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영 展

 

 

 

갤러리 이즈

 

2020. 12. 30(수) ▶ 2021. 1. 5(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52-1 | T.02-736-6669

 

www.galleryis.com

 

 

 

 

조혜영 작가 개인전에 부쳐

 

‘여행생활자’로 ‘길 위의 시인’으로 20년 가까이 세상을 떠돌았다. 세월이 무상한 탓에, 마음은 여전히 카일라스나 우유니소금사막을 걷고 있는데, 현실은 다녀온 곳을 돌아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어느 땐 그동안 가장 많이 가본 장소가 어딘지 꼽아보게 된다. 사실 헤아릴 필요도 없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가본 곳은 사찰이고, 해외에서 가장 많이 간 곳은 궁전과 사원이다.

처음에는 절에 가면 건물이나 보고 오는 게 고작이었다. 조금 지나면서 탑신의 깨진 곳도 들여다보고 나무기둥의 갈라진 틈에 귀를 대보기도 했다. 그들이 품고 있는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될 무렵 단청이 눈에 들어왔다. 단청을 만난 뒤로는 그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문양에 마음을 빼앗겼다. 저 문양은 누가 어떻게 그렸을까. 언뜻 보면 하나의 그림인데, 왜 자세히 보면 10개도 되고 100개도 되는 것일까. ‘궁전이나 절에 알록달록 채색한 것’ 정도가 단청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던 내게는 당연한 궁금증이었다.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 오방색으로 표현하는 단청은 오묘한 조화의 세계였다. 그런 조화를 어디에서 봤더라? 아! 오묘라는 단어에서 이스탄불 블루모스크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기도 했다. 2만 여개의 푸른색 타일이 품어내는 그 광휘(光輝)라니. 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와 단청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작은 것들이 큰 것을 이룬다는 면에서는 통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에 기대어 비로소 진가를 보인다. 스테인드글라스가 흐드러진 꽃밭 같다면 단청은 화려함 속에서도 분명한 절제미가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의미를 담지 않지만 단청은 삼라만상의 뜻을 품는다. 나는 곧잘 단청에서 장인의 혼을 읽는다. 어쩌면 저 문양 하나하나는 그 시대 단청장(丹靑匠)이 남긴 ‘영혼의 사리’가 아닐까?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등장하는 게 단청이니 단청을 통해 옛사람들의 영혼을 만나는 것이다.

 

 

 

 

한참 단청이 눈에 보일 무렵 단청 작가 한 사람을 만났다. 바로 조혜영 작가였다. 첫 만남 이후 우리는 꽤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광주에서 작업할 때도 파주로 공방을 옮겼을 때도 대화를 나누고 작업하는 걸 지켜보고는 했다.

그는 전통을 지켰지만, 한편으로는 단청을 궁궐과 절에서 데리고 나와 대중에게 알리고 생활 속에 접목하는데 힘을 쏟고 있었다. 부르는 곳만 있으면 달려가 강연을 하고, 손에 붓을 쥐어주며 직접 체험을 해보도록 했다. 어? 단청이 처마에서 내려와도 되는 거야? 내 궁금증에 그는 “그렇다”고 작품으로 대답하고는 했다. 그의 그런 생각은 다양한 시도로 나타났다. 찻상에도 부채에도 심지어 골프공에도 단청을 올렸다. 시계, 머리끈, 쟁반, 열쇠고리… 그에게 단청을 올리지 못할 곳은 없다. 그 결과 찻상도 부채도 골프공도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곤 했다.

조혜영 작가는 늦깎이다. 마흔 살이 돼서야 제대로 가르쳐줄 사람조차 없는 단청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에게 단청은 인생의 선물이었다. 색이 주는 위로였다. 번뇌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기도였다. 하지만 선물은 대가가 있기 마련.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절망 속에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자신을 태우기라도 할 듯 더욱 단청에 매달렸다. 큰 명예를 주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닌 일에 몸과 영혼을 내맡겼다.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집중’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 집중이 낳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어쩌면 조혜영 작가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단청은 옛날 것”이라는 말이 아닐까? 단청은 절에서나 하는 거라는 말, 고루하다는 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단청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예술적인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것이 이번 전시회일 것이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단청’이라는 옛 이름 속에서 태어난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보다 먼저 축하를 전하면서, 이번 전시회를 통해 조혜영 작가가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호준 시인‧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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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1230-조혜영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