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 展

 

Land(e)scape

 

 

 

갤러리 도스

 

2022. 2. 9(수) ▶ 2022. 2. 15(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 T.02-737-4678

 

http://www.gallerydos.com

 

 

A Place where the seasons are meaningless_oil on canvas_106x46cm_2021

 

 

가장 유토피아적인 풍경화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혜린

 

19세기의 파리를 노래한 시인 보들레르는 그의 온 생으로 파리를 몸소 겪어냈다. 파리에서 태어나 홀어머니와 지낸 2년간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늘 그곳에 머무르면서 근대 도시의 표상인 파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면화했던 것이다. 보들레르가 살아갔던 당대의 파리는 초기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대도시였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하고 세찬 물살을 타고 급속도로 변화하는 파리의 곳곳에는 병존하고 뒤섞이는 여러 삶의 층위들이 불러일으키는 불협화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자본주의에 따른 근대화를 기조로 하는 이 격동은 낭만과 황홀을 수반하는 듯했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과 우울 그리고 권태를 내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속적인 화려함이 들어서고 점차 바뀌어 가는 파리의 풍경에는 변모라는 임시성과 일시성에 대한 불안 또한 잠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조정은의 눈에 비치는 서울도 이와 비슷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게 서울은 항상 변화하는 공간으로 다가왔고 이 가변적인 성질에 의해 유발되는 감정들은 작가의 내면에 회화적 풍경을 구축하는 시작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작가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감각하게 되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화려함을 통해 찰나의 강렬한 행복감을 충족시켰지만 그 번화함의 이면에 자리한 일시성과 임시성, 가변성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불안과 우울을 느끼게 한 공간이 되었다. 이에 작가는 잠시나마 불안을 해소하고자 자연을 찾아 떠나기도 했다. 도피일 수도 있었고 모험일 수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내내 머무르던 공간보다도 더 나은 곳, 지금보다 더 나은 멋진 신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고 유토피아를 원하고 위하려는 일종의 구애와도 같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완전하게 안락하고 행복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갈망하며 구애했으나 불가능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뿐이었다. 인간이 자연적 공간을 만끽하며 그것의 숭고함에 의한 기쁨과 쾌감,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는 없으나 오래 전 문학가 이상이 예견했듯 자연 속에서 인간은 권태라는 것과 멀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 공간은 현실과 동떨어졌기에 피로하고 지루했으며 역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작가가 얻은 결론은 완벽한 유토피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모든 가정은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문장처럼 모든 가정은 몇 가지씩의 문제를 지니고 있기에 우리는 가정이라는 단어 앞에 행복하다는 수식어를 붙인다. 가정은 행복하면 좋은 것이지 반드시 행복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듯이 유토피아는 이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상적으로 묘사되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토피아로서, 인간의 이상으로서 제 가치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조정은은 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 즉 가상의 공간을 캔버스로 옮긴다. 선명하고 밝은 색채의 사용은 환상적이고도 이상적인 풍경과 하나의 세계를 형성함으로써 우리를 순식간에 행복감에 젖어들게 만들지만 점차 실재하는 환상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조건에 대한 모순을 깨달으며 이상향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나아가 작가는 자신의 심리적 배경이 되는 대도시 서울과의 대면을 망설이지 않기로 한다. 이는 화면 안에서 사용빈도가 높은 형광색이 간판과 네온사인이 꺼지지 않는 도시만의 색으로 상정되고, 임의로 설정된 다양한 시점의 공간들의 재구성이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재건축과 같은 도시의 변모로 은유된다는 데에 있다.

 

 

Back then_Oil on Canvas_116.7x116.7cm_2020

 

 

시인 보들레르는 우리에게 낭만과 퇴폐가 공존하는 파리를 보여준다. 도시의 호화로움 그 내부에는 반드시 피폐함이 침전되어 있음을 통찰한 그는 우울하고 공허했으나 도시를 떠나지는 않았다. 우울과 공허는 보들레르에게 도시에 대한 갈망과 해소를 통한 예술혼을 이식해 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자신만의 황홀한 우울로 파리라는 도시를 사랑하며 그곳의 풍경을 내재화했고 마침내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창작했다.

조정은의 작품은 이상적 공간을 찾아 떠난 도시 탈출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작품의 양상은 도시적 배경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하거나 분리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전시의 제목인 Land(e)scape가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일차적으로 본다면 도시풍경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함으로써 완전한 공백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 괄호( )라는 유토피아적 공간의 발견과 이를 통한 불안 해소에 대한 희망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괄호 안에는 e라는 도시 탈출의 흔적이 남고 창작의 시작점이 도시적 풍경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점에서 도시를 진정으로 떠날 수는 없음을 즉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것이므로 이상일 수밖에 없는 이상으로서의 이상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보들레르처럼 자신이 나고 자란 서울이라는 도시의 잔상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만큼 도시풍경을 내재화하고 온전한 작품세계로 승화하는 방법을 고민해 봄으로써,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불안을 해소하고 잠재울 수 있는 치유법으로 회화라는 매체를 접목하고 있는 것이다.

 

 

Honey, a lovely place isn’t it_oil on Canvas_53x45.5cm_2020

 

 

The smoke between summer and autumn_oil on canvas_24x30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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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0209-조정은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