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중 展

 

Human Desire

 

Human Desire_stone man 05

 

 

스페이스22 강남

 

2020. 7. 14(화) ▶ 2020. 8. 6(목)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 390 | T.02-3469-0822

 

www.space22.co.kr

 

 

Human Desire_stone man 03

 

 

돌에 새긴 기원(祈願)

 

우리 선조들은 돌을 조각해 그 곳에 생명을 불어넣고 왜 그들을 기원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일까! 당시에는 금속이 귀했기에 구하기 쉬우면서 수명이 긴 돌에 조각을 하였을 것이란 건 자명하다. 만들어진 목적과 형태는 다르지만 전국 곳곳에 일반화됐던 석인상과 석장승을 촬영하기 위해 5년 동안 800여 곳을 찾아 다녔다. 아카이빙을 위해서 라기 보다는 조각상들의 표정과 형태와 세워진 장소를 통해서 선조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조명해 보기 위함이다.

석인상은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왕릉에만 세워지다 조선시대(1392년~1910년)에 들어와 사대부들의 무덤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석장승은 주로 조선시대 후반에 만들어진 것들인데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석인상은 유교에 바탕을 두고 있고, 석장승은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토속신앙에서 비롯됐다. 석장승이 사찰 입구에도 세워진 걸 보면 당시에는 종교와 토속신앙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석인상 중 동자석은 무덤 앞에서 죽은 이와 산 사람 사이에 심부름을 하는 역할을 한다는데, 불교의 동자승과 유교의 동자석이 이름과 역할이 비슷한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석인상(문인석, 무인석, 동자석)은 무덤 앞에 세워져 무덤을 수호하는 역할을 했으며 고대 중국 순장제도에서 비롯되었다. 왕이 죽으면 시종하던 사람들을 같이 묻다가 인식의 변화에 따라 순장의 풍습은 진시황의 토용(土俑)처럼 인형(人形)을 묻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점차 무덤 밖으로 나와 문인석, 무인석과 같은 석인(石人)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몸은 단순하게 처리하고, 얼굴의 표정에 집중하여 조각을 하였지만 지그시 감은 눈에선 망자(亡者)에 대한 절실한 염원이 느껴지고, 굳게 다문 입에선 간절함이 배어난다. 석인상은 망자 즉 인간의 삶의 연장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다. 무덤 안의 망자와 무덤 밖의 석인이 동행을 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망자는 흙으로 돌아간다. 수명이 긴 돌에 자신의 혼을 실어 생명을 연장하고 싶었겠지만 석인도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장승은 마을 어귀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밖에서 들어오는 액운을 막기 위함이었다. 지역에 따라 목장승과 석장승의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목장승은 대부분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지배층의 종교이던 유교로부터 탄압받고 소외된 민중들에게 장승은 스스로를 수호하고자 세운 토속신앙의 표식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유교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장승들도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걸 보면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이 얼마나 컸는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부릅뜬 퉁방울 눈, 분노에 벌름거리는 펑퍼짐한 코,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재미난 입 모양을 한 정겨운 얼굴들은 그대로 민중의 자화상이었다. 전통적인 미의식을 파괴하는 그들의 거칠고 자유분방한 얼굴에서 전통 질서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힘을 느낄 수 있다.

석장승에는 녹록하지 않은 삶 속에서 위안을 얻고 미래의 희망을 기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새겨져 있다. 죽어서도 석인상에 자신의 영혼을 오래도록 남기려 한 걸 보면 기원을 넘어 욕망에 닿아있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암이 많은 연유도 있겠지만 유독 단단해서 조각하기 힘든 화강암에 석인상, 석장승을 새긴 건 시간의 무한성을 기대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은 그들의 원형을 조금씩 허물어 먼지로 날려 보내고 있다. 1700장 가까이 촬영한 돌에 새겨진 얼굴 표정에서 우리 선조들의 삶 속에 깃든 애환과 해학을 엿볼 수 있다.

 

 

seesaw rm 02 _ rose

 

 

<SeeSaw>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모형들이 실물을 대체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꽃이나 과일, 나무 그리고 음식까지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실물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형들이 정교하다. 시각만으로는 잘 구분할 수 없고 후각이나 촉각을 통해 그 <차이>를 겨우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실물과 정교한 모형을 뒤섞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기관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찍은 나도 어느 것이 실물이고 어느 것이 모형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이렇게 실물과 모형을 함께 찍은 사진들을 프린트한 후 이미지 해체를 시도했다. 똑같은 사진을 두 장 프린트해서 한 장은 수직으로 자르고 한 장은 수평으로 잘랐다. 그러자 사진 속 사물들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파편으로 나뉘어졌다. 이렇게 잘게 잘린 두 장의 사진을 씨줄과 날줄을 직조하듯 엮어 자르기 전의 이미지로 재조합했다. 사실은 같은 이미지이나 다른 이미지로 재생성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상의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 안에 내재된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고 싶어서이다.

우리가 사물을 특히 사진 속 사물을 보고(see) 보았다(saw)는 것은 무엇을 인지했다는 것인가! 우리 기억 속에 고정된 이미지의 사물을 보면 호기심이 작동하지 않는다. 사물이 놓인 배경과 구도와 프레임에 잠시 눈길을 주기는 하겠지만 그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물에 대해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실물과 모형을 섞어 사진을 찍고, 관람자의 시선을 조금 더 붙잡아두기 위해 프린트된 이미지를 해체해 재조합해 본 것이다.

 

윤길중

 

 

seesaw rm 03 _ gypsoph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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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714-윤길중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