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국 展

 

The Storyteller

 

 

 

Gallery LVS

갤러리 엘비스

 

2021. 5. 6(목) ▶ 2021. 6. 5(토)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27길 33 | T.02-3443-7475

 

www.gallerylvs.org

 

 

stardust, oil on canvas, 193.9X260.6cm, 2021

 

 

이야기의 발견: 김성국 개인전 《The Storyteller》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시작한다. 어두움이 내려앉은 어느 고풍스러운 유럽의 성을 떠올려 본다. 차가운 화강암으로 된 성벽에 등불이 일렁인다. 어디에선가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텅 빈 곳을 채우며 울리는 소리를 따라가 두꺼운 나무문을 열어본다.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내려온 전설과 영웅의 모험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슬픈 이야기들을 노래로 전하는 음유시인이 작은 하프를 켜며 이야기를 전한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소리에 따라 잠시 눈을 감는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딘가 낯선 기운에 감고 있었던 눈을 뜬다.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와 순간 멍해진다. 과거에 머물렀던 시간이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어느새 빛에 익숙해진 눈을 들어 벽을 바라보니 색으로 가득한 커다란 캔버스가 놓여있다. 그림 속 이야기를 따라 들어가 본다. 주인공으로 짐작되는 인물을 시작으로 배경을 살펴본다. 영국과 한국, 과거와 현재, 허구와 현실이 뒤섞인 이야기들이 관람객을 끌어당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Stardust〉(2021) 이다. 황홀한 매력 또는 마력이라는 뜻과 소성단이라는 뜻을 가진 이 작품은 영국에 거주하던 당시 작가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 안내한다. 영국 왕립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친구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그림의 무대로 삼았다. 이곳에서 슬픔과 기쁨, 혹은 지리한 일상을 나누었다. 당시 그곳에서 느꼈던 모든 희로애락도 시간 속에서 추억으로 흘러갔다.

〈Stardust〉의 무대가 되는 곳은 가장 현실적인, 가장 영국적인 동네에 위치한 작은 펍,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경로 중 하나인 런던시청과 런던 아이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무대 속 인물들은 평범하지 않다. 중세 시대 그림 속에서 튀어나왔을 것 같은 인물에서부터 동화책 속 유쾌한 춤꾼들, 혹은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이거나, 어린 시절 만화영화에서 보았던 캐릭터들이 무대 앞을 줄줄이 지나간다. 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은 그 자체로 이 순간의 황홀함을 밝힌다. 동시에 이것이 현실이 아닌 비현실임을 자각하게 하는 회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는 이는 네댓살쯤 되었을 법한 꼬마 아이다. 작가의 페르소나이면서 동시에 이 그림을 보고 있는 관람객을 의미한다. 찬란한 순간의 풍경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가까이 왔다가 사라진다.

 

 

직장인들의 생일파티 4, oil on canvas, 193.9×130.3cm, 2019

 

 

김성국 작가가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의 특별함은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문화적 문맥을 적절하게 가져와 이미지가 가진 힘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상징이 언어로써 기능하기 위해서는 상징이 담아내는 특정한 문화에 대한 고유한 관습과 전통에 대한 화자와 청자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서로의 이해가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의 본래 의미(intrinsic meaning)가 드러난다. 동과 서라는 서로 다른 문화적 요소들이 하나의 화면 속에서 등장하면서 양쪽에 모두 낯선 이질감을 가져온다.

〈직장인들의 생일파티 3〉(2021) 속 풍경은 위와 같은 요소들을 가장 직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전형적인 한국 직장인들의 모습을 담은 등장인물들은 가장 영국적으로 보이는 윌리엄 모리스의 패턴을 차용하여 그리스·로마 속 헤라클레스와 대지의 신의 아들이 싸우고 있는 조각의 모습을 빌었다. 사회에서 승자도 패자도 아닌 직장인들의 모습을 통해 특별한 날, 스트레스를 발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1651년 영국에서 발표된 토머스 홉스의 저서 제목을 딴 〈Leviathan〉(2018)은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스스로 대답했다. 화면의 가운데 서로 얼싸안고 있는 세 여성은 재학시절 작가의 동기다. 서로 다른 국적의 세 여성은 항상 함께 다니며 젊은날을 즐겼다. 여성들의 앞쪽에 있는 늑대 세 마리는 그들이 학교에서 해야 했던 업무와 일을 상징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녀들의 미래에 강력한 동료가 될 수도 있고 동시에 적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뒤편에서 베레모를 쓰고 있는 남성은 자칫 방탕해질 수 있는 청춘의 순간을 보호하고 제어하는 장치다. 이렇듯 화면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의미를 내포하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주장한 홉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서로에게 협력하며 보다 평화적이고 덜 경쟁적인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작가의 상상을 담았다.

이렇듯 김성국의 회화는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소설과 같다. 이미지가 내포하는 알레고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중세 시대의 음유시인에 비교한다.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떠돌며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평범한 일상에 환상을 더하며, 삶을 모험과 열정이 가득한 무엇으로 만든다.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신화화시킨다.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전설로 만든다. 이야기는 밤이 새도록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음유시인의 숙명인 것처럼,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 것이 그의 숙명일 것이다. 그가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는 색과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수수께끼와 같은 상징들 속에서 지금의 현실을 보다 황홀한 순간으로 이끌어 낸다.

 

글_박경린

 

 

Leviathan, oil on canvas, 160×140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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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10506-김성국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