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빛으로 만나다 展

 

김찬주 · 강기훈 · 전병택 · 남상헌

 

 

 

 

2021. 9. 5(일) ▶ 2021. 10. 3(일)

관람시간 09:00 ~ 18:00 | 월요일 휴관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공원길 90-14 | T.054-420-6725

 

 

www.gc.go.kr/gma

 

 

#1. 공존

 

김찬주作_공존_100x65cm_Oil on canvas_2019

 

 

[서영옥이 만난 작가]

김찬주가 꿈꾸는 '공존'의 공간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한번쯤 의문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작가 김찬주의 개인전 팜플렛 첫머리에 기록된 작업노트 일부분이다.(2016년 8회 개인전) 바로 작가의 예술적 발언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닐까 한다. 작가는 관람자가 어떤 의문을 갖길 원하는지, 추론의 단서를 작품 속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종종 아는 것만 보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작가 김찬주가 들려준 일화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일화는 이렇다. 관람객이 곁에 섰던 김찬주를 알아보지 못한 채 작가가 전시장에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고백하건대 김찬주는 40대 초반의 남성 화가이다. 관람객은 그가 여성작가일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객의 기대에는 작가와 작품이 일치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었다. 이 상관고리에는 앞서 언급한 김찬주의 바람에 관람자의 기대가 하나 더 보태어진다. 작가는 관람자가 '작품'을 통해 의문을 갖길 바랐으나 '작가 자신의 이미지'까지 궁금하게 한 셈이다. 바로 작품이 주는 밝고 경쾌한 느낌 때문인 것 같다.

 

김찬주의 작품은 유화(oil painting)이다. 2007년 러시아 상트 페테르 부르그 국립대학에서 최고위 과정을 졸업한 그의 작업은 균형 잡힌 구도를 유지한다. 명확한 형태나 음영법에 더한 고도의 테크닉은 신고전주의 화법에 가깝다. 합리주의적인 미학에 바탕을 둔 이성적인 표현이다. 적절한 비례법과 정교한 묘사력은 얼핏 보아도 탄탄하다. 섬세하게 표현된 하늘과 나무 숲 바다 등은 과장과 왜곡 없이 제 모습을 유지한다. 사람과 동물은 실내 또는 실외(자연)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낯익은 소재들의 결합이다.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생명체들은 약진하진 않지만 생동적이다. 밝은 톤의 색채조화는 감미로운 언어로 다가온다. 모두 김찬주의 내면에서 잉태된 것이다. 그것이 서로 어우러져 환영의 공간을 형성한다. 작가는 이 환영의 현실로 동화 같은 순수한 감성을 자극하고 질문을 던진다.   

 

모든 그림은 허구의 산물(fiction)이다. 김찬주가 전개한 가상공간도 그렇다. 가공된 현실이다. 상상과 사실의 조합, 즉 현실경과 비현실경이 버무려져서 하나의 공간을 이룬 것이다. 이 낯선 풍경에 김찬주는 '공존(共存)'이라는 제목을 단다. 그는 "같이 존재함을 의미하는 공존이란 개념은 거리를 통해 함께 함을 규정하기보다 한 공간에 있다는 것에 좀 더 무게를 둔다."고 하였다. 그의 가상공간을 채운 개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익숙한 것이 모여 낯선 풍경을 펼쳐놓았다. 그러나 루소(Henri Rousseau )의 구겨진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단지 비범할 뿐이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창조된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의 붓으로 재창조된 공존의 현장은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를 밀어낸다. 현실과 상상간의 조화를 꽤하며 이상향을 주시한 작가의 작업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김찬주作_공존_90.9x65cm_Oil on canvas_2021

 

 

그의 화면에서 화자는 어린이다. 어린이는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간직한 타자이면서도 작가 자신의 아바타인 듯하다. 베르메르(Vermeer Jan)가 그린 <화가의 아틀리에>나 지오토(Giotto di Bondone)의 그림<애도>에서처럼 김찬주의 그림에서도 아이는 뒷모습으로 일관된다. 지오토가 <애도>에서 인물의 뒷모습을 통해 사건의 감정을 고조시켰다면 김찬주의 그림 속 아이의 뒷모습은 지오토처럼 감정을 고조시키지는 않는다. 부동자세인 아이의 얼굴표정에 대한 가늠은 오롯이 관람자의 몫이다. 어린아이는 닫힌 문 앞에 서 있거나 벽에 걸린 그림을 응시한다. 간헐적으로 돌다리 위에 서서 숲을 바라보거나 붓을 잡고 양들의 몸에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오리와 코끼리 기린 갈매기 등, 서식지나 생활방식이 다른 동물들과 나란히 서 있다가 의자 위의 고양이를 주시하기도 한다. 이때 화면 밖의 관람자는 어김없이 아이의 뒷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일련의 묘사를 정리하면 아이의 뒷모습은 작가의 내면을 주목하게 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용한다. 서로 다른 종(種)의 동물들과 나란히 선 아이는 생명체들 간의 화평한 공존 또는 공생과 상생의 대변체로 읽혀진다.

 

이러한 작업의 촉매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이다. 환경파괴에서부터 노약자나 동물학대와 성차별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모두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이다. 작가는 암담하고 모순되고 부조리한 현실 이면에 가려진 세상을 반어법으로 역설한다. 그것이 예술적 발언으로 드러난 것이다. 화면에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우리의 시선은 창문 너머 푸른 하늘과 맞닿는다. 빛줄기 아래 홀로 선 희미한 얼룩말과도 마주친다. 하늘과 바다, 얼룩말이 서 있는 곳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암굴의 성모> 일면과 겹친다. 암굴 속 저 끄트머리에서 빛으로 열리는 이상향에 필적할 만하다. 예술작품은 현실의 소재를 가공한 것이기에 현실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작가 김찬주의 예술의지도 이상을 지향한다. 따라서 그의 '공존'은 이상향의 다른 표현이라 할만하다.

 

'공존'시리즈에 영감을 준 동물은 김찬주의 취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인간과 동일한 인격체로 여길 만큼 동물에게 경도된 것은 어릴 적부터이다. 동물애호가인 그는 종종 인간과 동물이 서로 존중받으며 공존하길 바랐다. 공존의 배경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다. 이러한 그의 염원은 동물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 전반으로 확장된다. 인간의 삶을 표상하는 주요 모티브는 문이다. 일찍이 기베르티(Lorenzo Ghiberti)는 <천국의 문> 에서 종교적 회의를 통해 천국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로댕(Auguste Rodin)은 <지옥의 문>을 통해 타락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김찬주 작가에게 문은 단절과 소통의 담지체이다. 두려움과 설렘의 상징체인 문이 닫히면 두렵고 열림은 설렘을 동반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김찬주의 예술의지는 동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고운 색이 여린 감성을 건드리지만 감각적인 작품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체성이 고여있는 작가의 확고한 신념은 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놓치고 있는 삶을 환기시킨다. 대중이 김찬주의 예술적 발언에 공감하는 이유일 것이다.

 

2018.2.5 미술학 박사 서영옥

 

 

 

#2. 빛

 

강기훈作_빛-대추 2021-13_72.7x60.6cm_Oil on canvas_2021

 

 

빛-대추 연작

 

인간은 삶 속에서 많은 진실과 일루젼(illusion)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바라보는 것이 진실이라 믿지만 그것이 일루젼일 수도 있다. 진실과 일루젼은 그 경계가 불명확하고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진실과 일루젼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할 수 있게 하는 물질 가운데 하나가 유리라고 생각한다. 유리는 대상의 외형을 변형 또는 왜곡 할 수 있다. 투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빛의 투과와 반사, 굴절에 의해 현실과 일루젼이 결합되어 새로운 시각적 공간을 생성한다. 그렇지만 대상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본인은 대추의 본질과 유리잔의 특성을 결합하여 현실성과 비현실성의 공존을 형상화함으로써 현실을 재인식하는 단초를 제공하고자 한다.

<빛-대추>연작은 다양한 대상 가운데서도 대추를 표현대상으로 삼고 있다. 대추는 관혼상제를 포함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즉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시기에는 언제나 대추가 한자리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추는 꽃을 피우면 꽃의 숫자만큼 열매를 맺는다. 이는 꽃이 허투루 피었다가 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결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추는 일에 대한 결과물이나 자손의 번창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추가 가진 붉은 색은 용포를 뜻하고, 과일 하나에 씨가 하나만 있어서 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추에는 붉은색과 연두색의 조화로움과 비정형화 된 아름다움이 있다. 이렇듯 대추에 내포된 의미와 다양성을 조형적인 미로 표출하였다.

 

 

강기훈_빛-대추 2021-14_45.5x65.1cm_Oil on canvas_2021

 

 

표현의 대상이 있는 회화적 사실주의는 회화적 재현을 그 전제로 한다. 즉 대상과 표현된 결과물의 유사성을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사성의 기준인 색, 형태, 질감, 양감 등의 다양한 정보가 대상과 얼마만큼 일치하느냐에 따라서 사실성의 정도가 결정된다. 본인의 작업이 대상의 지각적 동일성을 추구하고 실제(實際)의 모방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여기서 사실적인 재현은 동일성, 일치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가진 실제(實際)의 실재(實在)를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의 실재는 사실이나 현실 그대로 존재함을 재현하는 것, 즉 대상이 지닌 실재성의 표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대상이 지닌 실제의 실재를 도출하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본인이 추구하는 회화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작업노트 중에서

 

 

 

#3. 선택

 

전병택_Card tower-Tom &Jerry#3_116.7x80.3cm_Oil on canvas_2015

 

 

카드에 투영된 현대인의 불완전한 삶

-선택, 그 가치와 목적에 대해 묻다

 

현대인들은, 아니 어쩌면 인류는 출현부터 다양한 선택을 해왔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욕망을 위해, 성공을 향해 매일 매순간 어떤 카드를 내밀어야 하는지 혹은 집어야하는지를 말이다. 그건 때로 느슨하지만 때론 격렬하다. 무상과 바람이 교차하고 결핍과 채움이 상치되거나 배척과 포용이 정치적으로 오가기도 한다. 한마디로 현대인들에게 선택이란 일상이며, 치열한 수의 다툼이다.

간혹 모든 것에 지쳐 성찰한다. 문득 되돌아본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느냐고. 하지만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그건 마치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무(無)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던 노자의 말처럼 궁극적 근거를 대기 곤란한 형이상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어찌 범인(凡人)으로서 떠난 것이 생(生)이고 돌아온 것이 사(死)라는 의미를 쉽게 독해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많은 이들은 현실에 적응하고 사회구조에 순응한다. 원한 것이든 아니든, 영역 밖 보다 영역 내(內)가 편한 것이든 아니든 그저 주어진 삶에 의탁할 따름이다. 실제로도 현세인은 있는 그대로의 가시적 세계가 무위의 세계 보다 훨씬 무거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공동체의 규율과 조직 내의 위계 속에서 선택의 기로는 쓰나미처럼 들이닥치지만 당장의 결정 앞에 딱히 저항다운 저항을 할 수조차 없다. 되레 자본계급이라는 새로운 계급과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태생적 신분 앞에 좌절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게 바로 현대인들의 삶이며 불안한 여정의 짙은 단면이다.

작가 전병택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삶을 '카드(게임용 카드)'로 재현한다. 스페이드, 다이아, 하트, 클로버에 들어 있는 의미와 수, 조형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작가에 의하면 52장인 카드의 수는 조커를 더해 365다. 52주인 년 단위와 년일 수가 교묘하게 접목된 수이다. 이는 전병택이 어째서 카드를 예술표현의 주요 소재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일러준다. 즉, 인간이 정한 시간의 표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의미로써의 카드인 셈이다.

카드 속에 표현된 각종 캐릭터와 구조는 보다 직접적인 내러티브를 담보한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인 '쌓아 올린 카드'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는 매사에 불안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일정한 프레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구멍조차 없이 일상을 소화하고 있는 우리네 초상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초상은 언제 어느 때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한다.

두 번째는 계급의 문제요, 욕망의 문제다. 그의 카드에는 숱한 경쟁을 뚫으며 상위로 오르려는 욕망과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 신분의 관점이 투사되어 있다. 도상으로 봤을 때 계급은 중세시대나 왕정시대의 계급을 가리키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현재의 계급문화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시대적 정의는 무의미해진다.(필자는 이 카드의 무늬-스페이드는 검과 군인을, 다이아는 돈과 상인을, 하트는 성배와 성직자를, 클로버는 곤봉과 농부를 의미함을 전병택 작가의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처음 알았다.)

흥미로운 건 아슬아슬한 카드 탑의 모양이 말해주듯, 그래봤자 위태로운 형편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락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결국 신분이든 위계든 계급이든 그 무엇인들 얻기 위해 피나는 사투를 벌이며 기어 오른 들, 나아가 능력, 성공에 매달린들 매사에 불안한 인간들이란 거푸집은 일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쌓아 올린 카드는 그저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욕망하고 이루기 위해 종잇조각 같은 유무형의 사다리에 기대는 인간의 헛된 욕구와 투쟁적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 책자에 등장하는 문구처럼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그 길은 보편적인 선택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소수만이 떠나는 특수한 길일뿐임을 차갑게 내보인다.

 

 

전병택_The tower of card-Hyacinth Macaw_162.2x112.1cm_Oil on canvas_2016

 

 

그러나 몇몇 작품에서의 카드 탑은 수직적이지 않다. 그야말로 불규칙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는 교훈적 상투성을 이탈하는 조형적 장치이자 작가의 의도가 녹아 있는 고의적인 배치(재구성)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래 태어나면서부터의 계급이란 부과되는 것이 아니며, 그런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캐릭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작가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자본주의 매체의 표상이면서 가공된 존재들이다. 배트맨, 뽀로로, 아이언 맨, 피에로, 톰과 제리, 엘리스, 올빼미 등이 그 예이다. 이들 캐릭터는 실체가 아니지만 미디어를 통해 널리 전파된 탓에 친근함이 물씬하다. 그로 인해 관람자들의 긍정적인 시선도 한 몸에 받고 있다.(특히 아이들의 반응이 뜨거울 듯싶다.) 어떤 것은 귀엽고, 어느 것은 익살스러우며 또 어떠한 것은 예쁘거나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드러남이 전부는 아니다. 그 내부엔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놓여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현실과 이상의 거리감을 말해주는 두 얼굴로써의 캐릭터, 작가 자신이 바라는 희망적인 세상을 투과시키는 수단으로써의 캐릭터이다. 실제로 이 캐릭터들은 현실감이 없다. 만화 속 주인공이거나 만들어진 영웅들, 이상화된 대상이요, 상황을 예시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들이 앉아 있는 곳은 다분히 현실적인 공간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현실을 대리화한 카드에 앉아 있다는 게 옳다.

이 모순적인 상황이 뜻하는 것은 수직적이지 않게 자유분방한 양태의 카드 탑과 같다. 즉, 이미 정해진 어떤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양태를 지정하는 캐릭터이자 가시적인 규율과 법칙, 보이지 않는 틀에서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양가적 입장을 모두 아우르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동시에 그 틀에서 이탈 불가능한 / 위태위태한 삶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현재라는 텃밭에서 탈출하려는 원심력과 같은 맥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전병택의 그림들은 들여다볼수록 겉과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화려한 컬러, 명시적 등장인물, 친숙한 도상이기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근접하기 십상이지만 내용은 꽤나 짙은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철학적인 이해와 개념을 제외한 채 단순히 캐릭터만 놓고 해석한다면 그만큼 아쉬움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도달하고자 하는 결과는 배제하고 일반성을 강조한다면 제대로 된 이해라고 보기 어렵다. 작가의 시점을 파악하는 것이 그의 그림을 간파하는 핵심이다.

한편 카드게임은 확률게임이다. 운이 좋으면 이기기도 하지만 지기도 한다. 여기에 요행이란 없다. 단지 확률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승부에 집착하고 성공을 기원한다. 찰나의 요행이 지속적일 것이라 착각한다. 더구나 언제 어느 때 으스러질지 모를 탑을 쌓으면서 순간의 선택에 매몰된다. 이때의 노력은 무엇이 될 것인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 관대할 뿐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걸을 것인지에 대한 노력에는 인색해진다.

그런 점에서 전병택의 그림들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자문자답의 기회도 준다. 일례로 당신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중, 가장 올바른 것을 선택하는 선택의 미학 앞에서 무엇을 집어들 것인가? 성공이라는 욕망의 실현, 계급사회 최상위로의 진입, 과거와 다른 미래를 위한 모든 것들 앞에서 우린 어떤 카드를 내놓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근거와 방법, 가치와 목적 등은 분명한가. 아마도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여러 대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앞에 다가설 미래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사실이다. 선택의 수와 행동의 수, 결과의 수가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그게 삶이다. 전병택의 그림들은 이 지점을 우회적으로 관통하고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

 

 

 

#4. 회상

 

남상헌_그때 이야기_90.9x65.1cm_2019

 

작가노트

 

나는 이 작품들로 통해 현재 내가 존재할수 있는 과거의 시간을 증명하는 기억을 추억하는 행위의 가치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였다.

 

우리들이 각자 살아가는 시간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이다. 그리고 지나간 수많은 과거의 현재 들이 축척되어 개인의 근본으로 존재하고 있다. 개인의 지나간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디지털 매체나 글로 기록하지만 이는 모든 과거의 시간을 기록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기억을 개인이 살아온 모든 시간이 기록되어있는 원초적 저장매체의 관점으로 보았다. 하지만 변질과 왜곡으로 저장매체로서 불완전하다. 따라서 이를 보안하는 장치로 과거에서 현재까지 실존하고 있는 그 장소를 이용하였다.

 

 

남상헌_해변에서_116.8x45.0cm_2020

 

 

내 작품에서 그 풍경은 기억의 불완전 요소를 보안해줌과 동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실증(확실한 증거)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그 장소에서 느낀 감정과 향수는 심증(마음에 받는 인상)으로 현재와 과거의 차이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 차이는 경계를 만들어 개인을 구성하는 과거 즉, 본질의 형상을 나타낸다.

 

이번 '회상' 연작은 지나온 수많은 시간 중 일부분인 나를 치유해준 시간들로 구성되어있다.

 

 

 

 

 
 

김찬주 | Kim, chan ju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국립대학 최고위 과정 졸업 | 대구대학교조형예술대 동대학원졸업

개인전 | 13회 | 2021 LG사이언스파크 갤러리C초대전 (서울) | 2019 청애갤러리 초대전 | 2018 이영갤러리 초대전 (대구) | 2018 갤러리H 초대전 (서울) | 2017 대구카톨릭대병원FIAT Gallery 초대전 (대구) | 2016 J-one 초대전 (J-one, 대구) | 2015 J-one 초대전 (J-one, 대구) | 2014 공존 수성아트피아 기획전 (수성아트피아, 대구) | 2014 J-one 초대전 (제이원, 대구) | 2012 갤러리온 초대전 (갤러리온, 서울) | 2011 공존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영천) | 2009 공간/시간 (이수갤러리, 대구) | 2006 휴식과 일상, 국립미술대학 아트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부스개인전 | 5회 | 2019 대구아트페어 (엑스코, 대구) |2013 서울미술관 (서울미술관, 서울) | 2012 KCAF 한국현대미술제 (예술의전당, 서울) | 2012 가을미술제 (메트로갤러리, 대구) | 2012 봄미술제 (메트로갤러리, 대구)

2인초대전 | 4회 | 2020 고도아트갤러리 개관 2인전 (고도아트, 대구) | 2015 대백프라자갤러리 2인전 (대백프라자갤러리, 대구) | 2013 풍요속빈곤의반추 서울미술관 2인초대전 (서울미술관, 서울) | 2013 이다갤러리 2인초대전 (이다갤러리, 서울)3회 러시아, 서울, 대구

주요 아트페어, 그룹전 | 200여회 | KIAF (COEX, 서울) | 대구아트페어 (엑스코, 대구) | Art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Bexco, 부산) | 독일 아트페어 (레드닷뮤지음, 독일) | 라스베가스 아트페어 | 현대미술의 조망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주요소장처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 경북대학병원 | 대구카톨릭병원 | 대구tbc방송국

현재 | 대구대조형예술대 현대미술과 겸임

 

강기훈 | Kang, ki hoon

홍익대학교 미술학 박사 | 러시아 Saint-Petersburg 국립미술학교(레핀아카데미)

개인전 | 19회 (프랑스 파리, 프랑스 홍플뢰흐, 서울, 대구, 부산, 용인, 경주, 안동, 예천)

단체전 | 240여회

수상 | 전국청년작가미술공모 선정작가(2021) | 포항-POSCO 불빛미술대전 대상(2019) | 우수상(2018) |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2012) |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3회 외 다수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 중국제남미술관 | 포항시립미술관 | 경북도청 | 포스코 | TBC | 오산문화재단 | MS그룹 | 재기중소기업개발원 | 한국아트벨리댄스협회 외 다수 개인소장

현재 | 한국미협 | 신작전 | 경북청년작가회 |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 경상북도미술대전 초대작가 | 경상북도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E-mail | cracker111@daum.net

 

전병택 | Jeon, byung taek

중앙대학교 대학원 서양화학과 수료 | 대구가톨릭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 22회 | 부스개인전 | 3회 | 2021 전병택 초대개인전 '불완전함에 반하다' <한국수력원자력 경주본사> | 2021 전병택 초대개인전 '불완전함에 반하다' <고도아트갤러리> | 2019 전병택 초대개인전 '완전함의 시작'-불완전함 속의 불필요한 것들 <JK 블라썸 호텔> | 2018 전병택 초대개인전 '불완전함에 반하다' HOARD Gallery 外

아트페어 | 35회 | 말레이시아 아트엑스포 | KIAF | BAMA | 경남국제아트페어 | 서울아트쇼 | Luxembourg Art Week | 어포더블서울 | SOAF | 화랑미술제 | 대구아트스퀘어 | 부산국제아트쇼 | 조형아트서울 | 블루아트페어 | 수창아트페어 | 아트아시아 | 아트경주 | COAF 外

단체전 | 150여회 | 2021 7월 The 3column <서구문화회관> | 2021 기억의 재구성 <범어아트스트리트 오픈갤러리B> | 2021 공간이 머무르는 자리 <space mutae> | 2021 구름곰 나라의 앨리스 <전북대박물관> | 2021 각자의 시선 展 <디아크 로비갤러리> | 2021 뜻밖의 발견 展 <팔공산 헤이마> | 2021 케이옥션 온라인경매 <케이옥션> | 2021 소福 소福 <라한셀렉트 호텔 오션갤러리> 外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2012, 2016) | 오산시립미술관 | 서울미술관 |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 | ㈜캐미코스 | ㈜탐앤탐스 | ㈜컬처오션 | ㈜씨지리테일 | ㈜세종교육정보 | 시카고 블루밍데일즈백화점 外 갤러리 및 개인소장 다수

 

남상헌 | Nam, sang heon

2021 드로잉작업실 (예술의전당, 안동) | 2020 그때그순간 (솔거미술관, 경주) | 2020 경북 청년작가 맥 (K호텔, 경주) | 2019 청년미술 프로젝트 (엑스코, 대구) | 2019 찾아가는 미술관 (예천신청사 전시실, 예천) | 2018 봉정사 미술, 사진 전시회 (봉정사, 안동) | 2018 안동 문화유산 전 (안동콘텐츠박물관, 안동) | 2017~2020 안동 의료원 특별 기획전 (안동의료원, 안동) | 2017 '회상'전 (대심情미소,예천) | 2016 안동청년작가 초대전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안동) | 2015 신인작가 특별기획전 (갤러리 경북, 서울)

E-mail | tkdgsj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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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10905-서로 다른, 빛으로 만나다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