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영 展

 

 

 

갤러리 이즈

 

2022. 2. 2(수) ▶ 2022. 2. 8(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52-1 | T.02-736-6669

 

www.galleryis.com

 

 

 

 

먹꽃 드로잉, “꽃이다.”

작가에게 한국미란 자연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낸 ‘시공간의 여백’을 의미한다.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필획,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꽃과 자아의 현재적 대화, 전통을 배우지 않았다면 담아내지 못했을 아름드리 의미들이 형식과 더불어 빛나는 까닭은 순수한 동기로 빠져든 ‘먹꽃을 향한 순수열정’ 때문일 것이다. 김아영 개인전 《먹꽃 드로잉, 꽃이다》 (2022. 2.2~8, 인사동 갤러리 이즈)는 작가의 10번째 개인전이자 전통과 현대를 아울러 읽을 수 있는 한국미감의 현재성을 다시금 재고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선이론 후작업, 한국미를 통해 ‘먹드로잉’과 만나다.

먹꽃 드로잉은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다. 말 그대로 ‘먹으로 그린 꽃’을 서구의 드로잉 개념과 결합하여 ‘전통’을 단순히 과거의 것으로 읽기보다, 현대화된 작가정신 속에서 세련되게 재해석한 것이다. 김아영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미술대학에서 그림을 배우지 않고 한국미술사를 먼저 공부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덕성여대 미술사전공에서 박은순 교수에게 한국미술사를 사사하고,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 전공에서 홍선표 교수의 지도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사군자화 연구 : 난(蘭)·죽(竹)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해방이후 국전(國展)시대의 사군자화(四君子畵)는 서예와 동일시된 회화입문 과정이었으나, 근대교육이 서화에서 미술로 전이된 까닭에 봉건시대의 유물로 치부되었다. 작가는 본인의 연구서에서 “서예와 동일시됨에 따라 정체성을 잃고 그 가치가 폄하”된 사군자화는 “국전에서도 미술이냐, 아니냐를 놓고 끊임없이 논란이 일었고, ‘미술’의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작가가 선(先)학문 이후, 자신의 화폭에서 살려낸 것은 사군자화가 아닌 ‘현대적 미감’을 품은 ‘봄꽃’이었다. 한국미술사를 공부하며 ‘한국적 아름다움’에 푹 빠진 작가는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 1912~2005)을 사사한 조문희 선생의 화실에서 5년간 전통적인 도제방식으로 먹드로잉을 체화시켜 나간다. 작가는 오늘날 미술대학에서 도외시하는 수묵드로잉의 방식을 도제식 아카데미즘을 통해 연마한 셈이다. 먹에 꽂힌, 먹꽃을 드로잉 하는 김아영 작가는 말 그대로 사군자화의 모티브를 오늘에 맞게 변주한 ‘감각적 꽃’에 매료된 것이다.

 

 

 

 

여백과 대상에 집중한 ‘실존적 꽃의 생동감’

작가가 처음 붓을 잡은 것은 대학원 1학기 때인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개인전이 있기까지 이론과 실기를 5년간 병행한 이유는 ‘득지심응지수(得之心應之手)’ 때문이다. 마음에서 이루어진 바가 손에서 저절로 움직인다는 뜻으로 중국 오대(五代)의 형호(荊浩, 10세기 전반)가 《필법기(筆法記)》에서 한 얘기다. 작가가 대상을 대하는 태도는 대상에 깃든 성정을 마음 안에 이룬 이후에 손이 답하여 표현하는 방식인데, 이는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이 화산수법(畫山水法)에서 언급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작가는 현대작가답게 ‘득지문응지수(得之文應之手)’를 추구한다. 한국미감을 ‘학문’으로 공부한 이후에, 손의 방식들을 배워냈다는 뜻이다. 내실이 없는 자질구레한 외형에서 벗어나, 정신과 기교가 융화를 이룬 상태인 이 언어들은 모두 장자의 시각에서 해석된 것이다. 전통 사군자화보다 추상적이고 깨끗한 붓질에 감동을 받은 김아영 작가는 난치는 법부터 시작하여 사군자화가 손에 익을 때까지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작품 안에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게 된 이후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한해도 빠지지 않고 새로운 미감들을 얹어냈다. 울산인 고향과 가까운 경주를 찾은 작가는 흐드러진 벚꽃이 세상을 아름드리 눈꽃으로 수놓는 것을 보고 자연과 어우러진 꽃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첫 개인전 《너는 벚꽃으로 온다. 나는 화안한 꽃속이다.》 라는 전시 제목은 앞서 설명한 미감을 현실감 있게 반영한다.

김아영 작가는 붓질과 흐늘흐늘한 모필의 느낌을 통해 한국미에 빠져들었다. “한국미란 깨끗함이다. 깨끗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백과 획의 발견에서 온다. 한국미가 아름답다는 사유는 그 자체로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작가 인터뷰 중에서

 

 

 

 

‘먹꽃’이 ‘드로잉’과 만났을 때

작가는 네 번째 전시부터 ‘드로잉’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왜 드로잉인가? 김아영은 “모더니즘의 경향 속에서 예술이 창조성·개성·자아표현과 만났다.”고 설명한다. 먹드로잉은 동양적 붓질이자 한국작가로서의 시선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담백한 직관이라는 것이다. 자연을 채집하고 포착한 꽃그림의 단면들은 벚꽃·살구나무·앵두나무·산수유·박태기나무·진달래·철쭉·수선화 등 다양한 대상으로 표현된다. 작가에게 꽃은 의인화된 대상이자 작가감성 그 자체이다. 김아영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조금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혼자 동네에서 앉아서 제비꽃·민들레 등을 갖고 노는 놀이를 많이 했다. 그들은 가장 친한 벗이자 친구였다. 그래선지 봄마다 찾아오는 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 이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고 싶다.”
곱고 화사한 벚꽃, 귀엽고 앙증맞은 살구나무와 앵두나무, 샛노란 색감의 산수유, 깨끗한 매화, 곱디고운 진달래, 화려한 정취의 박태기 나무, 미인 같은 철쭉과 단아하고 고운 수선화 등, 작가에겐 이들 꽃과의 만남은 오랜 친구와의 교유처럼 늘 설레는 과정이다. 봄이 되면 유명한 지역이나 꽃이 피는 지역을 찾아서 수차례 직관하고 사진으로 순간을 채집하여 그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초기에는 바탕에 파란 하늘을 칠했지만, 4회 개인전 이후 작품을 ‘드로잉’이라고 명명하면서 바탕색을 없애고 낮과 밤만을 구분하여 꽃 자체에 몰입했다. 작가는 구도에 있어서도 탁월함을 보여준다. 채집된 자연물을 직접 자르고 콜라주화 시킨 후, 화면에서 개념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번 10번째 개인전에서는 앞선 개념을 진일보시켜 흐드러진 낮과 밤의 ‘수양벚꽃’을 선보인다. 자개를 붙인 신작커미션은 나전칠기를 연상시킨다. 전통자수와 규방공예 등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작가는 현실적 관심 속에 ‘좀 더 한국적인 시각’을 도입하고자 했다. 한국만의 독창적인 문화재인 ‘상감청자’와 같이, 김아영은 밤과 낮의 수양버들 위에 실재 ‘자개’를 더해 세련된 한국미를 찾고자 한 것이다. ‘자개콜라주’는 오랜 시간 한국미를 연구하고 체득한 모던한 작가해석의 결과이다. 작가는 그리는 시간을 “매번 좋고 설레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김아영의 먹꽃 드로잉은 작가가 채득한 자연과의 교유를 진정성 있게 그려낸 ‘사랑스런 그림’이다. 실제로 작품은 작가의 수줍고도 단아한 인성과 많이 닮았다. 우리 역시 김아영 작가의 먹꽃 드로잉을 통해 작지만 단아하게 빛나는 자아를 발견하지 않을까.

 

안 현 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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