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주 展

 

사라지는 것들

 

 

 

갤러리도스 본관

 

2020. 6. 24(수) ▶ 2020. 6. 30(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 T.02-737-4678

 

www.gallerydos.com

 

 

속을 들여다 보면

사람이 경험한 사건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바람이나 우려와 함께 감정의 줄기를 형성한다. 동시에 개인이 지니고 있던 감정이 사건자체나 이를 해석하는 방법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강민주에게 상자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감정의 보관소이다. 그 상자에는 넘쳐흐른 기억과 감상이 정리된 동시에 급하게 포장한 이삿짐처럼 순서와 이유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 살아가면서 특정한 순간에 필요한 내용물은 막연한 기대감이나 계산적인 이유로 다시금 열람을 기다리며 담겨있다. 간혹 상자가 비좁아서 새어나온 감정은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불청객처럼 달갑지 않지만 그 뜻밖의 순간은 오랜만에 열어본 서랍 속 추억처럼 매력적이고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화면속의 공간은 일상에서 보았을 익숙한 사물들로 채워져 있지만 부자연스러운 구성으로 배치되어있다. 종이 질감으로 유추되는 상자들은 안에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상자들일 수도 있다. 일부 사물은 주변의 상자와 공간이 지닌 차분한 색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채도로 그려져 있다. 해당 사물들은 혼합된 색상보다는 원색으로 그려져 있고 그림자도 생략되어 있다. 이러한 의도적인 무신경함은 현실의 일부를 닮았지만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감정의 공간을 표현한 작품전체에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인 분위기에 힘을 더한다. 화면 속 시계에 표시된 시각이나 커튼 아래로 튀어나온 신체부위, 바닥에 떨어져있는 구식 열쇠와 고양이처럼 이따금씩 간단한 표현으로 그려진 이미지들은 예상치 못한 구체성을 지니고 있기에 추리장르의 한 장면처럼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며 긴장감을 더한다. 앞서 이야기한 단서들은 화면에서 중요한 장소에 위치하지도 않았고 현실세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이지만 작가가 그려낸 감정과 무의식, 기억이라는 이야기가 담긴 비논리적인 내면의 공간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처럼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간단한 이미지들이 눈길을 끌기 마련이다. 이렇게 보기 쉽고 작은 장치들로 인해 관객들은 사물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해가며 이야기를 구성하려 할수록 갈피를 잡기 힘든 방향으로 이끌리게 되는데 그 모습은 타인의 개인적인 언어에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쥐어 짜내기 위한 성급한 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마치 잠에서 깬 뒤 기억나는 꿈의 파편에서 친숙한 형상을 토대로 지난 꿈의 기억을 되짚어 보지만 그 구체적인 기억의 조각이 생생해 질수록 전체는 희미해지는 경험처럼 다가온다.
강민주에게 상자는 꿈의 세계를 통해 쌓인 생각과 감정을 담아둔 틀이다. 용기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축적되는 내용물들처럼 오롯이 제어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며 사건과 관계로 뒤섞인 채 작가는 매일 상자를 닮은 공간에서 잠들고 꿈을 꾼다. 그리고 깨어나 이야기가 들어있는 상자를 화면에 담는다. 무탈한 삶을 위해 여러 가지 얼굴을 지닌 감정을 정리해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하기위해서는 다시 상자를 열고 바닥에 쏟아내 볼 필요도 있다. 그중에 일부는 오랜만에 빛을 받고 생기를 되찾아 미소를 유발할 것이고, 어떤 것은 이제 버려야 하기에 성장할 수 있다.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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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624-강민주 展