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형 展

 

행방(Whereabouts)

 

 

 

쇼앤텔1

 

2020. 7. 16(목) ▶ 2020. 7. 30(목)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로 18길 8, B1

 

 

견고한 물, 2019, 종이에 흑연, 50x50cm

 

 

행방(whereabouts)

 

애꿎은 것들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무언가 사라진 뒤 그 자리에 남은 것, 눈앞에 있으나 곧 사라질 것, 어디선가 지금도 사라지고 있을 것, 혹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 것들을 그린다. 텅 빈 채 말라버린 식물, 주방 한 켠에 쌓인 계란 껍질, 세상 가득하다가도 내일이면 간데없을 눈송이들, 극지의 빙산, 상상 속 구름의 마지막 모습 같은 것들.

줄곧 상실의 경험에 관해 말해왔으나, 정작 그린 것 중 직접적인 상실의 대상은 없었다. 그릴 수가 없었으므로, 그리지 않았다. 그려진 것은 상실의 주변을 배회하다 본 것들, 왠지 눈에 밟히던 것들이었다. 애꿎은 것들. 순간의 직감으로 선택되었지만 그림이 되기까지 오래도록 곁에 머물러준 것들.

내가 택한 것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찾아올 때까지 생각을 거듭하며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냥 그린다. 그리기 이전의 생각을 잘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는 와중에 떠오르는 것들이야 말로 진정 그림에 관한 생각임을, 첫 획을 긋는 매 순간 느껴오지 않았던가.

어찌 보면 그림의 의미는 창작의 동기나 그려진 소재보다, 오히려 그것을 그려내는 바로 그 시간 속에서만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발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종종 내가 그렸던 그림이 남의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림은 남아있지만, 의미는 묘연하다.

상실은 전에 없던 어떤 표정을 얻고, 또 어떤 표정을 영영 잃어버리는 일이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전 그림과 같은 얼굴인 듯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표정이 서린 새 그림을 볼 때면, 이제 어떤 그림은 영영 다시 그려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인가 사람의 말간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차츰 가라앉은 것들 위로 떠오른 투명한 물처럼, 말갛게 갠 얼굴. 그런 얼굴은 예외 없이 내가 본 그 사람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 같은 그림을 언젠가 그려볼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린다.

 

 

견고한 물, 2019, 종이에 흑연, 50x50cm

 

 

종착, 2020, 종이에 색연필, 42x29.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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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716-임재형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