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은 · 정지필 2인展

 

trace

 

 

 

아트스페이스J

 

2021. 1. 12(화) ▶ 2021. 2. 25(목)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일로 166 SPG Dream Bldg. 8층 | T.031-712-7528

 

www.artspacej.com

 

 

전정은, Landscape of egoism #06, 96x75cm, Inkjet print, 2007

 


‘trace’는 케임브리지어학사전 정의에 따르면 명사로는 ‘a sign that something has happened or existed’, 동사로는 ‘to find the origin of something’을 의미한다. 즉 발생했거나 존재했던 어떤 것의 ‘흔적’, 혹은 ‘무엇인가의 기원을 추적해 가는 행위’를 말한다. 예술가의 숙명이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예민한 감성과 예리한 시각으로 끊임없이 세상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면서, 동시에 목도한 현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작품으로 구현해가는 예술적 실천이라면, 여기에 그 길을 묵묵히 수행해가고 있는 두 명의 동시대 사진가, 전정은과 정지필이 있다.

전정은은 인간이 살아가는 풍경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흔적’에 주목하여, 그 속에 내재되어있는 인간 본질의 한 측면을 <이기적인 풍경>(2007-2009)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시간도 공간도 각기 다른 실제의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은 뒤, 디지털 프로세스를 이용해 레이어를 반복적으로 복제하여, 실재하는 듯 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풍경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전정은의 풍경 시리즈 가운데 초기작인 <이기적인 풍경>에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거나 인위적으로 조작된 내부의 공간과 창 너머 자연 본래의 쓸쓸한 풍광이 공존한다. 그는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시키면서도 동시에 자연의 모습을 다시 곁에 두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아이러니한 심리상태와 이기적인 본성을 인간이 만든 인공물들의 잔재와 자연 본연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중첩된 기묘한 풍경으로 보여준다. 전정은은 <이기적인 풍경>에서 실재가 사라진 시뮬라르크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이미지의 실재가 부재하는 실재감, 현실이 부재하는 현실감’이라고 했던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말처럼 시뮬라르크의 세상을 다양한 시각적 변용과 유희를 통해 탐미해 간다.

 

 

전정은, Landscape of egoism #24, 96x120 cm, Inkjet print, 2008

 

 

전정은이 실재하는 ‘흔적’의 파편들을 종합하여 일련의 매우 정교한 작업과정을 거쳐 인간 본성의 일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면, 정지필은 사진의 어원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지점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집요하게 ‘추적’해간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사물에 빛이 반사된 물리적 현상이고, 그 빛의 근원은 태양이다. 즉 지구의 모든 현상은 태양으로부터의 빛(photo-)에 의해 그려지는(-graphy) 하나의 거대한 사진인 셈이다. 정지필의 <태양의 자화상>(2016)은 필름 대신 나뭇잎이나 해조류 등을 넣고 짧게는 1초에서 길게는 일주일에 걸쳐 태양의 모습을 찍어낸 작업인데, 이를 통해 그는 ‘봄(seeing)’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인 태양 자체의 지속적인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와 그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늘 가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더 뜨거운 태양>(2019)은 ‘태양의 온도가 지금과 달랐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물음에서 비롯되었는데, NASA가 위성으로 촬영한 실제 태양 사진에 태양의 온도가 현재보다 더 뜨겁거나 차가울 때의 모습을 포토샵을 이용해 상상으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2020년의 <더 뜨거운 태양-스펙트라> 연작은 다수의 태양이 동시에 존재할 경우를 가정한 초상 사진으로 가상의 태양에 해당하는 다수의 인공 조명들이 만들어내는 색의 변화에 따라 개개의 인물들의 모습이 시시각각 교차하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만들어 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길 수 밖에 없으며, 삶은 끝없는 질문의 연속이다. 이는 우리가 의도적이건 아니건 인간이 만들어낸 ‘흔적’을 통해 현대인의 이중적이며 이기적인 본성을 자각시키는 전정은과 빛의 근원에 대한 질문과 답을 끊임없이 ‘추적’해가며,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유동하는 빛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지필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지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 시대의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는 이기적인 동시대인들의 흔적이다. 그렇다면 이 바이러스의 근원은 무엇이며, 우리는 이와 같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유래된 현상들에 대한 해결책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 언제나처럼 2021년도 새로운 희망과 질문을 안고 출발해 본다.

 

 

정지필, Spectra, variable size, C-print, 2020

 

 

정지필, 더 뜨거운 태양 0002, 53x53cm, Archival pigment print on a light box,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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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10112-전정은 · 정지필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