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진 展

 

꿈길에 수놓다

 

 

 

갤러리 스틸

 

2021. 7. 19(월) ▶ 2021. 7. 25(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조구나리 1길 39 | T.031-437-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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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만남 16_60.6x60.6cm_Watercolor on paper

 

 

슈질 회화 - 꿈길에 수놓다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글 발췌

 

프롤로그

정하진은 이번 개인전의 부제를 '그림에 수를 놓다'로 정했다. 그림 위에 직접 수를 놓는다고? 아니다. 그녀의 작업은 전통 '자수(刺繡) 공예'에서 볼 수 있는 실로 수놓은 형상과 흔적을 새롭게 번안해서 '천 위의 바느질'이 아닌 '종이 위의 붓질'로 옮기는 것이다. 전이모사(轉移模寫)를 행하는 손의 재현 기술이 워낙 출중해서 정하진의 회화 작품 앞에서 관자는 마치 실제 천 위에 수놓은 자수 공예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히 트롱프 뢰유(Trompe-l'oeil)라고 하는 '눈속임 회화'를 보는 것처럼 정밀한 재현의 언어는 감탄스럽다. 실상 트롱프 뢰유가 지니는 마술적 효과는 르네상스 이래 고전적 회화가 지닌 덕목이었다. 따라서 실제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정하진의 그림 앞에서 "아! 이거 수놓은 것이 아니라 그린 거예요"라는 놀라움 가득한 관객의 질문은 오히려 자연스럽기조차 하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자신의 조형 언어로 이러한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용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아름다운 만남 10_60.6x60.6cm_Watercolor on paper

 

 

I. 슈질 회화 - 그림에 수를 놓다

'수(繡) 놓기'라는 전통적 규방 공예를 회화로 치환하는 그녀의 작업을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필자는 그녀의 회화를 침자(針刺)와 자수(刺繡)를 실천하는 회화라는 점에서 '슈질 회화'라 부르기로 한다. 슈질이란 '수를 놓다'를 의미하는 옛말인 '슈질-다'의 어간으로 '수를 놓는 일'을 가리킨다. 우리는 '슈질'이란 단어에서 '질'의 사전적 쓰임새를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질'이란 단어는 "(도구를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도구를 가지고 하는 일"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수질'은 마치 가위질, 바느질처럼 '바늘과 자수'를 가지고 하는 침자질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바늘, 자수라는 도구가 앞세워는 의미를 따라가는 일련의 생산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정하진의 작업을 필자가 '수(슈)질'과 '회화'가 합쳐진 '슈질 회화'로 부르기로 한 것은 유의미한 작명이 된다. 작가 정하진의 개인전 부제인 '그림에 수를 놓다'라는 시(詩)적 표현에서 시심(詩心)을 털어 내면, 조금은 건조한 표현이지만 '수를 놓은 그림을 그리다'라는 객관적인 말로 자연스럽게 부연 설명되기 때문이다.

한편, 필자가 정하진의 작업을 지칭할 때, '자수'라는 한자어와 '수질'이라는 현대어를 버리는 대신 '슈질'이라는 옛말을 사용하고 회화와 병합하여 '슈질 회화'로 부르자고 청유한 까닭은 그녀의 회화가 '전통 계승'에 관한 독특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하진의 '슈질 회화'에서 '슈질'은 조선 시대의 전통적인 규방 공예의 속성과 더불어 조각보나 배겟모 등 서민의 삶에 깊게 자리한 생활 공예의 속성을 두루 견지하고 있는 데다가, '회화'는 사대부의 문인화적 전통보다 서민들의 풍습을 가득 담은 민화적 전통을 함유한다. 즉, 옛것이라는 전통을 계승하는 정하진의 '슈질 회화'는 왕족이나 사대부처럼 지배층의 문화를 계승하는 것이기보다 피지배층인 서민의 문화를 계승한다. 바느질, 가위질, 슈(수)질의 쓰임새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질'이란 용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주로 보잘 것 행위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사용되어 왔음을 유념할 일이다. 사대부에겐 규방 공예는 아녀자들의 주변 문화로 하찮은 것으로 간주되었고 민화는 '하찮은' 민초들의 문화였다. 따라서 '그림에 수를 놓다'라고 표현할 만큼 공예와 회화가 맞물린 정하진의 '슈질 회화'는 지배층의 문화 혹은 있는 자의 문화를 계승하는 것이기보다는 피지배층의 문화 혹은 없는 자의 문화 더 나아가 서민과 대중의 문화를 계승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이 '전통에 관한 지금, 여기의 재해석과 더불어 현대적인 계승과 발전'을 전제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아름다운 만남 20-25_65.1x53.0cm_Watercolor on paper

 

 

II. 슈질 회화 - 꿈길에 수놓다

정하진 슈질 회화는 서민들의 "아름다운 삶의 전통"으로부터 시작된다. "베갯모 속에 담겨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조각천의 / 모서리를 하나하나 이을 때는 나와의 모든 인연이 / 이어가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서민의 전통을 오늘날 인연처럼 잇고 있는 그녀의 작업은 베갯모라는 독특한 서민적 수예 문화에 기초한다. 베갯모는 "베개의 양쪽 마구리에 대는 꾸밈새"로 "조그마한 널조각에 수를 놓은 헝겊으로 덮어 끼우는 장식"이다. 대개 베갯모의 장식은 여성의 이상과 바람을 형상화하여 수놓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글자로 '부(富), 귀(貴), 수(壽), 복(福), 희(囍), 강(康), 녕(寧)' 등이 수놓아지거나 격자 형식의 조각보 문양이나 색동의 기하학적 추상 문양으로 장식된다. 때론 장수를 기원하는 학, 해, 산, 물, 돌, 구름 등 십장생(十長生)을 형상화한 문양이나 부귀를 염원하는 모란과 같은 꽃 형상이 장식되기도 한다.

정하진의 '슈질 회화'는, 이처럼 '강녕, 수복, 부귀'는 물론 다남(多男)과 같은 조선 시대 이래 여성의 바람이 수놓인 베갯모 이미지를 화폭 안으로 가져와 현대적으로 변용(變容)한 까닭에, 가히 '꿈길에 수놓는 작업'이라 할 만하다. 꿈길에 수를 놓는다고? 그렇다. 피곤한 몸을 누이고 달콤한 꿈길에 이르게 하는 매개체인 베개를 장식하는 이러한 베갯모 이미지를 가져온 것도 그러하지만,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세화(歲畵), 지식 계몽의 눈뜸을 염원하는 문자도, 문방구류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소망하는 책가도(冊架圖)처럼 길상수복(吉祥壽福)의 소망마저 지니고 있는 민화의 전통을 접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슈질 회화는 "꿈길에 수놓다"는 시적 표현을 가능케 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희망, 소망을 흔히 '꿈'이라고 표현하질 않는가?

그러나 이러한 꿈과 소망을 회화에 담는 작업은 그다지 쉽지 않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지난한 수예의 노동처럼 정하진의 '슈질 회화'는 수채화 물감을 찍은 작은 붓으로 한 올 한 올의 수놓아진 이미지를 사실처럼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늘로 한 땀 한 땀 꼼꼼하게 실을 밀집시켜 수를 놓는 자수의 노동력을 넘어선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녀의 작품을 읽는 데 있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취미, 여가의 활용 측면에서 거론되는 규방 공예로서의 '수놓기'가 정작 '여인에게 부여된 삶의 지난함을 인내하려는 과정의 산물'일 수 있다는 해석과 같은 것이다. 규방 공예라는 것이 '조선의 유교적 체제 아래서 남녀유별과 같은 윤리적 압박이 만들어낸 차별화의 장이자 조선 여인들이 담장 안에서 개화시킨 애(哀)의 꽃'이라는 관점을 간과하지 말 일이다. 조선 시대의 여인이 사회적 체제 내에서 감당해야만 했던 고통뿐 아니라 그것을 인내하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몰입하게 된 수놓기라는 '여가 생활 아닌 여가 생활'은 실제로 심적, 육체적으로 지난한 노동을 수반한다.

세월은 다르지만, 작가 정하진의 일상도 분명 그러했으리라. 누구나 그렇듯이, 며느리, 아내, 어머니, 작가로서 담당할 일인 다역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고단하고 지난한 일상으로부터 탈주하고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는 길은 고생스러운 창작일지라도 그것이 낳는 큰 기쁨을 향해 걷는 길이었을 것이다.

정하진의 '수놓기 그림'은 이미 만들어진 형상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과정에서 도래하는 육체적 노동이나, 기존의 자수 형상을 새롭게 자신의 조형 언어로 변주하는 창작의 정신적 고통이 늘 뒤따르는 것이었다. 창작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함께 잘 풀리지 않는 작품은 때론 그녀에게 실의와 좌절을 안기기도 하지만, 대개 이러한 지난한 과정은 고진감래(苦盡甘來)와 같은 창작 노동의 단 열매를 선사한다.

 

 

아름다운 만남 21-30_72.7x53.0cm_Watercolor on paper

 

 

아름다운 만남 21-42_72.7x72.7cm_Watercolor on paper

 

 

아름다운 만남 21-38_53.0x45.5cm_Watercolor on paper

 

 

아름다운 만남 21-44_53.0x40.9cm_Watercolor on paper

 

 

 

 

 
 

정하진 | 鄭夏珍 | JEONG HA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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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한국미협 | 안산미협 | 한국수채화회원 | 경기수채화회원 | 신사임당미술대전 초대작가 | 한국수채화지역이사 | 단원작가회 | 수미회 | 안산미협수채화분과장 | 행정복지센터 아동미술강사

 

E-mail | tlsalsg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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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100719-정하진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