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최진희 展

 

This Is My Story

This Is My Song

 

광야에 서다 Standing In The Wilderness dimensions vary_fused, slumped, kiln cast glass_2021

 

 

 

2021. 9. 30(목) ▶ 2021. 10. 10(일)

정기휴관 | 2021. 10. 4(월) | 운영시간 | AM 10:00 - PM 6:00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8 | T.02-720-5114

 

www.kumhomuseum.com

 

 

광야에 서다 Standing In The Wilderness_32x32cm_fused, slumped, kiln cast glass_2021

 

 

최진희, '광야의 인간'과 '초월의 신호'

 

빛의 통과

최진희의 작품은 크게 인체와 풍경으로 나누어진다. 인체 작품에서 는 빈들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풍경 작품에서는 물가의 나무와 새벽공기를 머금은 풀과 초롱초롱한 물방울, 또는 어스레한 저녁녘의 들판이 등장한다. 그의 작업은 큰 틀에서 본다면 인체에 대한 관심과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묶어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이렇 게 모티브를 달리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그의 작품 이해에 있어 그가 사용하는 재료에 대한 약간의 언급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작품들에는 공통적으로 유리가 사용되는데 유리를 가마에서 소성하거나 조각품처럼 형상이 필요한 경우 석고로 몰드를 만들어 성형하기도 한다. 그가 이렇게 유리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인 데는 나름의 계기가 있다. 작가는 한때 건조한 열사(熱砂) 의 지역에 머문 적이 있는데 낮에는 해가 뜨겁게 내리쬐다가도 온도가 내려가는 새벽이 되면 축 쳐져 있던 풀잎들에 이슬이 맺혀 활기를 띤 것을 보고 투명한 '유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착안한 유리가 이제는 최진희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재료가 되었다.

"유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유리가 빛을 품고 있는 것 같지만 빛을 통과시키는 통로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빛을 통해 대상은 더욱 분명한 존재감을 갖는다."(작가노트)

그의 모든 이미지들은 모두 유리를 통과하도록, 다시 말해 빛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이슬에 맺힌 물방울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것이 이제는 인간과 사물을 통과시키고 비추는 의미를 갖게 된 셈이다.

 

 

광야에 서다 Standing In The Wilderness_43.5x50cm_enameled, kiln cast glass_2019

 

 

숲 이야기

나무와 숲을 테마로 한 <바람에 눕다>와 <숲의 선물>을 보면 연한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나타내거나 맑은 햇살 아래 군락 을 이룬 숲의 정경이 고개를 내민다. 두 점 모두 자연을 테마로 하고 있으나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바람에 눕다>는 보이지 않는 리듬에 맞추어 사는 모습을 다루었다. <숲의 선물>은 펜데믹의 상황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을 매개로 치유와 회복을 환기시켜 주는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빛 바라기>는 '워킹딥'(working deep) 기법을 이용 하여 여러 장의 유리에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입혀 화면에 공간감을 주고 있다. 유리 너머로 나무들이 빛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리 사이에 나무토막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해변에서 오랜 기간 바닷물 에 절여지고 햇볕에 그을린, 즉 인고의 시간을 견디어낸 인간의 삶을 암시한다. 유리 안의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라 빛을 향하는 존재로 재탄생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어둡고 침침한 환경 속에서도 빛이 있는 한, 그 빛을 향해 나무들은 가지를 뻗으며 자라난다"고 밝힌 바 있다. '생명의 빛'이 괴로운 시절을 이겨내는 치료제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치유와 회복의 강조는 특히 <마라의 쓴 물이 달게 되다>에서 두드러진다. '마라의 쓴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 광야 생활을 하면서 겪은 위기, 즉 마라 지역에 이르러 마실 수 없는 물을 보고 실망에 빠졌을 때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여호와가 쓴 물을 단 물로 바꿔준 사건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우리가 절망의 자포자기에 빠졌을 때 이를 구원할 수 있는 경이롭고 놀라운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몇 개의 유리판을 주위에 배치함으로써 이곳이 연 못임을 암시하고 있고, 각 유리판에 크고 작은 나뭇가지를 통해 과거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났던 사건이 현재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광야에 서다 Standing In The Wilderness_32x36.5cm_enameled, kiln cast glass_2019

 

 

광야에 선 인간

인체를 테마로 한 작품으로는 <광야에 서다>와 <생기를 불어넣다> 를 손꼽을 수 있다. 각 유리판에는 인체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그 것은 흙으로 인체 형상을 만들고 석고로 몰드를 뜬 다음 소성과정을 거쳐 캐스팅하여 사람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유리판 위에 올려놓고 퓨징 작업으로 얻어낸 결과이다. 이것은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주제, 즉 '광야의 삶'을 형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광야'는 무엇을 가리키고 또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을까?

'광야'란 말 그대로 사막지대요 불모의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것은 시련과 역경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루살렘 동쪽을 벗어나면 유대광야를 만날 수 있는데 그곳은 1년 강수량이 10-30mm 뿐이어서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척박한 땅이다. 이곳을 방문했던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in)은 광야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양떼를 보고 "이 곳 양들은 돌멩이를 먹고 산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메마른 사막에서도 무엇인가 먹이를 찾아 나서는 양떼의 모습이 마치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돌멩이들을 먹고 사는 것처럼 느꼈던 모양이다. 광야란 인간의 의지로는 살 수 없는 곳, 따라서 절대자의 도움이 요청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인간의 능력은 바닥을 드러내며 그 위기의 끝자락에 서본 사람이라면 외부의 도움을 절실히 구하게 된다. <광야에 서다>는 작가가 과거에 겪은 일에 기초한 것으로 그 안에 작가의 진심이 아로새겨져 있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 내 생각이나 계획과 전혀 다른 시간의 전개와 흐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이 닥쳐온 환란-- 내겐 광야와도 같았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던 광야에서 주저앉아 두 다리를 뻗고 통곡하고 있을 때 더 이상의 길도 보이지 않고 지쳐 있었을 그 때에 나는 그 곳이 광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노트)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우리의 한계를 경험하는 지점이 바로 광야의 순간임을 느끼게 된다.

혹시 어떤 사람은 예술이 그렇게 인생의 심각한 문제까지 다룰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인간에게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는 근본적이다.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는 "의미는 사치품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살아있게 하는 영적 산소와 같은 것이다."고 말했다. 작가에게 광야는, 도스토엡스키가 사형으로 죽기 바로 직전에 사면을 받아 목숨을 구한 것처럼, 그에게 대단히 소중한 체험이었다. 광야의 체험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주어진 삶을 헤쳐가기 힘든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바로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인간됨을 확인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생기를 불어넣다>는 우리 자신이 뛰어나거나 유능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앞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피스가 조합되어 한 작품을 이루는데 각 피스(piece) 에는 끈적한 액체 상태의 유리에 인체가 새겨진 작은 유리판을 붙이고 긴 파이프를 통해 숨을 불어넣어 부풀리어 완성한다. 개별적인 인간존재의 의미를 암시하기 위해 한 개의 피스에 각각 한 인체 형상을 배치하였다. 일반적으로 유리공예에서는 완벽한 원형을 이루거나 정형화된 형태를 목표로 삼지만 그의 경우에는 기능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만드는 원형은 반듯하기보다는 길쭉하기도 하고 찌그러지기도 한 미완성체로 남아 있다. 그것은 반듯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는 '망가지고 상한' 인간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가 이 작품에서 말하려는 것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신의 생기(生氣)로 창조되었고 인간은 그 생기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 '그토록 오래되었으면서도, 늘 새로운'(아우구스티누스) 절대자와 교감할 때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인체형상이 담긴 유리를 '미완성체'로 남긴 이유도 인간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의도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광야에 서다>의 속편으로 읽힌다. 왜냐하면 '광야'의 시간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존재 의미에 강한 의문을 품게 될 것 이고 그 의문을 푸는 실마리를 <생기를 불어넣다>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인간이 신의 호흡을 지닌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우리의 인생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생기를 불어 넣다 The Breath Of Life dimensions vary_enameled, blown glass, acrylic on wood panel_2019

 

 

초월의 신호

필자의 생각으로 그의 작품은 인간의 변화와 회복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제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적인 변화를 가진다는 것은 연목구어(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얻으려함)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가끔 그런 구도자들을 주위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그 태생적 완고성으로 인해 스스로 변화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숱한) 지식 중에서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 있을까?" (T. S. 엘리어트, "바윗돌의 합창") T.S.Elliot 'The Rock' "Where is the Wisdom we have lost in knowlede? 반문한 것도 그런 회의감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진리' 가 우리에게 찾아올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진리'를 찾고자 하는 갈망을 지닐 때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진리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우연히 다른 것을 사랑할 때 그것이 진리이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진리 대신 사랑하게 된 대상을 위해 진리를 미워하게 된다." (Simon Leys, The Hall of Useless)

많은 사람들은 물리적이거나 실증주의적 세계에 사로잡힌 나머지 일상에서 보내는 '초자연의 깜박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피터 버거(Peter Berger)는 이 현상을 '초월의 신호'(signals of transcendence)를 흘려보내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에 따르면, '초월의 신호'란 일상의 경험으로 조우하는, 그러나 그 실재 너머를 가리키는 어떤 현상을 가리킨다. 이런 경험은 신호음처럼 울려서 우리를 더 깊고 넓은 세계로 나가게 한다. 인간이 자연과 일상에서 '초월의 신호'를 포착하지 못한다면 구획된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신호를 번번이 놓친다.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거부해버린다. 그럴수록 일상에서 '초월의 신호'를 경험하는 일은 점점 더 멀어져간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그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영국의 철학자 C. S 루이스(C. S Lewis)가 어느 날 공작실 문 위 쪽에 난 틈으로 들어온 밝은 빛줄기를 보며 이전에 발송된 빛, 더 큰 존재를 상상한 것도 바로 '초월의 신호'로 해석한 경우이다. 루이스 는 햇살이 들어오는 쪽으로 걸어가 그 햇살에 눈을 갖다댔더니 그 전까지 보이던 광경이 모두 사라지고 나무 가지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푸른 나뭇잎과 그 너머 1억4천4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이 보였다고 한다. 애니 딜라드(Annie Dillard)가 "나는 신비의 가장자리, 언어와 논리가 힘을 잃는 곳으로 노를 저어간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딜라드가 말하는 '언어와 논리가 힘을 잃은 곳'은 인간의 무의식이나 신비주의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능력과 욕망만을 신뢰하는 것은 결말 없는 여정과 실패로 끝나는 추구의 공식일 뿐이 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무감각과 회의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창문이다.

우리는 최진희의 일련의 작품 곳곳에서 '초월의 신호'를 발견하게 된다. '마라의 쓴 물', '납작해지기', '빛 바라기', '숲의 선물'이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초월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광야에 서다', '생기를 불어넣다'는 곤경에 빠진 인간과 호흡이라는 메타포를 이용하여 그가 포착한 '초월의 신호'를 진술하고 있다.

작가는 '광야'가 이것을 '초월의 신호'를 발견할 수 있는 적지(適地) 로 판단한다. 막상 광야에 서면 우리는 위태롭고 불안한 나머지 카오스 상태에 빠진다. 이것은 위험의 수렁에 빠진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하지만 시련과 역경이 전부가 아니다. 그곳은 역설적으로 '언어와 논리가 힘을 잃은 곳'이요 '새 생명'을 얻는 곳이다. 그것은 정말 놀랍게도 상실했던 것을 회복(restoration)할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그것은 광야의 인간이 자아의 경계를 늦추고 '초월의 신호'를 스스럼 없이 받아들일 때에만 그런 기적적 사건이 발생한다. 작가는 이렇듯 광야에서의 체험이 새 삶으로 나가는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생기를 불어 넣다 The Breath Of Life_30x30cm_enameled, blown glass, acrylic on wood panel_2019

 

 

작가노트

작업으로 일상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나의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할 수 있어 감사하다.

몇 년 전, 유리를 작품의 재료로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유리는 내게 또 하나의 캔버스가 되었다. 주로 유리판에 유리 가루로 만든 에나멜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여러 장을 겹치고 가마에서 퓨징(fusing)을 하거나 캐스팅(casting)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유리는 투명성으로 인해 두껍지 않은 2차원의 평면 작업에서도 여러 장의 그림을 겹쳐 공간의 깊이를 보여줄 수 있고, 실제의 빛이 화면에 들어와 지금까지 사용해온 재료와는 다른 새로운 감동과 효과를 준다는 것이 신비롭다. 투명한 유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빛을 품고 있는 것 같지만 빛을 통과 시키는 통로 역할을 할 뿐이며 빛을 통해 더욱 분명한 존재감을 갖는다. 예민한 특성과 시행착오로 몇 개의 작품이 작업 과정 중 어이 없이 깨지는 상황도 있었다. 천천히 식혀야 하는 서냉(Annealing)과정이 잘못되어 가마에서 깨져서 나오거나 작은 흠집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금이 가고 결국은 깨어지는 것을 보면서 유리처럼 연약한 인간의 한계와 유한성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This is my story, This is my song>은 어릴 때부터 자주 부르던 찬송가가사의 후렴구이다. 이 노랫말처럼 내가 경험했던 치유와 사랑을 작업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일상속에서 맞닥뜨려지는 삶의 고단함은 광야에 홀로 서있는 사람으로 표현하였다. 광야에 섰을때 비로소 내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고 삶의 진정한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석고로 몰드를 떠서 유리를 넣고 두껍게 캐스팅하여 유리 화면에 한사람씩 배치하여 표현하였다. 창조주는 인간을 흙흐로 빚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명을 주었다. 그 순간을 생각하며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사람들의 모습을 숨을 불어 넣어 부풀어지는 유리 형태에 담기도 하였다. 광야의 여정중 만난 마라의 쓴물이 달게 되는 사건을 표현한 작품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쓴물처럼 고여 있던 내 마음 이 샘물에 던져진 절대자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인해 단물이 되었음을 표현 한 것이다.

광야는 고통스럽지만 광야에 홀로서기를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빛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기에,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싶다. 나는 깨지기 쉽고 연약한 유리와 같은 존재일 뿐이지만 작품을 통해 삶의 감사와 따뜻함과 밝음, 진리의 빛이 보여지는 맑은 통로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생기, 삶, 죽음 그리고 부활 The Breath of Life, Life, Death and Resurrection_

96x90cm_enameled, blown, sandblasted, mirrorized glass, ceramics, wood, steel_2019

 

 

마라의 쓴물이 달게 되다 Redeemed Water dimensions vary_enameled, fused glass, wood, ceramics_2021

 

 

 

 

 
 

최진희 | Choi Jin Hee

 

198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 1997 Art Student League, Manhattan, New York, USA | 2018-2020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리빙앤아키텍쳐글라스(유리조형) 석사

 

개인전 | 2021 12회 개인전 "This is my song, this is my story." (금호미술관) | 2018 11회 초대전 아뜰리에갤러리 (안양) | 2017 10회 초대전 아트서울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 2017 9회 초대전 "축복의 통로 (The Pathway of blessing)" (횃불트리니티 갤러리) | 2017 8회 개인전 "통로-Pathway" (사이아트 스페이스) | 2016 7회 개인전 "The Little Moment 일상 그리고 감사" (금호미술관) | 2013 6회 개인전 "조용한 대화" (인사아트센터) | 2009 5회 개인전 "소박한 사랑" (인사아트센터) | 2004 4회 개인전 "바라봄" (관훈갤러리) | 2001 3회 개인전 "기다림" (관훈갤러리) | 1994 2회 개인전 "기도" (관훈갤러리) | 1991 1회 개인전 (윤갤러리)

 

주요 단체전 | 2021 | 서울대 미술대학 동문전-2021 빌라다르페스티발 (서울대 미술관) | 서초미협기획공모전 "여름, 하얀햇빛전" 아트스페이스호서 (서울) |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정기전 "코이노니아" (서울, 라메르 갤러리) | 2020 | "시선전" 2020 맥아트갤러리 기획초대전 (대부도 맥아트 미술관) | 갤러리 이레 그룹초대전 "모퉁이돌", 파주 헤이리 | 한국 현대유리의 진화展 (충청도, 신세계백화점 문화관) | 아트미션 특별전 "동행" 토포하우스 | 2019 | 한울회 진부령 미술관 초대전 (강원도 진부령) | 바라전-명성교회미술인선교회기획 초대 (인사아트센터) | 신풍미술관 "갑자기 봄"초대전 (경북) | 이천 도자축제 두윤갤러리 초대전 (이천) | 2018 | 한국 기독교미술협회 사순절 기념전 "십자가 행전" | 아트미션 20주년 기념전 "소망" (관훈 미술관) | 한국기독미술인협회전 (조선일보 미술관) | 서울대 미술대학 동문전-빌라다르페스티발 (예술의 전당) | "One and All" 기획초대전 (맥아트 갤러리) | 2017 | 제 32회 모란현대미술대전 성남아트센터 갤러리808 (성남) | 제 5회 대한민국 크리스천 아트 피스트 "태초에…" (지구촌 갤러리) | 영락미술인 선교회전 "창세기" (이즈 갤러리) | LA 한국문화원 초대전 "Express My Heart" (Los Angeles, U.S.A) | 2016 | 서울대학교 70주년 기념 특별전 "모교나들이전" (서울대학교미술관) | 아트미션 "예술적 진실전" (이즈 갤러리) | 제 24회 기독미술대전 (우수상,밀알 미술관) | 2015 | 한울회 정기전 (제주도 문예진흥원) | 아트미션 "Image & Vision전" (횃불트리니티 기념홀) | 2014 |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양구 박수근 미술관) | 아트미션 특별기획전 "측은지예-심" (한전 아트 갤러리) | 2000 | "Oradell Art & Business Coalition Summerfair Juried Fine Arts Exhibition" Hiram Blauvelt Museum, New Jersey | 1992 | "반영전" (홍갤러리) | 1990 | "동 28전" (관훈갤러리) | 1988 | "최광옥. 최진희 2인전" (윤갤러리) | 1987 | "평면 입체전" (그리니치 화랑)

 

수상 | 제24회 한국기독미술대전 우수상

 

아트페어 | Korea International Art Fair | 서울아트쇼 | 화랑미술제 | 부산국제화랑아트 페어 | Hongkong Affordale Art Fair | "Oradell Art & Business Coalition Summerfair Juried Fine Arts Exhibition" Hiram Blauvelt Museum | New Jersey 등 11회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 (주)유로세라믹 | (주)바른손카드 | 영월교도소 | (주)삼성 증권 | ANC온누리교회 | 양재온누리교회 | 영락교회 외 다수

 

현재 | 기독미술인협회, 아트미션, 한울회, 서초미협, 영락교회미술인선교회 회원

 

E-mail | forestjh@gmail.com

Site | https://forestjinchoi.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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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10930-최진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