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경 展

 

眞景 놀이하는 인간 Homo Ludens

 

眞境-탈각된 공간_110x110cm_장지에 채색_2020

 

 

갤러리 도올

 

2020. 7. 8(수) ▶ 2020. 7. 2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87 | T.02-739-1405

 

www.gallerydoll.com

 

 

眞境-muse를 찾아서_110x110cm_장지에 채색_2020

 

 

眞景_놀이하는 인간 Homo Ludens

호모 루덴스, 다시 놀이가 중요해진 세상
너나 할 것 없이 자가 격리 상태였던 지난겨울 …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설악산에 올라 눈 길 닿는 곳을 사생하였다. 혹독한 겨울 동안 사생한 풍경은 시간과 공간이 담긴 기억 저장소가 되었고 이 기억 저장소는 나의 몽상과 합하여 화면에 드러났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놀이에 몰두하면서 갖추게 된 인류를 호모 루덴스 즉 유희적 인간을 이라고 명명했다. 놀이를 처음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는 인간의 본원적 특징이 ‘놀이’ 임을 강조하며 사유나 노동의 상위 단계로 상정 했다. 우리의 문명은 오랜 세월이 흐르며 점점 너무 정교해져왔다. 하지만 예술적 감성은 여전히 놀이 감각을 되살려 준다. 근대사회 이후 다시 놀이의 중요성과 긍정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우리는 놀이를 즐기면서 진지함의 구분이 사라져서 하나로 융합된다. 혹자는 “아이들은 현실에 접근하기 위해 놀이하는 반면, 어른들은 현실 도피를 위해 놀이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眞景_놀이하는 인간 Homo Ludens> 작업은 요한 하위징하가 정의한 놀이의 형태적 특성인 진지하지 않지만 독립된 자유로운 행위로서 놀이하는 사람을 완벽하게 몰두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물질적 이해와는 관계가 없는 행위이고 아무런 이익도 제공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에 나름의 한계를 가진 놀이 공간 내에서 기타 수단과 위장을 동원하여 평범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과 맥락을 함께 한다.

놀이는 즐김이다. 어느 순간 즐김은 현대인의 이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은 이상으로 여기는 마음의 경계와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현실적 경계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심리적 간극이 존재한다. 나는 산을 즐겨 그리고 실제로 산을 좋아하지만, 직접 올라가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가끔 작업의 소재를 위해 산에 머물러야 할 때는 최대한 드로잉과 취재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산에 대한 기억과 경험 그리고 자료들을 토대로 화면에서 가상의 봉우리도 만들고 골짜기도 만들면서 유희를 즐기는 것이다. 즉 작업하는 과정 전체를 놀이로 상정한 것이다. 현실의 공간을 환기한 가상공간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삶을 특정 하는 제반(諸般)의 자아구성을 실험할 수 있는 사회적 실험실이다. 이는 가상공간이 자아의 활동무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작가가 가공한 사유공간을 통해 정신적 경험을 유희로 실험할 수 있다면 이것은 포스트모던주의가 추구하는 자아실현의 학습장인 것이다. 가상세계에서는 현실세계와 다른 가상자아(Virtual ego)를 창조하여 또 다른 내가 경험하게 되는 공동의 놀이를 즐길 수 있다.

<眞景_놀이하는 인간 Homo Ludens>의 작품은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에 거대한 석가산(石假山)이 자라고 있고 그 안에서 현대의 레저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내가 인식하는 자연은 자주 가지 못하고, 그로 인해 즐기지 못하는 결핍의 대상이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자연을 상징하고 대체하는 거벽산(巨擘山)을 공간 속으로 들여와 1차 가공하고 그 속에서 작은 사람들을 배치하는 일종의 피규어 놀이를 하고 있다. 또 중국의 기서(奇書)인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제강(帝江)이 등장하는데 제강은 천산에 살며 그 형상은 누런 자루처럼 생겼는데, 마치 활활 타는 불처럼 붉은 색이다. 또 짤막한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를 달고 있고, 얼굴이 없는데 노래하고 춤추며 돌아다닌다고 한다. <장자>에서도 이와 같은 신이 등장하는데 그 이름이 혼돈(混沌)이다. 이런 제강이 나에게는 원초적 뮤즈(Muse)로 다가온 것이다.

내게 있어 자연이란 초탈해야 할 대상으로서 속세에 대한 대척적 개념물이 아니라 유(遊)의 공간이다. 이것은 세속과 분리된 은거의 공간도 아니고, 수양을 위한 사유의 공간도 아닌 오로지 오락적인 공간이다. 이런 활동은 나의 작업 가운데 ‘소요’를 위한 행위방식으로서 ‘은일’과 자발적이며 즐거운 현실적 가상경험의 몰입 활동의 장이다. 그렇게 사생한 풍경이 담긴 기억 저장소를 진경(眞境)으로 구현하는 헤테로토피아적 유희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眞景-Homo Ludens_162x130cm_장지에 채색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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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708-유혜경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