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현, 신명선 展

 

Part2. Post-Memory: uncomfortable grumbling

 

 

 

류가헌

 

2020. 7. 7(화) ▶ 2020. 7. 1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106-4 | T.02-720-2010

 

 

 

 

정지현의 이야기

34년생 그녀는 열여섯 살에 산에 들어갔다. 전쟁이 나기 전 일 년여 동안 산에서 살았다. 그 지역에서 살아남은 가장 어린 빨치산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그 산자락 아래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동생의 동생의 동생인 49년생인 그녀는 한 돌이 채 되기 전에 대나무 숲에 버려졌다. 간난장이가 밤새 울어서 온 가족이 죽임을 당할 것 같아 그녀의 어머니가 밤에 몰래 버렸다. 담날 새벽이 되면 언니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이러기를 몇 번이나.
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했다. 분단과 전쟁의 광기 속에서 제주에서, 노근리에서, 거창에서,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 2012년 전라도 어느 산골로 내려간 첫 촬영 당일, 백발의 노인은 ‘뭣하러 찾어’ ‘시끄럽게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셨다.
2016년 홍성,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아달라고 매일 찾아오시는 유가족 분들이 계셨다. 이후 수년 동안 찾아다녔던 민간인학살지역은 여느 시골 풍경과 다름없었거나 아니면 건물로, 운동장으로, 도로로, 공원으로 변해 있었다.
70년 전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ㅡ 사고처럼 죽었다. 백발의 노인이건, 태어난지 몇 개월 채 되지 않은 아기이건, 산채로 매장당하거나 바다에 던져졌다.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간 이들에게 목숨보다 귀한 이념이나 사상이 중요했을까.
“누군가는 기억하고 싶고, 누군가는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의 시간에 대한...”

 

 

 

 

신명선의 이야기

그녀의 사진이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흔적과 기억들이 유효하지 못하게 인위적으로 방치를 강요당한 이미지라면 그 위에 덮고 있는 나의 이미지는 동시대의 즉각적 소비와 반응들을 표현한 것이다. 왜 그녀의 공간들은 시간이 흘러도 침묵 속에 봉인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 그렇게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그것들이 공간을 초월한 듯 보이지만 어쩌면 비슷한 이슈로 병치되어 나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나는 누군가 언급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평범한 풍경 위에 넷플릭스 로고, 코로나 19뉴스, NASA와 톰크루즈의 우주공간에서 영화 촬영에 관한 트윗, 심슨가족, 나이키 등 동시간대의 이슈를 MSG같이 첨가했다. 이렇게 이미지와 이미지는 서로 충돌을 넘어서 콜라보를 이룰 것이다.

 

 

 

 

 

 

 

 

 
 

 
 

*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00707-정지현, 신명선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