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展

 

 

 

갤러리 이즈

 

2021. 11. 17(수) ▶ 2021. 11. 23(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52-1 | T.02-736-6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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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풍(西風)이 본 것 -

바람이 분다. 하늘과 땅 사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모호하다.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 너머에서 무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사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보이지 않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무릇 창작행위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창작한다는 것은 삶 그 자체이자 외부세계와의 연관성을 찾는 일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들은 창작행위를 통해 외부세계와 소통하며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려고 시도한다.

김정희의 작품세계는 바로 이러한 인간과 외부세계에 대한 사색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생성과 소멸의 반복 과정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속성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우리의 삶을 관조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이미지만으로 표현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독특한 자신만의 몸짓과 조형어법으로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형성된 그리드(Grid) 형식은 작품의 근간이 된다. 평면에 수직과 수평을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색층을 쌓아나가는 가운데 새로운 공간이 생성되고 있다. 이렇게 색과 색 사이에, 행위와 행위의 사이에 생성된 공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통로다. 그것은 김정희가 빚어낸 치밀하고도 아름다운 조형미와 무수히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다. 필연과 우연이 어우러진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이렇게 생성과 소멸의 순환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와 그 흔적들에 의해 우리는 시간과 감각의 지층을 감지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 기억 속에서 떠도는 이미지 위에 새로운 기억이 스며들면서 또 다른 이미지가 쌓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미지들은 지금 바로 이 순간과 이미 지나간 시간 속의 기억은 물론 미래에 대한 상상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거기에는 불확실성 속에서 충돌하고 있는 내면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미지들은 내면 저 깊은 곳의 빛이자 그림자다. 감추고자 노력하지만 완전하게 감추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을 경험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그는 지금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려는 듯 영롱하게 아로새기고 있다. 그것은 살아 숨 쉬는 나이프의 감각적인 리듬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색층을 의도적으로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즉흥성, 우연성으로 인해 내면을 끌어내고 있으며 나이프에 의해 생성되는 리듬감은 그것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그렇게 서로 중첩하는 가운데 변형에 변형을 거듭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체험하게 한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우리 인생은 필연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운명적인 조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예기치 못한 우연에 의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그렇듯이 그의 화면 또한 필연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강렬한 원색들이 부유하고 있지만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에 의해 마치 꿈길을 여행하는 것과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그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즉흥성, 우연성을 바탕으로 또 다른 세계를,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감각적인 리듬으로 색층을 쌓아가며 그 사이사이에 자신만의 작은 소우주를 그렸다. 다채로운 색감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 고요하지만 역동적인 바람을 그렸다. 그것은 ‘서풍(西風)이 본 것’이다. 그 서풍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하다.

그는 색채와 이미지의 결합에 관심을 가지고 인상파에 주목했다고 한다. 특히 시각과 청각의 조화에 관심을 가지고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에 주목하며 전주곡의 제목 중 일부를 자신의 작품 제목으로 사용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서풍은 광포함에 내재해 있는 애처로움, 무질서 안에 내재해 있는 질서, 역동성 안에 내재해 있는 고요함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서풍이 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비록 우리가 유한한 생명체로서 존재하지만 무한하고 영속적인 자연의 섭리를 따르기를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는 순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기억의 편린들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투명한 명상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를 갈망하는 작가와 마주해야 한다. 그 만남을 통해 현실적 체험과 명상의 투영이 하나가 되는 세계를 경험해보자. 영원불멸이 꿈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빚어낸 세상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독립적 존재임을 꿈꾸어 보자.

 

이도규 相孝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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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11117-김정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