를 현현(顯現)하게 만드는 '가시(可視)의 미학'을 실천한다고 하겠다.

작품 <Natural>은 선들로부터 출발한 은폐를, 작품 <Time accumulation>은 선들로 귀결되는 가시의 접점을 만드는데, 두 연작은 '선이 남기는 흔적'으로부터 기인한다. 0차원의 점이 차원을 확장한 1차원의 선이란 하나의 출발점으로부터 또 하나의 종결점을 '잇는 선'이기도 하지만 출발점으로부터 종결점을 향하여 '자라는 선'이기도 하다. 시간에 순응하며 우연에 의탁하면서 '자라는 선'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각인한다. 따라서 이러한 '흔적을 지닌 선'을 무수히 겹쳐 올린 작품 <Natural>은 '이전 선들의 흔적을 덮어 집단 매장한 무수한 선들의 주검'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권기자의 작업에서 이 주검들은 이내 예술의 생명을 잉태하면서, 생성 소멸하는 자연과 우주의 '순환적 세계관'을 실현한다. 어떻게?

 

 

 

 

III. 겹과 결 - 질료의 껍질이 남기는 시간 흔적

작가 권기자가 물감의 껍질을 자신의 신작 <Time accumulation>으로 끌어들인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작품 <Natural>의 제작 당시 물감을 캔버스의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중력에 순응하도록 흘러내리게 하는 작업을 하던 중 캔버스 끝에 매달리거나 바닥으로 떨어진 많은 양의 물감 찌꺼기를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고 그것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부터였기 때문이다.

물감이 중력에 따라 서서히 추락하면서 수분을 증발시키고 캔버스 위에 물감만 남긴 선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생명을 다하고 캔버스의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물감 찌꺼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완성 작품'에서 이탈한 무엇이거나 배제된 것 혹은 잔여(殘餘)와 잉여(剩餘)의 존재다. 프레임에 붙어 있는 것은 잘라 털어내고, 바닥에 추락한 것은 긁어내 버려야 할 존재다.

화가 권기자는 이 버려야 할 존재를 차마 버리지 못해 모아두었다가 그것을 작업에 견인할 주요한 소재로 삼기 시작했다. 색색의 물감의 찌꺼기들을 모아서 일련의 오브제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그 출발이었다. 이후 그녀는 이 잉여물들을 쌓아 보관하면서, 캔버스 안으로 끌어들이는 다양한 조형 실험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작업에 천착하게 되었다.

새로운 작품인 <Time accumulation>은 작업의 부산물로 발견했던 물감 찌꺼기를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부터 본격화되었다. 여러 용기 안쪽에 얇게 물감을 발라두고 그것이 마르면 떼어내어 무수한 '물감 껍질'을 만들어 틀 안에 차곡차곡 쌓아 두는 일은 새로운 작업을 위해서 붓과 물감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필수적인 준비 작업이 되었다. '물감 껍질'을 층층이 쌓아 마치 지층처럼 무수한 층리를 만든 후 그것을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 깔끔한 단면을 만드는 작업이 추가되었고, 그것을 캔버스나 캔버스 천을 씌운 패널 위에 낮은 부조 형식으로 올림으로써 단계별 제작 과정을 구체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집적의 과정으로 만들어낸 권기자의 '물감의 층리'는 '물감이라는 질료 자체'가 낳은 것이라는 점에서 '물감의 껍질들, 즉 질료의 껍질들'이 지닌 보편적인 의미를 전환한다. 즉 폐기로부터 보존으로, 잉여의 것으로부터 충만의 것으로, 선의 변주로부터 선의 변용으로, 시각적 회화로부터 촉각적 회화로 그리고 은폐의 미학으로부터 가시의 미학으로 전환된다.

 

 

 

 

작품 <Natural>이나 작품 <Time accumulation>의 연작이 공유하는 지점은 '공간에 대한 시간성 투여'에 관한 것이다. 두 연작이 드러내는 '비가역성(非可逆性)'의 시간은 현실계 속 인간의 실존적 인식을 은유한다. 즉 '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변화 이전의 상태의 돌아가지 않는 성질'이라는 비가역성이란 두 연작에서 물감 선과 질료의 중첩이 만든 시간의 집적을 가시화하면서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리지 못하는 인생'이라는 실존적 인간관에 대한 유효한 메타포로 기능한다.

 

<Time accumulation>의 연작에서 '공간에 대한 시간성 투여'라고 하는 이러한 속성은 '물감 껍질의 집적'으로 가능해진 '겹(layer)'과 '결(grain)'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겹은 "물체의 면과 면 또는 선과 선이 포개진 상태"를 의미한다. 권기자의 작품에서 '겹'은 '물감 껍질들이 집적되어 층을 이룬 상태 자체'를 지칭하고, '결'은 '바탕이나 상태'를 의미하는데, 대개 '규칙적이고 정형적인 상태', 구체적으로 '겹이 만든 가시적인 요철(凹凸)의 공간의 일련의 평정 상태'를 지칭한다. '결'의 경우, 요(고랑, 골)와 철(이랑, 마루)이 연접하는 대비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평정 상태는 매우 거칠다. 예를 들어 골과 마루의 간극이 큰 '거친 물결'과 그 간극이 작은 '잔잔한 물결'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따라서 '겹'은 '결'을 만드는 전제 조건이 되고, '결'은 '겹의 상태'가 낳은 결과가 된다.

<Time accumulation> 연작에서 겹과 결의 공간 안팎에는 시간성이 투여된다. 물감 껍질들이 포개진 '겹'의 물감층들이 평평해진 '결'의 평정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또한 눅눅했던 물감의 수분을 빼앗고 바스러질 정도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도 시간의 흐름이 요청된다. 작품 <Natural> 연작에서 낙하하는 물감이 선을 만들면서 시간이 투여하듯이, <Time accumulation>의 연작에서 '질료의 흔적'을 다양하게 변용하는 동인(動因)은 시간성이다. 따라서 권기자의 작업에서, 질료의 껍질이 남기는 흔적은 가히 시간으로부터 왔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IV. 에필로그

작가 권기자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흘려 만들어진 질료의 층들을 집적해서 시간을 시각화하고 조형한다. <Natural> 연작에서는 중력에 따라 흐르는 물감이 만드는 선형의 흔적을 축적하여 시간이 낳은 모노크롬을 실험한다. 즉 앵포르멜(Informel)의 질료적 효과를 계승하고, 시각적으로는 '후기 회화적 추상(Post-Painterly Abstraction)'의 21세기적 변용을 실험한다.

또한 <Time accumulation> 연작에서는 물감의 껍질을 축적하여 '물감의 층리'로 대별되는 '시간이 낳은 겹과 결의 미학'을 탐구한다. 특히 <Time accumulation> 연작에서는 물감의 껍질을 껍질 자체로 남겨 두지 않고 '겹과 결을 이루는 신체성'을 만들어 냄으로써 질료의 표피 이미지를 뚫고 '질료의 미학 심층'으로 깊이 잠입한다. 때로는 물감 찌꺼기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그 입체의 단면을 잘라 '만들어진 오브제'처럼 제시함으로써 잉여물의 예술 작품화를 실험하기도 한다. '물감의 껍질들'은 때로는 색색의 조합을 통해서 전체 화면을 점유, 장악하거나 때로는 일부만 잘려 캔버스나 패널 안에 '주목받는 부분'으로 자리하면서 겹과 결이라는 선의 변주와 질료의 변용을 감행한다.

작가 권기자의 최근작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권기자의 조형 실험은 형식적으로는 분명 질료와 물성에 관한 것이지만, 언제나 시간성과 접목한다는 점에서 내용의 차원에서는 희로애락 혹은 생로병사와 같은 인간 삶에 대한 농밀한 메타포로 자리한다는 것 말이다.

 

 

 

 

 
 

권기자

 

영남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 30회 (미국 LA, 미국 Scattsdale, 프랑스 Paris, 서울, 대구, 아산, 울산 등) | 2022 오모크갤러리 기획전시 개인전 (한국, 대구) | 2021 금호미술관 개인전 (한국, 서울) | 2020 제이원 갤러리 기획 초대전 (한국, 대구) | 2019 아산갤러리 기획 초대전 (한국, 아산) | 2018 Moon101갤러리 권기자 초대전 (한국, 대구) | 금보성 아트센터 공모선정 초대작가전 (한국, 서울) | paris 89갤러리 권기자 초대전 (프랑스, paris) | 2017 수성아트피아 권기자 개인전 (한국, 대구) | 2016 아산갤러리 10주년 기획초대전 (한국, 아산) | 2015 파크에비뉴 갤러리 기획초대전 (미국, LA) | Wee Gallery 기획초대전 (미국, Scattsdale) | 2012 J-one 갤러리 초대전 (한국, 대구) | 갤러리H 초대전 (한국, 울산) | 2009 인사동 물파 아트스페이스 초대전 (한국, 서울) | 2007 쁘라도 갤러리 권기자 개인전 (한국, 대구) | 2003 하정웅 청년작가 '빛' 초대전 (한국, 광주) | 2002 권기자 개인전 (한국, 대구문화예술회관 8,9,10)

 

아트페어 | 2021 한국 국제아트페어 'KIAF' (서울, 코엑스 2003~2021) | 부산 아트쇼 (부산, 벡스코 2012~2021) | 화랑 미술제 (서울, 코엑스 2003~2021) | 2016 두바이 국제아트페어 (두바이, 두바이몰 2015,2016) | 2015 퀼른 국제아트페어21 (독일, 퀼른 2012~2016) | 2013 스콥 국제아트페어 (미국, 뉴욕) | 오사카 국제아트페어 (일본, 오사카) | 2012 베이징 국제아트엑스포 (중국, 베이징, 컨벤션센터) | 2010 마이애미 국제아트페어 (미국, 마이애미) | 2007 상하이 국제아트페어 (중국, 상하이) | 2006 시카고 국제아트페어 (미국, 시카고) 외 70여회

 

단체전 | 2019 김해 국제 비엔날래 (김해, 윤슬미술관) | 몽골 국제 교류전 (대구, 수성아트피아) | 세인갤러리 기업프로모션 (서울, 세인갤러리) | 벨기에 교류전 (벨기에, 브리쉘 아트센터) | 한중 국제 미술교류전 (중국, 웨이하이시 유곤미술관) | 2018 브리쉘의 '디 마르젠' ENCC 교류전 (벨기에, 브리쉘 아트센터) | WAK 2018전 (벨기에, 레오폴스버그 문화센터) | 2017 대구 미술협회 초대작가전 (대구, 문화예술회관) | 2016 리더스 클리닉 도하전 (카타르, 도하) | 아산갤러리 천안분관 오픈기념전 (천안, 아산갤러리) | 2015 카타르 한국대사관 국경일 행사 (카타르, 도하) | Blowing Flags San Bernardino (미국,San Bernardino) | 2010 하정웅 작가 초대전 10주년 기념 특별전 (광주, 시립미술관) | 2004 '상' 갤러리 평론가기획 4인전 (서울, '상'갤러리) | 한국현대미술작가 설립 III 출간기념전 (서울, 가나아트센터) | 2003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 '빛2003'(광주, 시립미술관) | 문예진흥기금 지원 대안공간 space129 작가발굴전 (대구, space129) | 대구 미술 초대작가전 외 300여회 출품

 

수상 및 선정 | 2019 김해 국제 비엔날래 우수작가상 | 2018 금보성 아트센터 공모선정 초대작가 | 벨기에 ENCC 레지던시 선정 | 2005 서울 문예진흥원 지원작가 발굴 기획선정 | 2003 하정웅 청년작가 '빛' 2003 전시선정 | 2002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외 다수 입상

 

작품소장 | 대구 미술관 | 제주시청 | 카타르 한국 대사관 | 카톨릭 병원 | 매일신문사 | 경제인연합회 | 카타르 리더스 클리닉

 

현재 |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 대구 미술대전 초대작가 | 대구 현대 미술가협회 회원

 

E-mail | art187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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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0304-권기자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